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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록-이건호의 불편한 동거는 계속된다

김수정 기자 hallow21@businesspost.co.kr 2014-08-22 16:5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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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록-이건호의 불편한 동거는 계속된다  
▲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시작은 창대했으나 그 끝은 미약했다.' 금융감독원의 KB금융 제재결정을 두고 나오는 말이다.

금감원은 21일 오후부터 장시간에 걸쳐 마라톤 심의를 벌인 끝에 22일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은행장에 대해 경징계를 결정했다. 금감원은 KB금융 두 수장에 대한 중징계를 통보한 이후 두달 이상 결정을 미뤄오다 애초 예고와 달리 제재수위를 낮췄다.

금감원은 KB금융 제재문제와 관련해 금융당국의 무능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후폭풍을 맞고 있다.

임 회장과 이 은행장은 이번 결정으로 당장의 퇴진은 면했으나 그룹 안팎의 상처를 치유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징계 질질 끈 금감원

금감원은 22일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게 각각 ‘주의적 경고’를 결정했다. 심의위원들은 21일부터 회의에 들어가 도시락을 배달시켜가며 장시간 소명을 청취하고 격론을 벌인 끝에 자정을 넘겨서야 결론을 내렸다.

금감원이 애초 예고했던 것보다 징계수위를 한 단계 낮춘 것은 두 사람이 동반퇴진할 경우 발생할 경영공백이 고려됐다는 후문이다.

금감원은 KB금융 관련 제재를 일단락 지었으나 이 과정에서 심의지연과 제도운영 등 여러 허점을 노출시키며 금융권 최고기구로서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금감원은 우선 2달 이상이나 의결을 질질 끌어 비난여론을 자초했다. 엄정제재를 통보하고도 결정이 지연되는 바람에 잡음과 변수가 끊이지 않았다. 두 수장에 대한 동정론이 나온 것은 물론이고 외압설, 로비설, 봐주기설 등 뒷말이 난무했다.

여기에 감사원이 금감원의 감독제재에 이의를 제기한 점도 사태를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 감사원은 지난 5월 금융위원회의 유권해석을 문제삼아 금융당국의 제재심 결정에 제동을 걸었다. 금감원도 감사원 결정을 핑계로 결정을 지연시켰다.

◆ 금감원장 권한 불투명 등 제도상 허점

제도상의 허점도 드러났다. 제재심의에 민간 심의위원들이 참여하면서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한 탓에 결정이 더욱 늦어졌다는 것이다. 이번에 두 사람에 대한 징계수위가 낮춰진 것도 민간위원들의 입김이 컸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제재권한을 두고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금감원 제재심의 결정은 자문기구의 결정일 뿐 중징계에 대한 최종결정은 금융위원회 소관이다.

금융위 설치법 등에 따르면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와 관련해 중징계는 금감원장이 건의하고 금융위가 결정하도록 돼 있다. 또 경징계는 금감원장이 결정한다.

하지만 금융지주회사법은 금감원장을 배제하고도 금융위가 경징계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즉 금감원장의 권한에 대해 논란의 소지가 있는 셈이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말 제재심의에서 KB수뇌부 제재가 최종 확정되느냐는 질문에 “제재심의위원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 답변했던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 금융사 제재시스템 개선요구 목소리

KB금융 징계지연 과정에서 드러난 제도상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금감원의 제재심의위원회를 페지하고 금융제재위원회를 독립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면서 “금융사고와 관련한 제재문제가 투명하고 일관성있게 다뤄질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임영록-이건호의 불편한 동거는 계속된다  
▲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이 21일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 회의에 출석하는 모습.
제재심의위원회는 금감원장의 자문기구다. 따라서 최 원장이 이번 의결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최 원장은 애초 KB금융 수뇌부에 대해 거듭 중징계할 뜻을 내비쳐 왔다.

심의위원들의 입장은 달랐다. 임 회장의 신용카드 고객정보 유출과 주전산기 교체문체를 중징계할 만한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또 이 행장의 주전산기 교체와 도쿄지점 부실대출 문제도 국민은행이 자진신고를 했다는 점을 이유로 징계수위를 낮춰 결정했다.

그러나 금융권은 최 원장이 제재심의 이번 결정을 거부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본다. 가뜩이나 금융당국이 금융사의 혼란만 부추겼다는 지적을 받아온 마당에 다시 의결을 뒤집으면서까지 원점으로 되돌리면 또 다시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노조, 자진퇴진 안하면 총파업도 불사

KB금융은 수뇌부 동반퇴진이라는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제재결정이 나오기까지 내부적으로 상처가 컸던 만큼 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경영공백이 길어지면서 계열사 대표들에 대한 인사가 늦어진 것은 물론 노조의 경영진 퇴진 압박 등 안팎으로 시끄러운 상황이 이어졌다. 따라서 경영정상화가 이뤄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당장 노조의 반발이 거세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산하 국민은행 지부는 22일 최수현 금감원장을 포함해 임 회장과 이 행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노조는 성명서에서 “애초 중징계를 사전통보하고서도 권력의 눈치만 보다가 꼬리를 내려 엄정하고 중립적으로 금융감독을 할 수 없는 허수아비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라며 금감원의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노조는 “권력싸움을 벌이다 KB금융지주와 KB국민은행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임 회장과 이 행장은 물론이고 부실감독과 부실징계로 권력에 야합한 최수현 금감원장의 사퇴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임 회장과 이 행장이 자진사퇴하지 않을 경우 총파업에 나설 뜻을 밝혔다.

◆ 임영록-이건호 불안한 동거 끝낼까

경영진들 사이의 내부갈등도 쉽게 봉합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KB국민은행이 전산시스템 교체문제를 두고 금감원의 특별검사를 요청하면서 불거졌다.

  임영록-이건호의 불편한 동거는 계속된다  
▲ 이건호 국민은행장
그러나 금융권은 임 회장과 이 행장간 권력다툼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지주회사체제로 운영되는 금융그룹의 지배구조상 회장과 은행장 사이의 갈등은 비단 KB금융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임 회장과 이 행장이 이번 일을 계기로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황에서 현안들을 놓고 또 다시 부딪칠 가능성도 높다. 당장 계열사 CEO를 비롯한 대규모 임직원 인사, 주 전산 시스템 결정, 경쟁력 회복 등 현안들이 기다리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둘 중 한 사람은 중징계를 받아 물러날 것이란 예상이 나왔는데 똑같이 경징계를 받게 되면서 불안한 동거가 이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임 회장과 이 행장도 이런 시선을 의식한 듯 제재심의 최종결정을 받아든 뒤 곧바로 관계 회복을 위한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22일 오후 경기도 가평의 백련사에서 계열사 경영진과 함께 1박2일 템플스테이를 진행하며 KB금융의 화합과 경영정상화 방안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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