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대표이사 사장의 임기가 막바지에 접어든 가운데, 한수원의 숙원 사업 가운데 하나인 체코 원전 수출 사업의 마무리와 승계가 최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래픽 씨저널> |
[비즈니스포스트] 미불유초 선극유종(靡不有初 鮮克有終)은 유교의 경전인 시경에 나오는 말로, 처음이 없는 일은 없지만 끝이 있는 일은 드물다는 뜻이다. 유종지미(有終之美)라는 한자성어의 유래이기도 하다.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대표이사 사장의 임기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는데 체코 원전 수출 사업이 ‘유종지미’의 최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체코 원전 수출 사업은 윤석열 정권의 숙원사업이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직후 체코 대통령과 통화하며 사업 지속 의지를 드러내는 등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긍정적 기류를 이어가고 있다.
체코 원전 수출은 사기업 간의 거래가 아니라 정부 사이 협력 사업이라는 점에서 정권이 교체됐다고 하더라도 단기간에 사업이 중단될 가능성은 낮다.
이러한 상황에서 황 사장이 남은 임기 동안 수행해야 할 핵심 과업은 체코 원전 사업이 다음 정부에서도 안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외교적 기반을 마련하고 이를 원활히 인수인계하는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 불확실한 EU 승인 절차, 변수로 남은 리스크 요인들
현재 체코 원전 사업의 가장 큰 변수는 EU의 역외보조금 직권조사와 공사 승인 절차다. EU 집행위원회는 현재 역외보조금규정(FSR) 9조와 10조 1항을 근거로 '직권조사 예비검토'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FSR은 EU 가입국가가 아닌 국가의 기업이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과도한 보조금을 받고 EU 가입국가 기업의 인수합병이나 공공입찰에 참여하면 규제하는 규정이다. 프랑스전력공사(EDF)는 2024년 10월 EU 집행위원회에 이번 계약이 FSR을 위반했다고 신고서를 접수했다.
체코 현지에서는 이 문제가 사업의 전면 중단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관측이 나온다.
체코 현지 경제 언론인 호스포다르스케노비니는 브뤼셀의 소식통을 인용해 “만약 EU의 직권조사가 부정적으로 결론이 난다 하더라도 이는 체결된 계약이 무효가 되고 원전 발주 전체가 중단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라며 “예를 들어 벌금형이 부과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쪽에서는 계약이 무조건 진행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또 다른 체코 현지 언론인 레스펙뉴스는 “현재로서는 체코 정부가 계약 서명을 위한 자유로운 길을 확보한 것으로 보이지만 프랑스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그 부위원장 스테판 세주르네의 개입 가능성이라는 위협이 여전히 존재한다”라며 “페트르 피알라 총리 내각은 '세기의 프로젝트'에서 최종 승리를 거둔 것이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원전 업계의 한 관계자는 “EU는 체코 원전 사업과 관련해 보조금을 받았다는 중대한 징후가 있는지에 대한 예비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실질적 조사에 들어갈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단기간 내에 해결될 가능성이 높지 않은 사안인만큼 황 사장이 이 사안을 임기 내에 직접 해결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철저한 대응 전략 수립, 관련 자료 정비, 협의 채널 유지 등 후속 대응의 토대를 다져두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사업의 국익적 성격을 감안할 때, 후임 사장이 사업의 복잡성과 진행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안정적으로 인수할 수 있도록 ‘관리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라는 시선이 나온다.
◆ 체코 원전 수익성 논란, 실용주의 이재명 정부와 소통 과제
이재명 정부가 실용주의 노선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황 사장에게는 지속적으로 수익성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이번 사업과 관련해 계약의 타당성과 수익 구조를 새 정부에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특히, 비공개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웨스팅하우스와 계약 조항과 리스크 구조에 대해 정부 측과의 신뢰 있는 정보 공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자료를 제공 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업 추진의 명분과 경제적 실리를 함께 설명하고, 정부의 지속적인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황 사장에게 요구되고 있는 셈이다.
▲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2022년 9월19일 체코에서 요제프 시켈라 체코 산업부 장관과 원전 관계자들을 만나 한수원에 원전 사업을 맡겨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
◆ ‘정권 인사’ 아닌 ‘전문가’ 황주호, 유종지미가 걸린 마무리
황주호 사장은 서울대와 조지아공대를 거친 원자핵공학 박사로, 학계와 연구기관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온 원전 분야의 대표적 전문가다.
윤석열 정부가 임명했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한수원에서 위원회 활동을 해온 이력이 있기 때문에 정권과 무관하게 실무적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사이기도 하다.
다만 황 사장이 윤석열 정부의 원전 수출 확대, 원전 강화 기조를 선명히 반영해왔다는 평가도 나오는 만큼, 정치적 논리를 넘어 사업의 실질적 성과와 기술적 안정성을 기반으로 마무리에 임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남은 임기 동안 체코 원전 수출 사업과 관련해 정책적 명분과 기술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후임에게 안정적으로 사업을 인계해주는 것이 그가 ‘유종지미’를 거둘 수 있는지를 결정짓는 관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원전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재명 정부가 체코 원전 사업을 무리하게 중단시킬 가능성은 매우 낮다”라며 “아직 여러 난관이 남아있는 사업인만큼 이 사업이 잘 마무리된다면 두 정권 모두의 공이 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