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2025-05-07 16: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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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서울고등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파기환송 사건 공판을 6.3 대선 이후로 미뤘다.
이로써 조희대 대법원장의 이례적 전원합의체 회부와 유죄 취지 파기환송 결정으로 불거진 '대법원 사태'는 사실상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사법부는 ‘정치 개입’ 논란으로 신뢰에 큰 흠결을 남겼으며 ‘사법 개혁’ 목소리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7일 전북 전주시 풍남문 앞 광장 인근에서 진행한 '골목골목 경청투어:국토종주편' 유세에서 지지자 및 시민들에게 밝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고법 형사7부(이재권 부장판사)는 7일 이재명 후보의 파기환송심 재판 일정을 이번 달 15일에서 6월18일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당연한 결정’이라며 이 후보의 다른 재판들도 대선 이후로 일정을 미뤄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에서 “이제라도 법원이 국민 주권의 원칙과 상식에 맞는 판단을 내린 것은 다행”이라며 “앞으로도 국민 주권 구현에 방해가 되는 요소는 없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고법이 이날 재판 일정을 연기함에 따라 ‘대법관 줄탄핵’에 따른 대법원 마비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됐다. 대선이 오는 6월3일에 실시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선 전까지 이 후보의 ‘사법리스크’는 사실상 사라졌다.
서울고법의 파기환송심이 그대로 진행됐다면 민주당은 대선 전에 대법원의 이재명 후보 최종 유죄 판결을 막기 위해 조희대 대법원장 등 파기환송 결정에 찬성한 대법관 10명을 탄핵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앞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6일 페이스북을 통해 "대법원이 끝내 사법쿠데타의 음모를 갖고 사법 폭동을 일으킨다면 구국의 결단으로 대법원장을 포함해 사법 폭동에 가담한 법관 전원의 탄핵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서울고법의 재판 일정 연기 결정 이후 민주당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탄핵을 사실상 철회했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탄핵 카드를 완전히 보류하거나 접은 것은 아니다”라며 “사법농단에 청문회나 특검 절차들은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 대변인은 이어 “사실 규명을 위한 여러 가지 조치들을 진행하면서 탄핵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대법원이나 사법부의 움직임을 계속 주시하겠지만 당장 '행동'에 돌입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법원의 갑작스런 파기환송 선고를 두고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에서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무리수였다는 평가가 쏟아져 나왔다.
▲ 조희대 대법원장이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에 참석해 입술을 다물고 있다. <연합뉴스>
조 대법원장은 지난 4월22일 소부에 있던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이례적으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데 이어 단 두 차례의 심리만 거쳐 초고속으로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대법원이 사건기록 6만8천 장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는 4월22일과 24일 열렸는데 A4 6만8천 장 분량에 달하는 이 후보의 사건 기록을 이틀 만에 제대로 검토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민주당은 대법원이 '파기환송'으로 답을 미리 정해놓고 재판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대법원과 일전을 불사하겠다고 나섰다.
변호사 출신인 전현희 민주당 최고위원은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이 나온 뒤 규탄 기자회견에서 “A4 6만 장 분량의 사건 기록을 이틀 만에 읽는 것은 대법관들이 챗GPT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법원 내부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할 대법원이 스스로 정치 논란의 중심에 들어갔다는 비판이 나온 대목이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뼈아픈 대목이다. 김주옥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와 송경근 청주지방법원 부장판사 등은 법원 내부망에 조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의 ‘졸속 재판’을 비판하는 글을 실명으로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상당수의 일반 국민들도 이 후보에게만 적용된 대법원의 ‘초고속 심리’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사태 이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이재명 후보의 지지도가 흔들리지 않았고 일부 조사에서는 오히려 상승하는 모습도 보였다. 많은 유권자들이 이번 대법원의 행태를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한국갤럽이 6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의 대통령 선호도는 47%로 4월11일 발표 조사(42%)보다 5%포인트 올랐다. 특히 중도층에서도 이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호한다는 응답이 55%로 전달 조사 결과(43%)보다 12%포인트나 늘었다.
이런 민심을 바탕으로 만일 정권이 교체된다면 대법관 수를 늘리거나 대법원 판결을 문제 삼아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사법부 개혁 추진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은 대법관 수를 현재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과 함께 법원 판결에 대한 헌법소원을 허용함으로써 사실상 대법원이 헌재 밑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 발의도 검토하고 있다.
대법원은 그동안 처리해야 할 사건 수와 비교해 대법관 수가 적다면서도 최고 법원으로서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대법관 증원’을 거부하면서 ‘상고법원’ 설치를 요구해 왔다.
또한 대법원의 판결이 헌법재판소의 심사대상이 된다는 것은 법원 체계상 대법원이 헌법재판소의 하위 법원으로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조 대법원장의 섣부른 결정이 대법원의 위상을 떨어뜨리게 만들 수도 있는 셈이다.
이와 함께 민주당은 7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조희대 대법원장 등 사법부의 대선 개입 의혹 진상 규명 청문회’ 실시 계획서를 채택했다. 현직 대법원장을 대상으로 국회 청문회가 개최되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친명(친이재명) 좌장으로 평가되는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번 대법원의 정치개입 사태에서 드러났듯 국민을 위한 대법관 증원 등 사법부 개혁 또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이날 유튜브 방송 겸손은 힘들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번에 얼마나 큰 사법 불신을 초래하게 했느냐면 ‘아, 재판장이 기록을 보지 않고 판결을 하는구나’라는 것을 우리 국민들이 알게 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민주당은 이재명 후보가 재판 리스크에서 벗어남에 따라 당장은 대선에 집중하고, 사법 개혁 요구는 시간을 두고 접근할 것으로 정치권 안팎은 바라보고 있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는 한국갤럽이 중앙일보 의뢰로 지난 3~4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06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활용한 전화 면접 방식으로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