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우파 포퓰리즘'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신우파 포퓰리즘의 이론화를 이끌고 있는 오렌 케스(Oren Cass, 오른쪽)의 미국 정치와 경제에 대한 시각이 주목받고 있다. |
[비즈니스포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취임 이후 미국은 기존 공화당 행정부와는 다른 정책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기존 공화당 정부의 전통적 노선은 자유시장, 대기업 중심, 감세, 규제 완화, 복지 삭감, 정부 역할 축소 등에 기초했다. 이에 따라 기존 공화당 정부에서는 자유무역, 글로벌리제이션, 미국 패권에 입각한 해외 문제 개입과 팽창주의 등이 추구됐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에서는 고율 관세에 입각한 보호무역, 반글로벌리제이션, 대외정책에서 고립주의 혹은 해외 문제 개입 반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2016년 대선 때부터 미국의 노후연금인 소셜시큐리티 삭감 등 전통적인 공화당의 복지 삭감에 반대했다. 특히 지난 2024년 대선 때에는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및 세제 확대를 공약하기도 했다.
트럼프주의(트럼피즘)는 아직은 완성형이 아니나 기존의 보수주의, 기존의 공화당 노선과는 분명 결을 달리하고 있다. 트럼프 지지층의 주축이 백인 저학력 중하류층인 점을 고려하면,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부자와 대기업에 초점을 둔 기존 공화당 노선과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수하지 않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러한 트럼프주의는 미국 보수 진영 내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신우파 포퓰리즘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2010년대 중반부터 대중 사이에서 기존 공화당이 대표하는 보수주의에 대한 불만이 시작됐고, 이는 트럼프의 등장으로 표면화된 것이다.
공화당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보수주의는 대기업에 대한 충성이었는데, 신우파 포퓰리즘은 노동자 중심이다. 기존의 보수주의가 대기업에 기반해 해외로 나가는 팽창을 통한 미국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라면, 신우파 포퓰리즘은 국내 제조업 부흥 및 노동 중심 성장을 중시한다.
해외나 특정 지역 편향의 대기업이 아닌 지역 기반의 경제 생태계 조성에 초점을 둔다. 산업 정책에 대한 정부의 불개입이 아니라 정부가 일부 산업의 방향을 유도할 수 있다고 본다. 시장을 절대시하는 시장 숭배도 비판한다. 시장이 선이라는 전제가 사회적 해악을 초래했다고 보는 것이다.
트럼프 등장 이후 이런 신우파 포퓰리즘을 가장 잘 대변하는 이가 오렌 캐스(Oren Cass)다. 지난 2008년 대선에서 밋 롬니 공화당 후보의 정책 자문을 했던 캐스는 현재 보수적 싱크탱크인 ‘아메리카 컴퍼스’을 운영하며 보수주의 경제적 포퓰리즘을 이론화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공화당은 기업 이익과 시장 근본주의에 포로가 됐기 때문에 보수주의는 미국의 제조업과 노동자들을 부흥시키는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2018년 ‘아메리카 인터레스트’에 기고한 ‘노동 가설’이라는 기고에서 “우리의 정치경제가 경제적 파이라는 교활한 메타포에 의존해 왔는데 이는 모든 미국인의 소비에 가용되는 국내총생산(GDP)의 양에 의해 성공이 측정된다”며 “하지만 이는 미국인들이 원했다고 생각했던 것이 행복을 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소비 중심, 성장 중심의 기존 경제 패러다임을 비판한 것이다.
그는 지난 6월22일 공개된 ‘복스’(Vox)와의 회견에서도 이런 주장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그는 “소비와 성장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이 소비와 성장을 이루기는 했으나 반드시 인간의 번영, 경제 강화로 조응하지 않았다. 가족과 공동체의 강화 및 강력하고 건강한 정치 시스템이나 민주주의로 연결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캐스는 현재 공화당의 기존 노선을 확정한 1980년대 레이건의 신보수주의 혁명은 이질적인 세 개의 집단을 조합한 연대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임신 중지 및 젠더 문제 등 사회문화적 문제에서 근본주의적 보수적 태도를 보이는 사회적 보수주의자, 경제적 문제에서 자유방임적(리버타리안) 시장자유주의자, 그리고 간섭주의적인 대외정책 강경파라 등 세 분파이다.
이 세 분파의 공통점은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였고, 냉전에서 승리였다. 그 연대의 결과로 자유방임적 시장자유주의가 중도우파의 경제적 정책으로 자리매김했다고 캐스는 주장한다.
