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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마음] 직사광선에서 햇살로 나아가는 방법

반유화 yoowha.bhan@gmail.com 2025-05-07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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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마음] 직사광선에서 햇살로 나아가는 방법
▲ 양육자의 관심이 아이에게 따뜻한 햇살이 되기 위해선 우선 양육자 자신 안의 불안을 다룰 필요가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비즈니스포스트] 어릴 적 나는 과자 봉지나 음료수 병, 치약 튜브에 인쇄된 글씨를 읽는 것을 좋아했다.

'식품유형: 탄산음료, 소비기한: 밑면 표기일까지, 원재료명: 정제수, 이산화탄소...' 같은 문구들을 천천히 읽어나갈 때면 마치 암호를 해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랬던 나에게 ‘직사광선’은 약간은 호환마마같은 존재였다. 거의 모든 제품에는 늘 “직사광선을 피해 서늘한 곳에 보관하세요”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직사광선이 대체 뭐길래 모두가 이렇게까지 피하라는 걸까.

당시에는 인터넷도, 인공지능도 없었고, 그렇다고 굳이 사전을 찾거나 어른에게 물어볼 만큼의 호기심까지는 아니었기에 이 궁금함은 마음속에서 한동안 오래 자리하고 있었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직사광선’이란 햇빛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 느낀 황당함과 허탈함, 그리고 뒤늦게 찾아온 깨달음이란. 우리는 햇빛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너무 강하면 타버리고, 파괴되며, 상해버린다. 

오랜 세월이 지나 정신과 의사가 되어 나는 다시 직사광선을 떠올렸다. 양육자의 애착과 관심은 그것이 자녀에게 어떻게 쏟아지느냐에 따라 햇살이 되기도 하고 ‘직사광선’이 되기도 했다. 

관심이 지나치게 직접적이고 과도해지면 간섭이 되고, 침투가 되는 것을 목격했다. 

"너를 사랑해서 그래"라는 명목 아래 이루어지는 지나친 개입은 대체로 양육자가 느끼는 불확실성과 불안에서 기원했다. 그런데 이것을 깨닫는 일은 무척 어렵다.

그 개입이 늘 태양의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마땅히 좋을 것만 같은 바로 그 모습, 즉 사랑의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에, 태양도 식물도, 다시 말해 양육자도 아이도 모두 속아버리고 말 때가 있다. 

그렇다면 양육자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따뜻한 햇살로 남을 수 있을까.

우선 필요한 것은, 자신 안에 있는 불안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일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 실패에 대한 두려움, 부족한 부모가 되고 싶지 않은 조급함. 이런 감정들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생긴다. 문제는 불안을 느끼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있다.

자신의 불안을 곧바로 아이에게 투사하는 대신, 한 걸음 멈추어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순간 내가 느끼는 조급함은 아이 때문일까, 아니면 나의 두려움 때문일까?"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견디지 못해 개입하려는 건 아닐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만으로도, 양육자의 관심은 훨씬 부드럽고 적절해질 수 있다.

물론 불안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고 완전히 없앨 필요도 없다. 그 불안을 덜어내기보다는 인정하고 품을 때, 우리는 애착이 침입으로 변모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 불안을 직시하고 들여다보는 시도야말로 햇빛의 세기를 조절하는 방법이다.

양육자-아이와의 관계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애착을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형태로 제공하는 일은 늘 어렵고 복잡하다. 햇빛의 세기를 누구도 완벽하게 조절할 수는 없으며, 완벽하게 조절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모든 이는 햇빛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때로 햇빛이 너무 강렬해서 힘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에게 햇살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줄 수 있다.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여성학협동과정 석사를 수료했다. 광화문에서 진료하면서, 개인이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책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언니의 상담실', '출근길 심리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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