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체리자동차가 10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자동차 전시 행사에서 판매 보조용 휴머노이드 모르닌(Mornine)을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중국의 희토류와 희귀광물 수출 통제가 자국의 첨단 제조업 경쟁력 강화의 유력한 수단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미중 무역전쟁에서 희토류 공급망 통제를 대응 카드로 꺼내들었다. 그런데 이런 통제가 드론을 비롯한 무인항공기와 로봇 등 차세대 제조업 경쟁력 강화에도 밑돌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9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이 희토류 금속 수출을 완전히 재개하지 않으면 미국과 유럽 내 전기차 관련 공장이 운영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문제는 중국의 희토류 통제가 전기차뿐 아니라 다른 첨단 산업에도 여파를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전기차에 사용하는 일부 기술을 인간형 2족 로봇(휴머노이드)나 드론과 같은 비행체에도 호환할 수 있어 희토류 통제로 이들 산업까지 지배력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에 따르면 전기차 부품 가운데 70%는 로봇에 호환할 수 있다. BYD나 샤오펑과 같은 전기차 기업은 이를 바탕으로 로봇 사업에 활발히 진출하고 있다.
미국 씽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일라리아 마조코 선임연구원은 29일 타임 인터뷰에서 “전기차는 단순히 배터리 구동 차량 이상”이라며 “다른 기술 발전 경로를 제공하는 시너지 효과가 나온다”라고 말했다.
중국은 2015년 세계 최첨단의 제조업 강대국이 되겠다는 10년 계획 ‘중국 제조 2025’를 수립한 뒤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는 중국이 전기차와 태양광 등 주요 산업에서 세계 시장을 이끌도록 만드는 성과를 낳았다.
중국 정부가 이번 계획의 목표를 대부분 달성했다고 보고 다음 10년을 겨냥한 차기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는 블룸버그 보도도 26일 나왔다.
여기에 희토류 수출통제 효과까지 더해서 로봇을 비롯한 신산업까지 지배력을 이어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대만 디지타임스는 상황을 잘 아는 취재원 발언을 인용해 “희토류 자석은 고성능 모터에 필수 부품”이라며 “가볍고 출력이 높은 드론 엔진에 들어간다”라고 짚었다.
로봇과 드론 모두 최근 군사 안보 부문에서 사용처가 급격히 늘고 있다.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무역이나 안보 경쟁 명분으로 희토류 통제를 이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타임은 “중국은 드론 배송이나 에어택시와 같은 분야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며 “여기에도 전기차 산업이 핵심 동력을 제공한다”라고 설명했다.
▲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윈우두에 위치한 중국 DJI 드론 매장에서 13일 고객들이 매빅 4 프로 제품을 구경하고 있다. <연합뉴스> |
미국과 중국 정부는 5월1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상호 고율 관세 부과를 당분간 유예하기로 합의하고 공동 성명까지 내놨다.
그러나 양국이 반도체나 희토류 등 서로 우위를 점한 제품 수출은 계속 통제해 글로벌 공급망 경색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은 전기차 모터에 필수 부품인 희토류 영구자석 공급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을 비롯한 경쟁국들에게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기준 세계 희토류 생산의 69%를 장악했다.
중국이 미국과 무역 갈등에 희토류를 ‘무기화’해서 글로벌 전기차 산업 우위를 강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희토류 공급망 경색이 미국과 유럽 전기차 생산 차질로 이어지는 실제 사례도 나오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29일 “포드가 공급사로부터 영구자석을 구하지 못해 지난주 시카고 공장을 일시 폐쇄했다”라고 전했다.
옌스 에스켈룬드 주중유럽연합 상공회의소 회장 또한 희토류 공급 부족으로 유럽 내 공장 다수가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 또한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자 전기차 배터리 등에서 희토류를 재활용하려 하지만 실제 성과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견해가 중론이다.
CNBC는 28일 “희토류 재활용은 까다롭고 에너지와 시간이 많이 든다”라고 보도했다.
요컨대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를 통해 글로벌 전기차 경쟁에서 재미를 보고 있는데, 앞으로 로봇과 드론 등 다른 첨단산업에서도 희토류 통제를 ‘제조업 굴기(우뚝 일어선다는 뜻)’의 발판으로 삼을 공산이 크다.
타임은 “미래산업 10개 가운데 6개 분야에서 중국은 이미 혁신 선두에 근접했거나 최고 수준을 뛰어넘었다”라며 “전기차는 중국이 기술 선도국에 오를 전조일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