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9일 기준금리 인하를 발표한 뒤 진행한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을 직접적으로 시사했다.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9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에 대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한국 경제가 미국의 관세정책에 따른 수출 상황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만큼 대외 불확실성을 방어하기 위한 통화정책의 필요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바라본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30년 동안 한국 경제성장률이 1% 이하로 내려간 것은 1998년 외환위기(IMF)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등 3번뿐이다. 한국은행이 이날 수정 발표한 2025년 경제성장률 0.8%는 그야말로 한국 경제의 ‘위기’ 상황에서만 나왔던 수치다.
이에 더해 한국은행은 미국의 상호관세 상당 폭 인하를 전제로 해도 올해 경제성장률이 0.9% 수준으로 1%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긍정적 시나리오로 봐도 0%대 저성장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총재는 이날 제시한 경제 역성장 가능성 14%가 글로벌 금융위기 때 역성장 확률치(5%)의 3배 수준이라는 점을 짚었다.
이 총재는 “현재 한국 경제는 의존도가 높은 수출 상황 불확실성으로 성장률 평균도 낮아졌는데 변동 폭도 굉장히 크다”며 “2025년 수정 경제성장률 0.8%는 내수가 100% 기여하는 것이고 순수출 기여도는 0%로 상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올해 하반기부터 미국 관세정책 효과 등이 본격화되면 2026년에는 순수출 기여도가 –0.3%로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했다.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9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 총재는 시장의 예상대로 금리인하 시계를 다시 가동한 데 더해 추가 인하 가능성도 열어뒀다.
한국 경제 침체가 예상보다 더욱 나쁜 상황이기 때문에 인하 폭도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금통위원 6명 가운데 4명은 향후 기준금리 결정에 관한 전망에서 3개월 뒤 금리가 지금 수준보다 낮아질 수 있다고 바라봤다. 이 총재의 추가 인하 시사에 힘이 실리는 부분이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날 금통위의 금리인하 결정 뒤 내놓은 보고서에서 “통화당국이 추가 인하 가능성을 숨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8월을 시작으로 하반기 인하 전망을 유지한다”며 “다만 2026년 성장률은 1.6% 수준으로 제시됐고 올해 성장경로가 개선될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연말 최종 금리수준은 2.25% 수준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금리인하 방향성에 관한 재확인에도 앞으로 한국은행은 통화정책 결정을 두고 매번 살얼음판을 걷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경기부양 과제와 가계대출 등 내부 상충상황뿐 아니라 환율, 미국과 금리격차 등에 따른 여파까지 묵직한 변수들이 너무 많다.
경제 상황에 관세정책 등 글로벌 통상환경, 미국의 재정적자 등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 등 통제가 어려운 대외 요인들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는 점은 딜레마를 더욱 키운다.
이 총재도 이런 불확실성에 관한 경계를 풀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이 총재는 이번에 ‘빅컷(0.5%포인트 내리는 것)’을 하지 않고 금리를 0.25%포인트만 내린 것에 관해 “금리를 너무 빨리 내리면 코로나19 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너무 빨리 낮추면 부동산 등 자산가격만 끌어올릴 수 있다”며 “특히 지금과 같은 변동성 상황에서 유동성 추가 공급은 기업 투자나 실질경기 회복보다 자산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기준금리를 내리더라도 경제성장률뿐 아니라 금융시장 안정도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기준금리를 1%대까지 내릴 가능성에 관해서도 선을 그었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날 ‘5월 금통위: 부리가 날카로운 비둘기’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금통위가 추가 인하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연속적 인하 시그널은 없었다”며 “전체적으로 비둘기파였지만 가계부채에 관한 경계와 1%대 기준금리 기대감 일축 등 매파적 요소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금통위가 경제성장 방어를 위한 정책 대응을 아끼지 않겠지만 앞으로 가계부채 등 금융안정을 살펴보면서 인하와 동결을 반복할 것”이라며 “더군다나 이날 미국 무역법원 판결과 같이 관세 불확실성은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어 성장률 전망과 통화정책 등 모두에서 단정적으로 예견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