▲ 전성인 전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가 23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금융감독체계 개편 관련 긴급 정책 토론회'에서 발제발표를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금융위원회 사무처 조직을 해체해야 한다.”
23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금융감독체계 개편 관련 긴급 정책 토론회’에서 발제발표를 맡은 전성인 전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재명 정부의 금융감독체제 개편 과정에서 여러 방안들이 나오고 있지만 진정한 개혁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산업정책과 감독기능을 틀어쥐고 있는 금융위 사무처를 강하게 손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모피아(옛 재무부 관료들을 마피아에 빗대 부르는 말)의 해체를 뜻한다.
전성인 전 교수는 “이재명 정부가 왜 아무도 주장 않던 금융감독위원회를 다시 만들고 사무처를 그 안에 두려하겠느냐”며 “지금의 모피아는 기획재정부 출신이 아닌, 옛 재무부부터 이어져 스스로를 금융감독기관이라고 여기는 금융위 사무처 조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모피아를 영국소설 해리포터에 나오는 볼드모트에 빗대기도 했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위해서는 모피아를 척결해야 하지만 모두가 조심스러워하며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전 전 교수는 “모피아는 그동안 금융감독체계 개편 과정에서 언제나 적당히 문제를 빠져나가며 살아남았다”며 “모피아 문제야말로 금융감독체계 개편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이번에는 반드시 근본적 해결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 전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국내 금융감독체계 변화 과정에서 모피아가 어떻게 명맥을 유지하고 살아남았는지도 설명했다.
1997년 12월3일 한국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이 맺은 협정에는 외부간섭에서 자유롭고 독립성을 확보한 금융감독기구를 설립한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모피아는 이를 교묘하게 막으며 감독권한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조직도 비대해져 1998년 10명 수준으로 시작한 금융감독위원회 사무국 공무원은 현재 250명 수준으로 늘었다.
그는 “언론에 흘러 나오는 국정기획위원회 안을 보면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기능을 분리해 정책기능을 기재부에 넘기고 금융감독위원회를 새로 만든다지만 사무처를 그대로 두면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라며 “사무처를 해체해 모피아를 청산하고 금융감독은 한국은행 같은 공적 민간기구가 수행하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전 전 교수와 함께 발제를 맡은 고동원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최근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국정위의 개편 방안에 강한 의구심을 제기했다.
고 교수는 “이재명 정부의 금융감독체계 개편 방안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 이번 발제발표를 준비했다”며 “지금 국정위에서 논의되고 있는 개편 방안은 2008년 이전 금융감독위원회 체제와 같은 3층 구조가 될 수 있어 비효율성이 크다”고 바라봤다.
그는 “금융감독기구의 최고의사 결정기관은 외장형이 아니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와 같은 내장형이 돼야 한다”며 “바람직한 금융감독체제 개편을 위해서는 이해관계자인 정부와 금융감독기관은 논의 주체에서 제외될 필요도 있다”고 바라봤다.
전직 금융감독원장도 이날 토론회에 참석해 금융정책과 감독정책 분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이 23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금융감독체계 개편 관련 긴급 정책 토론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윤석헌 전 금감원장은 축사에서 “금융분야 코리아디스카운트의 또 다른 이유는 모피아 낙하산과 그들이 만드는 생태계”라며 “낙하산이 산하기관으로 내려가 생태계를 잠식하면서 금융권 전체가 관료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전 원장은 “관치금융을 탈피하려면 금융감독이 흔들림 없이 자리 잡고 정립돼야 한다”며 “금융감독이 바로 서야 규제완화도 가능하고 금융산업의 자율과 창의가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최흥식 전 금감원장은 2부 종합토론 좌장을 맡아 토론을 이끌었다.
최 전 원장은 토론회 마무리 발언에서 “이번 금융감독체계 개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의 완전한 분리”라며 “세부방안을 놓고 여러 이야기들이 있지만 금융감독의 독립적 체계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 전 원장과 최 전 원장은 문재인정부 때 금감원을 이끌었다. 다수의 역대 금감원장이 재무부 관료 출신인 것과 달리 윤 전 원장과 최 전 원장은 학계 출신이다.
▲ 최흥식 전 금융감독원장이 23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금융감독체계 개편 관련 긴급 정책 토론회'에서 2부 토론을 이끌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이재명 정부의 주요 과제로 국정위는 금융위의 금융정책 기능을 기재부로 이관하고 나머지 조직은 금감원과 합쳐 과거의 금감위를 부활시키는 안을 놓고 대통령실과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위는 동시에 금감원 내 소비자보호 조직을 분리 격상해 금융소비자보호원을 신설하는 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는 이러한 금융감독체계 개편과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의 결단만 남았다고 알려진 상황에서 긴급하게 마련됐다.
토론회를 주최한 금융경제연구소 조혜경 소장은 “대통령실이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고 일주일 만에 이번 토론회를 준비했다”며 “이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 목소리를 내온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려줘 대통령의 고심을 덜어주기 위한 토론회”라고 말했다.
공동 주최자에는 금융경제연구소와 함께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민병덕 오기형 김승원 김남근 김현정 이강일 의원, 조국혁신당 신장식 차규근 의원, 사회민주당 한창민 의원 등 10명의 여당과 야당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이날 토론회는 급하게 준비하느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을 잡지 못하고 국회와 약간 거리가 있는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렸다. 그럼에도 김남근 한창민 차규근 박홍배(더불어민주당) 등 여러 의원이 참석해 힘을 실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의 분리라는 큰틀의 방향성을 놓고는 다들 공감했지만 금감원 조직 형태, 금융소비자보호처 분리 등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김남근 의원은 “독립적 금융감독기구 설치는 국제적 약속이자 민주정부의 개혁과제”라며 “토론회를 함께 주최한 10명의 의원뿐 아니라 정무위와 국정위에도 토론 내용을 공유하고 전달해 구체적 입법과 제도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한재 기자
▲ 김남근 의원이 23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금융감독체계 개편 관련 긴급 정책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