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3사의 CEO들은 지난해 모두 가시밭길을 걸었다.
유례없는 수주가뭄에 수천 명에 이르는 직원들을 내보냈다. 보유하고 있던 자산도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팔아 생존을 위해 몸집 줄이기에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조선사들이 재도약하기 위해 가야할 길은 여전히 까마득하다.
이에 따라 조선3사 CEO들은 2017년 불황에 버티기 위한 각기 다른 생존전략을 꺼내들 것으로 보인다.
◆ 권오갑 강환구, 현대중공업 투톱의 다른 역할 기대
5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이 권오갑 부회장과 강환구 사장의 투톱체제로 전환하면서 올해 본격적으로 구조조정 성과를 내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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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갑 현대중공업 부회장(왼쪽), 강환구 현대중공업 사장. |
권 부회장은 지난해 말 실시된 현대중공업그룹 사장단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권 부회장은 2014년 9월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 2년 넘게 구조조정을 주도했는데 이 성과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4월1일 비조선사업부를 분사한다. 현대중공업은 주력사업인 조선과 해양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분사를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조선업계 관계자들은 현대중공업이 지주사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분석한다.
권 부회장의 역할도 지주사체제 전환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권 부회장은 정몽준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의 최측근으로 꼽힐뿐 아니라 그룹기획실장도 겸임하고 있어 그룹의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작업을 주도할 적임자로 꼽힌다.
권 부회장은 분사과정에서 노조와 벌어질 충돌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노조는 “분사는 회사가 구조조정을 쉽게 추진하기 위한 방편”이라며 “즉각 분사방침을 철회하라”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노조가 12년 만에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복귀하면서 회사의 구조조정에 좀 더 조직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된 점은 더욱 큰 부담이다.
권 부회장은 현대중공업 대표이사에 취임한 직후부터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했는데 이 때문에 내리 3년 동안 노조의 파업도 겪었다. 노조는 지난해 초부터 노사갈등의 원인으로 권 부회장을 직접 지목해온 상황이라 권 부회장이 노조와 어떻게 관계를 풀어낼지 주목된다.
권 부회장이 현대중공업의 지주사체제 전환에 집중하는 동안 강환구 사장은 내부경영활동에 매진할 것으로 보인다.
강 사장은 현대중공업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일감을 확보하는데 전력투구해야 하는 상황에 몰려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조선3사 가운데 가장 많은 수주를 따내 조선업계 맏형으로서 체면을 지켰다. 그러나 수주잔량이 빠르게 줄면서 최근 군산조선소 도크(선박건조대)의 가동을 중단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 사장은 2014년 현대미포조선 대표이사를 맡은 뒤 경영을 빠르게 정상화한 경험이 있다. 강 사장은 당시 현대미포조선의 주력선박에서 수익을 내는 방식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했는데 현대중공업에서도 비슷한 전략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강 사장은 새해 벽두부터 노조와 ‘2016년 임금과 단체협약’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강 사장이 신규수주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임단협 조기타결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 정성립, 올해도 현금확보 위한 고난의 행군 할 듯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올해 마주하고 있는 최대현안은 ‘현금확보’다.
대우조선해양은 4일 대형 해양플랜트 1기를 인도해 현금 4600억 원을 받았다. 반복되는 유동성 위기로 자금난에 허덕이던 대우조선해양에게 가뭄에 단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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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 |
하지만 올해 모두 9400억 원의 회사채를 상환해야 하고 선박건조와 인건비지급 등에 필요한 수조 원에 이르는 운전자금을 마련하는 일은 여전히 정 사장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고 있다.
정 사장은 지난 3일 신년사에서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사람의 몸에 피가 잘 돌지 않고 어느 한 곳이 막히면 죽음에 이르듯 기업도 현금이 제대로 돌지 않고 막히면 생존할 수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정 사장은 올해 신규수주와 해양플랜트 적기인도에 집중해 현금을 확보하는데 온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정 사장은 지난해 수주가뭄을 이겨내기 위해 영업 최전선에 나서 해외선주에게 선박발주를 호소했다. 올해도 직접 영업일선에서 수주활동에 매진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대우조선해양에서 영업담당과 해외지사장 등을 지내며 해외 네트워크를 잘 다져왔던 점을 감안할 때 정 사장의 수주노력이 성과를 거둘 가능성도 있다.
정 사장은 2015년 대우조선해양 사장 내정자 신분으로 해외출장길에 올라 신규수주를 따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이 재무구조 악화와 분식회계 혐의 등으로 주식거래가 중단돼 있는 점은 수주활동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해외 선주사들은 조선사와 발주협상을 할 때 회사의 재무구조를 면밀히 살펴본다. 대우조선해양이 완전자본잠식과 높은 부채비율로 신용등급이 크게 낮았던 점이 지난해 하반기 수주가 거의 이뤄지지 못했던 주원인으로 꼽힌다.
정 사장은 지난해 연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2조8천억 원가량의 지원을 받아 가까스로 상장폐지 위기를 모면해 수주활동에 매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우조선해양의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인 ‘B+’ 단계에 머물고 있어 해외선주들로부터 신뢰를 얻어내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 박대영, 경영정상화 걸림돌 차단에 주력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도 다른 조선사 CEO들과 마찬가지로 올해 생존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박 사장은 지난 3일 ”살아남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며 “수주가뭄이 심화하는 최악의 업황을 견디기 위해 회사차원의 자구노력이 올해도 지속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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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 |
박 사장은 올해 그나마 다른 조선사들보다 기분 좋은 첫 출발을 했다.
박 사장은 5일 1조5천억 원 규모의 대형 해양플랜트 계약을 따냈다. 삼성중공업은 1분기 안에 이탈리아 에너지기업 에니(ENI)가 발주한 해양프로젝트의 본계약도 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박 사장은 지난해 9월 말부터 신규수주에 속도를 내고 있는데 연초부터 연달아 대형 프로젝트의 계약을 따내면 일감확보에 일정부분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들은 박 사장이 올해 해양플랜트를 제때 인도하는 데만 주력한다면 삼성중공업의 흑자전환을 이끌어내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박 사장은 삼성중공업의 경영정상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차단하는 데도 주력해야 한다.
현재 삼성그룹은 박근혜 게이트의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정기 임원인사를 무기한 보류하는 등 사업활동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그룹이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불똥이 튈 경우 박 사장이 그동안 진행해온 자구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을 재추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도 박 사장이 해결해야 하는 과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박 사장은 2014년 삼성엔지니어링과 합병을 추진했으나 주주들의 반대로 실패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룹에서 건설과 중공업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려는 행보를 보여줬던 점을 감안할 때 다시 합병이 추진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박 사장은 합병계획이 한 차례 무산된 뒤 ‘선 합병 후 구조조정’ 방식에서 ‘선 구조조정 후 합병’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사장이 올해 구조조정에 속도를 낸다면 삼성그룹이 원하는 합병시기를 좀 더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