그런 연대는 냉전 승리라는 맥락에서는 큰 의미가 있었으나, 중국과의 자유무역이 급속히 진행되고 거대한 재정적자가 벌어지는 와중에서 감세를 지속한 2000년대 이후에는 그 시한이 다했다고 캐스는 주장한다.
캐스 등이 이론화하는 신우파 포퓰리즘, 혹은 보수주의 경제포퓰리즘은 기존의 사회민주주의를 재포장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사회민주주의와 신우파 대중영합주의 모두는 노동자에 중심을 둔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는 중앙정부 주도의 복지 확대 및 재분에 초점을 두고, 신우파 포퓰리즘은 가족·공동체·책임이라는 보수적 가치와 병행되는 ‘시장 조정’형 경제 개입을 주장한다고 캐스 등은 주장한다.
사회민주주의는 불평등 해소, 분배, 정의를 강조하나, 신우파 포퓰리즘은 선한 삶과 도덕적 질서에 초점을 둔다. 전자는 삶의 방식은 개인 선택에 맡기나, 후자는 삶에 대한 사회적 판단을 중시한다. 전자는 국가의 역할에서 경제적 평등 보장을, 후자는 공동체·가정·국가 정체성 보호를 우선으로 생각한다. 전자는 자율적 개인이라는 시민을 상정하나, 후자는 공동체에 뿌리내린 책임 있는 시민을 상정한다.
요약하면 사회민주주의는 선택의 평등을 강조하고, 신우파 포퓰리즘 혹은 보수주의 경제포퓰리즘은 “어떤 선택이 더 가치 있는가”라는 규범적 판단을 중시한다.
이에 따라 캐스 등 신우파 포퓰리스트들은 미국 내 제조업 부흥 및 노동 중심 성장에 의한 노동에 기반을 둔 산업 회복, 출산 및 육아에 실질적 혜택을 부여하는 가정 중심적인 경제정책, 대기업 중심이 아닌 지역 기반의 경제 생태계 조성에 의한 중산층 확대 및 자립, 필요하다면 정부의 개입 및 유도에 의한 산업 정책 인정 등을 주장한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현재 정책이나 트럼프주의가 이런 신우파 포퓰리즘을 정확히 구현하냐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보여준 대표적 경제정책은 고율 관세를 통한 미국 산업 보호 및 제조업 부활, 그리고 트럼프가 추진하는 대규모 감세·지출 법안인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이다.
고율 관세 및 이를 고리로 한 외국의 양보가 미국 산업을 보호하고, 제조업을 부활시킬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적어도 트럼프 행정부는 그런 의도와 전략으로 고율 관세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트럼프의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은 전통적인 공화당 정책과 신우파 포퓰리즘이 섞여 있다. 저소득층의 건강보험인 메디케이드 등 복지 삭감과 감세는 전통적인 공화당 노선이다.
그러나 지출 삭감 효과는 거의 없어 재정적자 등 국가부채는 향후 10년간 3조 달러 내외의 재정적자를 더할 것으로 분석된다. 공화당의 전통 주류 세력들은 물론이고, 트럼프주의 의원들도 적극적 지지에 몸을 사린다.
트럼프가 1기 집권과 2기 집권 때 기용한 내각을 보면 신우파 포퓰리즘의 이해를 반영한다.
부통령은 공화당 정통 보수인 마이크 펜스에서 흙수저 출신이자 해외 개입에 대한 반대를 주장하는 제이디 밴스로, 국무장관은 최대 석유메이저인 엑슨 최고경영자 출신인 렉스 틸러슨에서 포퓰리즘 정치인 마코 루비오로 지명한 것이 대비된다. 또한 2기 집권의 노동장관은 강경한 운수노조인 팀스터스가 추천한 로리 차베스-데레머를 지명했다.
공화당 내에서는 조시 홀리 및 버니 모레노 상원의원이 민주당이 추진하던 노조 권한 강화법안인 ‘조직권보호법’의 내용을 반영한 ‘신속노동계약법’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의 공화당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트럼프와 트럼프주의가 지지층의 이해 및 신우파 포퓰리즘을 구현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트럼프의 오락가락하는 태도나 뒤죽박죽인 그의 정책은 분명 자신에 대한 지지층의 욕구를 의식하면서도 분명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는 신우파 포퓰리즘이 나온 배경과 욕구에 대한 직관은 있으나, 일관된 철학이나 이를 실행한 구조에 대한 이해는 없다. 그래서 이 신우파 포퓰리즘 혹은 보수주의 경제포퓰리즘을 우파 내에서 중심적인 노선으로 정착시키고자 한다면, 트럼프나 트럼프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이는 ‘시장 근본주의 이후 보수주의’의 정착이 될 것이다. 정의길/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