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월15일(현지시각)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열린 에너지 및 혁신 서밋에 참석해 화석연료 중심의 인공지능 인프라 전력 공급 계획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인공지능(AI) 분야에서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해 천연가스를 비롯한 화석연료 산업 육성에 더욱 힘을 싣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 및 경제성을 고려해 재생에너지를 우선순위로 활용하던 빅테크 기업들도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전환을 서둘러야 하는 압박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
미국 기술전문지 와이어드는 17일 “트럼프 대통령이 인공지능 산업의 미래에 에너지 공급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재생에너지와 더욱 거리를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에너지 및 혁신 서밋에서 인공지능 데이터센터를 포함한 인프라에 필요한 대규모 전력을 화석연료 중심으로 공급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분명히 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열린 에너지 및 혁신 서밋에는 구글과 앤스로픽, 엑손모빌 등 주요 빅테크 기업과 화석연료 기업 경영진이 대거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펜실베이니아 인공지능 및 에너지 관련 사업에 모두 920억 달러(약 128조 원) 규모 민간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데이터센터와 천연가스 발전소 건설 등이 포함된다.
와이어드는 “미국은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라며 “인공지능 산업과 연관성이 커지는 것은 관련 업계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글로벌 천연가스 시장은 최근 수 년에 걸쳐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 문제를 겪고 있었다.
그러나 인공지능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분야에서 대규모 화석연료 기반 전력 수요가 발생한다면 업황에 분명한 반등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트럼프 정부가 천연가스와 석탄 등 화석연료 산업 활성화에 인공지능 전력 수요를 앞세우며 당위성을 확보하고 두 산업 정책 사이에 시너지도 모색하고 있는 셈이다.
대선 캠페인 시절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정부의 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을 비롯한 친환경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해 왔고 이를 전면 폐지하겠다는 공약도 내세웠다.
결국 트럼프 정부 출범 뒤 대규모 감세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서 전기차 및 재생에너지 보조금 폐지와 축소 등 정책이 현실화됐다.
인공지능 산업 육성도 트럼프 정부의 핵심 정책에 포함된다. 화석연료는 이에 필수적인 전력 수요 문제를 해결하고 미국의 에너지 시장 지배력도 키우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다만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와 인프라 투자를 주도하는 빅테크 기업들은 아직 화석연료 기반 전력 수급 확대에 다소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 풍력발전 설비 인근에 설치된 구글 네덜란드 데이터센터 사진. |
대부분의 빅테크 기업이 기후대응 목표를 설정해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속도를 내고 있는 데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 대비 경제성도 높기 때문이다.
와이어드는 “정부 지원이 없어도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 구축은 천연가스 발전 대비 저렴하다”며 “전력 공급까지 필요한 시간도 천연가스보다 태양광 발전이 더 짧다”고 전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화석연료 산업 육성 정책이 본격화될수록 빅테크 기업들도 재생에너지 대신 천연가스나 석탄 기반 전력 수급을 늘려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공산이 크다.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인공지능 인프라 구축 과정에서 트럼프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또한 정부 규제에 사업이 큰 영향을 받는 만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미국 빅테크를 겨냥한 규제를 점차 강화하는 흐름도 이들 기업이 트럼프 정부의 정치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화석연료에 지나치게 치우치며 결국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CNN은 “미국은 이미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중국에 크게 뒤처지고 있다”며 “트럼프 정부 출범은 이런 결과를 사실상 확정지은 셈”이라고 비판했다.
조사기관 글로벌에너지모니터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태양광 및 풍력에너지 발전 규모는 현재 1400GW 안팎으로 집계됐다. 이는 미국의 5배를 넘는 수준이다.
씽크탱크 로디엄그룹은 트럼프 정부의 감세 법안이 미국 전역의 전기요금 상승을 이끌어 기업들의 투자 위축과 경제 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시했다.
로디엄그룹은 화석연료 중심 에너지 정책이 오히려 데이터센터에 전력 공급 부족을 이끌 수 있다는 전망도 제시했다. 천연가스 발전소 건설 및 가동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공지능 산업에 필요한 전력을 화석연료로 충당한다는 트럼프 정부의 계획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미국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 인공지능 산업 정책에도 악재로 남는 ‘이중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이 고개를 든다.
CNN은 “중국은 최근 수 년에 걸쳐 전력 수요 증가분을 사실상 모두 재생에너지로 충당해 왔다”며 “트럼프 정부의 결정은 미국을 분명한 패배자로 남기고 말 것”이라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