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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K퇴직연금을 묻다 일본①] 부자 아빠에 가난한 아들 거부한다, '일본형 IRP' 청년층 관심 폭발

김태영 기자 taeng@businesspost.co.kr 2024-05-27 17: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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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당신의 노후 계획은 안녕하십니까. 올해 한국사회는 퇴직연금을 도입한 지 20년차를 맞았다. 하지만 퇴직연금이 퇴직 이후 안정적 삶을 보장하는 진정한 의미의 '퇴직연금'이 되기 위해선 여전히 가야할 길이 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비즈니스포스트는 특별취재팀을 꾸려 퇴직연금 선진국을 찾는다. 우리보다 앞서 제도를 도입한 호주, 일본, 미국의 퇴직연금 장단점을 알아보고 국내 퇴직연금제도가 가야할 방향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 일본 글 싣는 순서
① 부자 아빠에 가난한 아들 거부한다, '일본형 IRP' 청년층 관심 폭발
② 하지메 야나기다 일본JP모건 전무 “일본 퇴직연금도 DC형이 주류될 것”
③ 류재광 간다외국어대 아시아언어학과 교수 “원리금보장 상품 의존하면 디폴트옵션 실패할 것”
④ 다이와종합연구소 정책조사부 연구원 "퇴직연금 핵심은 투자교육"
⑤ 노무라자산운용 출신 전문가 2인 “디폴트옵션에 강제성 필요”
⑥ 일본 전문가들이 바라본 한국 퇴직연금시장

 
[노후, K퇴직연금을 묻다 일본①] 부자 아빠에 가난한 아들 거부한다, '일본형 IRP' 청년층 관심 폭발
▲ 5월 도쿄 미나토구 시내 전경. 도쿄시내에는 옛 모습을 간직한 건물들이 많다. <비즈니스포스트>
[도쿄(일본)=비즈니스포스트] ‘짤랑 짤랑.’

도쿄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지 주머니가 동전으로 그득했다. 외국인은 주로 현금을 이용해 지하철을 타는데 거스름돈 대부분이 동전이었기 때문이다.

2007년 마지막으로 도쿄를 방문했을 때와 도시의 풍경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변화를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가 다시금 느껴졌다.  

그러나 일본 퇴직연금시장 만큼은 최근 들어 사뭇 달라진 흐름을 보였다. 특히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퇴직연금과 금융투자에 대한 관심도가 크게 높아지고 있었다.
 
[노후, K퇴직연금을 묻다 일본①] 부자 아빠에 가난한 아들 거부한다, '일본형 IRP' 청년층 관심 폭발
▲ 23일 도쿄 츄오구 핫쵸보리역에서 외국인들이 티켓 발권을 위해 길게 줄을 선 모습. 일본 도쿄 지하철에서는 이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교통카드가 없는 외국인들은 기존 노선에서 새 노선으로 환승할 때 티켓을 새로 사야 한다. <비즈니스포스트>
◆ 부모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일본 젊은이들

“이제 일본에 남은 산업은 게임, 만화, 자동차 셋 뿐이라는 자조섞인 말들이 청년층 사이에서 나온다. 우리는 일본의 미래에 대한 비관으로 가득하다.”

도쿄의 한 음식점에서 우연히 만난 준(25)은 위와 같이 말했다. 준은 현재 도쿄 내에서 IT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물류 회사를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준은 자기 스스로 사업을 일궈내고 가정에 헌신적 아버지를 매우 존경한다.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지만 현재 IT업계에 종사하는 이유도 향후 물류 자동화 플랫폼을 개발해 아버지 사업을 돕기 위해서다.

준은 이달 월급으로 30만 엔(약 260만 원)을 받았다. 

다만 한 달 동안 매일 하루 3~4시간씩 초과근무를 해야 했다. 현재 일본 청년들이 받는 평균 급여는 20만 엔 초중반 수준이다. 참고로 IT분야는 일본에서 나름 수입이 괜찮은 직업으로 통한다.

하지만 생활수준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높은 수준의 세금과 공과금을 내고나면 별다른 사치 없이 한 달을 지내도 수중에 남는 돈은 얼마 없었다.

퇴직연금시장을 취재하기 위해 일본에 왔다고 하자 준이 자신을 비롯한 청년들의 빈곤화를 먼저 이야기한 이유다.

준과 같은 일부 일본 청년들은 자기 세대가 물려받은 일본은 부모 세대와 완전히 다르다고 말한다. 버블 이전의 고도 경제 성장기에는 삶의 모든 부분이 윤택했으나 버블 이후 자신들은 사실상 개발도상국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연금도 마찬가지다. 부모 세대는 공적 연금이 풍족한 환경을 살았지만 현재 일본 젊은이들은 상황이 다르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2019년 ‘연금재정검증’에 따르면 일본에서 퇴직 부부 한 쌍의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은 61.7% 정도다. 

