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원 기자 ywkim@businesspost.co.kr2025-07-23 15: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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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다이글로벌이 브랜드 티르티르, 라카 등을 인수합병하며 외형을 확대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일본 도쿄에서 진행한 티르티르 팝업 매장. <티르티르>
[비즈니스포스트] 천주혁 구다이글로벌 대표이사가 잇따른 브랜드 인수합병(M&A)을 통해 뷰티업계의 ‘큰 손’으로 부상하고 있다. 티르티르, 라카 등 국내 유망 브랜드를 품에 안으며 ‘한국판 로레알’을 겨냥한 외형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고속 질주 뒤에는 불안요소도 적지 않다. 치솟는 차입 부담과 불확실한 글로벌 유통 환경이 맞물리며, 천 대표의 거침없는 승부수가 자칫 유동성 위기라는 장애물에 가로막힐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23일 구다이글로벌의 행보를 종합해보면 국내 주요 화장품 기업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외형을 확대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에이피알 등 주요 기업들이 자체 브랜드를 기반으로 유기적인 성장을 이뤄온 반면, 구다이글로벌은 인수합병을 전면에 내세운 ‘확장형 전략’으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구다이글로벌은 2019년 ‘조선미녀’를 시작으로 티르티르, 라카, 크레이버코퍼레이션 등 국내외에서 시장성과 제품력을 인정받은 뷰티 브랜드를 잇달아 인수하며 존재감을 빠르게 키우고 있다. 단순 투자나 제휴를 넘어, 지분 인수를 통한 ‘직접 확보’ 전략으로 포트폴리오 확장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이 같은 공격적 인수 전략은 빠른 실적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구다이글로벌은 지난해 연결기준으로 매출 3309억 원, 영업이익 1305억 원을 기록했다. 2023년과 비교해 매출은 137.0%, 영업이익은 89.4% 늘어난 수치다.
올해도 천 대표의 공격적 인수 행보는 계속되고 있다. 구다이글로벌은 ‘독도 토너’로 잘 알려진 서린컴퍼니를 약 6천억 원,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 스킨푸드를 약 1500억 원에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업계 안팎에서는 잇단 인수합병으로 재무 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구다이글로벌은 최근 2년간 티르티르 지분 49.98%를 1500억 원, 라카 지분 88%를 425억 원, 크레이버코퍼레이션 지분 85%를 2456억 원에 인수하며 굵직한 거래를 성사시켰다. 여기에 올해 서린컴퍼니와 스킨푸드 인수까지 추진하면서 전체 투자 규모가 1조 원을 넘어섰다.
이에 구다이글로벌은 최근 8천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CB) 발행을 결정했다.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사모 방식으로, 현재 투자자별 납입 일정 조율이 진행되고 있다. 3분기 내 자금 유입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CB 발행은 티르티르, 라카, 크레이버코퍼레이션에 이은 서린컴퍼니·스킨푸드 인수 추진 등 급격히 불어난 자금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실제 구다이글로벌은 지난해 추진한 3개 브랜드 인수에만 연매출의 2배가 넘는 금액을 투입한 상황이다.
문제는 이 같은 외형 확장에 따라 재무적 부담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환사채는 일정 시점 이후 주식으로 전환될 수 있어 대규모 발행 시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 우려가 불거질 수 있다. 여기에 이자 비용과 만기 상환 리스크가 더해지면서 단기 유동성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 구다이글로벌이 ‘독도 토너’로 잘 알려진 서린컴퍼니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 구다이글로벌의 부채는 가파르게 불어나고 있다. 이는 연이은 대규모 M&A와 사업 확장에 필요한 자금을 외부 조달에 의존한 결과로 풀이된다.
지난해 구다이글로벌의 유동부채는 1767억 원으로 2023년보다 무려 494.9% 증가했다. 특히 단기차입금은 같은 기간 3900%나 급증했다. 부채비율 역시 2023년 77%에서 2024년 119%로 급등했으며, 2025년 서린컴퍼니 인수까지 완료되면 150%를 넘길 가능성이 크다.
실제 지난해 투자활동 현금흐름은 -4824억 원에 이른다. 인수합병을 비롯한 각종 투자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셈이다. 같은 기간 재무활동 현금흐름은 3969억 원으로 외부 차입, 유상증자, 대출,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투자 재원을 메운 것으로 분석됐다.
일각에서는 구다이글로벌의 경영 안정성에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여러 재무적 투자자(FI)들과 컨소시엄을 이뤄 경영권을 인수하는 방식이 잠재적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모펀드 등의 FI는 통상 일정 기간 내 투자금을 회수하는 ‘엑시트(EXIT)’를 목표로 한다. 상장이나 재매각, 배당 정책을 둘러싸고 기업 경영진과 이해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특히 인수 직후부터 빠른 수익 실현을 요구하는 구조에서는 중장기 브랜드 전략보다 단기 재무성과에 초점이 맞춰질 수 있다.
천 대표의 공격적 인수합병의 또 다른 핵심 리스크는 글로벌 유통 환경의 불확실성이다.
구다이글로벌은 전체 매출의 약 90%가 미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 해외시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대표 브랜드 ‘조선미녀’ 역시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입소문을 타고 역수출된 사례다.
이처럼 해외 매출 의존도가 높은 브랜드 구조는 성장의 발판이 되는 동시에 유통 채널 변화에 따라 매출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아마존, 울타뷰티, 세포라 등 글로벌 ‘빅바이어’와의 계약 조건이 불리하게 바뀌거나 입점이 중단될 경우, 매출 급감과 브랜드 가치 하락으로 직결될 수 있다.
실제 2020년대 초 이니스프리, 토니모리 등 K-뷰티 1세대 브랜드들은 미국·중국 시장에서 유통망 확장에 실패하며 매장 철수와 매출 급락을 겪었다. 구다이글로벌 역시 다양한 브랜드를 동시에 운영하는 구조인 만큼 이 같은 유통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않다.
여기에 글로벌 소비 트렌드 변화는 유통 리스크를 더욱 증폭시키는 요소다. 성분 규제, 라벨링 요건, 인증 절차 등 국가별 유통 조건이 제각각인 데다, 소비 트렌드에 부합하지 않으면 입점 조건 자체가 바뀌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트렌드 변화 속도가 빠른 미국과 일본 시장에서는 신제품 개발과 마케팅 비용 부담이 상시적으로 뒤따른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구다이글로벌의 공격적인 인수합병 전략은 궁극적으로 기업공개(IPO)를 목표로 한 움직임일 가능성이 크다”며 “최근 몇 년 사이 에이피알, 달바글로벌 등 신흥 강자들이 글로벌 수요 확대를 배경으로 코스피 상장에 성공하면서 K-뷰티 산업 전반에 대한 투자자 신뢰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