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8월 폭염이 발생한 서울 여의대로 일대 도로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기후의 영향이 미래세대, 특히 취약계층에 더욱 심각하게 나타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한국 정부의 대처가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기후위기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의 생존을 돕는 기후적응정책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지만 한국의 관련 정책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2일 관련 학술 발표와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미래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자주 극한기후 현상을 겪게 될 것으로 전망됐다.
벨기에 브뤼셀자유대학교와 스위스 ETH 취리히 등은 7일 극한기후 발생 빈도 증가 추이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각국이 파리협정을 준수한다고 가정하더라도 2020년 이후 태어난 세대의 약 52%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높은 빈도로 극한 폭염을 겪게 될 것으로 나타났다. 파리협정은 지구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억제하기로 한 국제 조약이다.
보다 현실적으로 210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이 3.5도 상승하는 시나리오를 가정하면 극한 폭염에 노출될 미래세대의 비율은 약 92%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사실상 2020년 이후 태어난 거의 모든 세대가 과거보다 더 강한 폭염을 자주 겪게 되는 셈이다.
이번 보고서에서 언급된 ‘극한 폭염’은 기후변화가 없었다면 1만 분의 1 확률로 발생했을 수준의 강도 높은 폭염을 의미한다.
2020년 이후 태어난 세대들은 현실적 시나리오를 가정하면 극한 폭염을 한 해에 18~26회 겪을 것으로 분석됐다. 2020년 이전에 태어난 세대들이 최대 6회를 겪는 것과 비교하면 4배 가량 증가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아동, 노년층 등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이 특히 더 높은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다른 전문가들도 비슷한 견해를 내놨다.
루크 하턴 뉴질랜드 와이카토대학교 환경과학과 박사는 국제기후전문매체 ‘카본브리프’와 나눈 인터뷰에서 “이번 연구는 기후변화가 얼마나 불평등한 위기인지를 잘 보여준다”며 “지구온난화에 거의 기여하지 않은 계층이 가장 극심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극한 폭염에 높은 빈도로 노출되는 미래세대 비중 변화를 각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라 나타낸 그래프. 붉은색은 2100년까지 산업화 이전 대비 기온이 3.5도 오르는 상황을 가정한 곡선이며 파란색은 1.5도 아래로 억제되는 상황을 가정한 곡선이다. 노란색은 그 중간 지점인 2.5도 수준을 나타낸다. <네이처> |
하지만 한국은 이같은 위기에도 불구하고 관련 정책이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국내 기후시민단체 ‘플랜1.5’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조사를 보면 2025년도 예산안에서 ‘저소득층 에너지효율 개선사업’ 예산이 2007년 사업 시행 이후 처음으로 삭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사업은 취약계층이 주로 이용하는 사회복지시설에 고효율 냉난방기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동복지시설, 보건소, 병원 등 10년 이상 노후된 공공건축물을 대상으로 한 ‘공공건축물 리모델링 사업’ 예산 역시 전년 대비 10.2% 감액됐다.
플랜1.5는 이같은 삭감이 기획재정부 산하 기후대응기금이 전년 대비 10%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한수연 플랜1.5 정책활동가는 “예산안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에 예산을 집중하기는커녕 도리어 후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산업계 지원보다는 취약계층 보호, 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 수요관리 등 시민 삶의 질을 높이고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국회 예산 심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책 분석 연구단체 ‘나라살림연구소’도 같은 2025년도 예산안을 두고 비슷한 평가를 내놨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최근 정책 보고서를 통해 “기후대응기금의 운영 현황을 보면 정책 추진 의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체계적이지 못하며 사전 조사 부족으로 집행률 부진이 반복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기후대응과 탄소중립 이행 과정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정의로운 전환’ 측면에서 봤을 때 정부 정책은 "매우 부족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정부는 정의로운 전환과 직접 연계된 사업을 중심으로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한 전환 예산사업을 편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