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한 엑손모빌 주유소.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글로벌 정유 대기업 엑손모빌이 기후투자자들과 힘싸움에서 승리를 거뒀다.
이들 투자자들은 엑손모빌의 기후정책 축소를 문제 삼아 경영진 교체를 노렸는데 엑손모빌은 주주총회에서 기존 이사회 구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엑손모빌의 사례가 다른 화석연료 기업들의 기후정책 후퇴를 가속화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9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이날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엑손모빌 기존 이사 12인은 평균 95%의 찬성률을 받아 연임이 결정됐다.
이번 주총 결과는 엑손모빌이 자사의 기후정책 축소를 반대하는 일부 기후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추진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이목이 집중됐다.
투자자 단체 팔로우디스와 투자자문사 아르주나캐피털이 엑손모빌의 소송 대상으로 이들은 지난해부터 엑손모빌 이사회 연임 반대를 촉구하는 집단행동을 이어왔다. 엑손모빌 이사회가 2030년 단기 온실가스 감축목표 삭감 등 기후정책을 약화시켰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엑손모빌은 팔로우디스와 아르주나캐피털이 의도적으로 자사 이익을 침해하고 운영을 방해한다며 올해 1월 텍사스주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이에 팔로우디스와 아르주나캐피털 양측은 엑손모빌 이사회를 상대로 한 불신임 결의 추진을 취소하고 법원에 소송 중단을 요청했다. 현재 텍사스주 연방법원은 팔로우디스를 대상으로 한 소송 건은 기각했으나 아르주나캐피털을 대상으로 한 건은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엑손모빌은 이번 주총 공식성명을 통해 “오늘 우리 투자자들은 규율과 가치 창출이 더욱 중요하다는 강력한 의사 표현을 내놨다”며 “일부 활동가 집단들은 오늘 결과를 놓고 승리를 주장할 수도 있겠으나 상식적으로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이들 기후투자자 단체들을 겨냥한 승리 선언을 내놓은 셈이다.
엑손모빌 주주들은 사내 이사 재임 투표에 더해 이사회가 제출한 온실가스 분담금 반대안, 플라스틱 사업 확대안 등 기후 대응을 역행하는 안건에도 대거 찬성표를 던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엑손모빌 주총 결과를 놓고 글로벌 화석연료 기업들이 투자자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기후정책 축소를 이어가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마르시 프로스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기금(CalPERS) 최고경영자. <연합뉴스> |
마르시 프로스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기금(CalPERS)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를 통해 “이번 분쟁의 영향은 기후를 넘어 투자자 활동에 광범위한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완벽한 거버넌스 실패이며 다른 정유 기업들이 투자자들의 목소리를 침묵시키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위험한 선례가 됐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기금은 엑손모빌의 대주주로 프로스트 CEO는 주총을 앞두고 대런 우즈 엑손모빌 CEO를 대면해 기후정책 확대를 촉구하기도 했다. 캘리포이나공무원연기금은 이번 주총에서 대런 우즈 CEO와 다른 사내 이사들의 연임에 반대표를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비영리단체 리클레임파이낸스의 아가테 마송 캠페이너도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이번 투표를 통해 엑손모빌은 기후정책 실천을 요구하는 투자자들의 목소리를 침묵시킬 수 있게 됐다”며 “기후 과학과 투자자들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쉘과 BP 등 여타 글로벌 정유 대기업들도 기후 대응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정책 변경을 이어온 만큼 엑손모빌의 전례를 따라 기후투자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마크 반 팔로우디스 창립자는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투자자를 상대로 소송이라는 공격 행위를 서슴지 않는 엑손모빌을 상대로 많은 주주들이 행동을 보여줄 기회를 잃었다”며 “우리 행동은 이사회와 투명한 소통을 요구하기 위함이었는데 이제 엑손모빌의 거버넌스 체계는 주주들의 손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