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상법이 이사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까지 확대하고,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3% 룰도 포함하면서 지배구조 개편을 마냥 미룰 수만은 없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이번 상법 개정으로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해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데, 지분 확보 과정에서 주주들의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제기된다. 사진은 정 회장이 올해 3월26일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 준공식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정 회장이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해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고 지배구조를 안정화시키기 위해선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데, 자금 마련 과정에서 일반 주주들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제기된다.
17일 재계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상법 개정에 따라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본격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가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의 순환출자 구조가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다. 재계 10대 그룹 가운데 순환출자 구조를 가지고 있는 곳은 현대차그룹이 유일하다.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지배구조 문제는 공정거래위원회도 오래전부터 지적해온 해묵은 과제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 지배구조를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로 바꾸려 시도했다. 하지만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비율이 총수 일가에 유리하다는 지적과 함께 주주들 반대에 부딪히며 계획을 철회했다.
그런데 이번 상법 개정으로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와 3% 룰이 걸림돌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상법 개정 법률 가운데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조항은 법률 공포 후 즉시 적용되고, 3% 룰은 공포 후 1년 이후에 시행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 회장이 그룹 지배구조를 바꾸고 지배력을 안정화시키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상황이다.
3%룰이 시행되면 일반 주주와 행동주의 펀드 등이 원하는 인물을 감사위원으로 선출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이들의 경영 개입과 경영권 공격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낟.
정 회장이 들고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은 0.33%에 불과하다. 정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차그룹 계열사 지분 가운데 모비스 지분율이 가장 낮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을 합쳐도 7.62%밖에 되지 않는다.
정 회장이 그룹 총수에 오른 지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 명예회장보다 지배력이 낮은 상황이다. 그룹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가 필수인 셈이다.
▲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그룹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선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하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 회장이 계열사들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 모두를 확보하려면 약 7조 원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모비스>
일각에서는 현대모비스를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분할한 뒤, 정 회장이 현대글로비스, 현대엔지니어링, 보스턴다이내믹스 등 계열사 보유 지분을 활용해 현대모비스 투자회사의 지분을 늘리는 방법이 거론된다.
이 방법을 활용하면 현대모비스 투자회사가 그룹의 지주회사가 되는데,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현대차그룹에서 현대캐피탈을 떼어내거나 중간금융지주회사 설립 등 추가 조치가 필요해진다.
현재로서는 정 회장이 직접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해 지배력을 높이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 대안으로 꼽히지만,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다.
현대모비스 지분은 17일 기준으로 기아가 17.66%, 현대제철이 5.92%, 현대글로비스가 0.71%를 보유하고 있다.
정 회장이 이 계열사들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 모두를 확보하려면 이날 종가인 30만7500원 기준으로 약 7조 원이 필요하다.
이번 상법 개정으로 이사 충실의무 대상이 주주까지 확대되면서 지분 확보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주주 피해가 발생하면 이사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 등 법적 분쟁이 발생할 여지가 크다.
재계 관계자는 “소액주주 사이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기 전에 주가를 부양하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며 “그룹 안팎에서 순환출자 구조 해소에 대한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만큼, 정 회장으로서도 언제까지 (지배구조 개편을) 미룰 수 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