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안 레더스마 그린피스 필리핀 제로웨이스트 캠페이너가 지난해 4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국제플라스틱협약 제4차 정부간 협상위원회(INC-4)에 참석하고 있다. <그린피스> |
[비즈니스포스트] "그린피스는 이번 국제플라스틱협약 연장협상에서 한국 정부가 리더십과 야망을 보여줬으면 한다. 특히 플라스틱 생산 감축과 플라스틱 안에 함유된 해로운 물질을 규제하는 것을 명시하는 조항을 지지할 것을 바라고 있다."
마리안 레더스마 그린피스 필리핀 제로웨이스트 캠페이너는 18일 비즈니스포스트와 나눈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차기 국제플라스틱협약 협상에서 플라스틱 생산 감축 조항을 포함하는 강력한 협약을 지지하기를 바란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마리안 레더스마 캠페이너는 필리핀 현지에서 다양한 환경단체에서 활동해 왔다. 그린피스에는 2019년에 캠페인 코디네이터로 합류했다.
2020년부터는 캠페이너가 돼 폐기물 오염 종식을 위한 활동을 이어왔다. 국제플라스틱협약 협상이 개시된 이후에는 그린피스에서 협약 협상 참여 관련 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4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제4차 정부간 협상위원회(INC-4) 그린피스 대표단을 이끌었고, 부산에서 열린 INC-5에도 참석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INC-5.2에도 그레이엄 포브스 그린피스 대표단장, 김나라 캠페이너 등과 함께 그린피스를 대표해 참석한다.
앞서 세계 각국 정부는 2022년 유엔환경총회에서 오염 종식을 위한 국제플라스틱협약 협상을 개시하기로 결의했다.
플라스틱은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광범위한 환경오염을 유발하고 있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올해 4월 중국 청화대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에서 생산된 플라스틱은 4억 톤이 넘는데 이 가운데 재활용 비중은 10%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각국 정부는 원래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열린 제5차 정부간 협상위원회(INC-5)가 마지막 협상이 될 것으로 계획됐으나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 국가들이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조약에 명시하는 것에 강력히 반대한 탓에 올해 연장회의를 갖기로 했다.
이들 국가는 플라스틱 생산과 관련된 문제는 생분해 플라스틱과 같은 신기술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레더스마 캠페이너는 "플라스틱은 전 수명주기, 모든 단계에 걸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이 때문에 문제의 근원인 생산을 줄여야 한다"며 "생분해 플라스틱은 화석연료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문제는 그대로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플라스틱은 핵심원료가 화석연료이기 때문에 전주기에 걸쳐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플라스틱 산업이 배출한 온실가스는 약 19억 톤으로 플라스틱 폐기물 양보다 약 4배 이상 많았다. 환경오염 문제 이상으로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는 뜻이다.
레더스마 캠페이너는 "생분해 플라스틱은 여전히 그 안에 비생분해성 유해 화학물질이 그대로 함유돼 있다는 문제도 갖고 있다"며 "식물로 분해되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만든다고 할지라도 결국 현재 산업 체계가 생산하는 폐기물 종류만 바뀔 뿐이고 결국 식량으로 사용될 수 있었던 자원을 낭비하게 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경제적 여건 때문에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와 같은 문제에는 선진국들보다는 개발도상국들이 더 취약하다. 이 때문에 개도국들은 선진국들보다 플라스틱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국제사회에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레더스마 캠페이너는 "19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필리핀 국민들 대다수는 강력한 국제플라스틱협약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필리핀 조사 참여자 가운데 94%는 플라스틱 생산 상한을 거는 것이 플라스틱 오염을 막고, 생물 다양성 손실을 방지하며 지구온난화를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국제플라스틱협약이 정부와 기업들로 하여금 플라스틱 제품을 재사용, 재충전 가능한 제품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본 필리핀 국민도 97%에 달했다"며 "이는 옆나라 인도네시아와도 같은 수치였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들 국가들은 선진국들만큼 환경오염이나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필리핀은 2000년에 '생태 고형 폐기물 관리법'을 도입해 일찌감치 플라스틱 폐기물 관리에 나섰으나 법을 시행할 재정과 인프라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 마리안 레더스마 그린피스 필리핀 플라스틱 캠페이너가 2024년 10월 필리핀 라스피냐스 파라냐케 습지공원에서 필리핀 무역산업부와 그린피스가 협업해 열린 '라스피냐스 파라냐케 습지 공원'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린피스> |
선진국들이 자국에서는 처리하기 어려운 플라스틱 폐기물을 개도국들에 수출해 문제를 전가하는 '쓰레기 식민주의'도 문제를 가중시키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한국도 앞서 2018년에 국내 기업이 필리핀에 쓰레기 1400톤을 불법수출했다가 당국에 적발돼 이를 반환당한 바 있다.
레더스마 캠페이너는 "쓰레기 식민주의 대응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행동과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효과적 정책이 필요하다"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세계적 단위에서 봤을 때 쓰레기를 수출할 수 있도록 허용돼야 하는 국가는 국토가 너무 좁아 그 안에서 자체적으로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극히 일부 국가들로만 한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제플라스틱협약 제5차 정부간 협상위원회 연장회의(INC-5.2)는 다음달 5일부터 14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다. 플라스틱 오염을 향한 국제사회의 대응이 결정되기까지 이제 한 달도 채 안 남은 셈이다.
하지만 강력한 협약 체결 가능성은 지난해보다 낮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INC-5 때까지만 해도 강력한 협약 체결을 지지하던 국가들 가운데 다수가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프랑스 니스에서 강력한 국제플라스틱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발표된 '니스 선언'에 동참한 국가는 95개국뿐이었다. INC-5 당시에는 약 120개국이 강력한 협약을 지지했었다.
특히 이번에 빠진 국가들 가운데는 미국, 한국, 일본 등 주요국들이 포함돼 있어 타격이 더욱 큰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 정부는 INC-5가 개최되기 전 김완섭 환경부 장관이 직접 생산감축이 필요하다고 언급했으나 회의가 종료된 이후에는 태도를 바꿔 강력한 협약을 지지하는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다음달 스위스 INC-5.2에 직접 참석하는 레더스마 캠페이너는 현재 협상 여건이 열악하기는 하지만 강력한 협약이 반드시 타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레더스마 캠페이너는 "우리는 지금 플라스틱 위기를 향한 강력한 대응이 절실하다"며 "조치를 미루면 미룰수록 더 많은 사람과 생물들이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과거에도 그랬듯 강력한 협약 체결을 저해하려는 국가들이 협상 과정을 방해하고 조약을 약화시키려 할 것으로 예상되기에 강력한 협약 체결을 원하는 국가들은 스스로의 입장을 고수하고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며 "지금 너무 많은 것들이 이번 협상에 달려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