그러나 일본에선 심각한 저출산고령화를 겪으면서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후생노동성은 5년 마다 연금재정검증을 실시하는데 올해 발표에선 소득대체율이 50%대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처럼 전반적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현재의 연금 제도가 지속될 경우 일본 공적연금은 2052년이 되면 적립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아질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미 일부 경고금이 터져나오고도 있다. 일본 통계국에 따르면 2022년도 기준 65세 이상 퇴직 후 무직 부부의 월 실수입액은 약 25만 엔이었으나 실제 소비지출은 약 27만 엔으로 이미 2만 엔이 부족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본의 부모 세대가 지금까지는 비교적 풍족한 노후생활을 보냈던 것과 달리 일본 젊은이들의 노후 고민에 대한 주름살은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후, K퇴직연금을 묻다 일본①] 부자 아빠에 가난한 아들 거부한다, '일본형 IRP' 청년층 관심 폭발
▲ 일본 iDeCO의 가입자 수 추이. 2023년 7월(R5.7)을 기점으로 300만 명을 돌파했다. <후생노동성>
◆ 나라에선 책임 못져, 이젠 스스로 노후 개척해야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퇴직연금시장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이데코(iDeCo, 한국의 IRP 개념) 가입자 수는 최근 몇 년 사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지난해 7월 말 기준 300만 명을 돌파했다. 이데코는 원칙적으로 60살까지 중도 출금이 불가하며 납부금 전체가 소득공제의 대상이 된다. 

이데코 성장에는 청년층이 큰 역할을 했다.

2016년 말과 2023년 3월 이데코의 세대별 비중을 비교하면 20~30대는 21.5%에서 27.9%로 늘었다. 반면 40대와 50대 이상의 비중은 모두 줄었다.

특히 20대 비중이 2.6%에서 5.9%로 2배 이상 늘었는데 절대적 수치로 보면 6천 명대에서 17만 명대로 26배가량 증가하며 모든 세대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젊은이들이 주식 등 투자를 바라보는 태도가 최근 전향적으로 바뀐 점이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전망이 암울한 공적연금과 달리 퇴직연금에선 스스로 연금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만큼 미래의 소득대체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젊은이들이 주식투자에 관심을 키우게 된 계기에는 신NISA(일본판 개인종합자산관리 계좌)가 자리잡고 있다. 일본정부는 NISA를 개정하면서 세제혜택을 크게 확대했는데 이에 따라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옮겨온 것이다.

그 결과 일본 젊은이들은 이데코 상품에서 투자형 유형을 선택하는 비중도 크게 높아졌다.

일본 기업연금연합회에 따르면 2023년 3월 말 기준 일본 20대와 30대의 이데코 계좌 가운데 투자형 상품 비중은 각각 81.7%, 81.1%에 달한다. 60대 이상에선 투자형 상품 비중이 50.3%로 예적금 상품 비중과 반반인 점과 대조적이다.

키누가사 토시유키 일본 WTW(윌리스타워스왓슨) 퇴직부문 대표는 비즈니스포스트와 만나 “신NISA는 일본 젊은이들의 금융에 대한 태도를 바꿔 놓았다”며 “젊은이들이 점차 투자에 눈을 뜸에 따라 이데코에서도 투자 비중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준과 대학동문인 겐타(25)는 현재 도쿄 식당에서 점장으로 일하고 있다. 둘은 아직까진 이데코 계정을 만들지 않았으나 향후 꼭 만든 뒤 투자형 상품을 통해 노후를 대비할 거라 말했다.

이 식당 및 다른 한식집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토미타(23)는 “이미 5년 전에 이데코 계좌를 만들었으며 신NISA 계정도 만들어서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후, K퇴직연금을 묻다 일본①] 부자 아빠에 가난한 아들 거부한다, '일본형 IRP' 청년층 관심 폭발
▲ 도쿄 시내 한 서점의 금융경제 코너. 신 NISA와 이데코에 관한 책 외에도 '자산형성' 등 제목이 눈에 띈다. <비즈니스포스트>
일본 젊은이들의 투자와 퇴직연금에 대한 전향적인 태도 변화는 서점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실제 일본 서점의 경제금융 섹션을 가본 결과 신NISA, 이데코와 관한 책들이 가득 차 있었고 젊은이들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일본은 여러 현상들이 한국보다 앞서 발생하는 국가로 여겨진다. 따라서 퇴직연금 제도와 관련해서도 현재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은 향후 한국의 제도적 방향성에 힌트를 제공할 수 있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현재 일본 65세 이상 인구는 3623만 명으로 고령화율은 29.1%에 달한다. 한국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고령화율은 19.2%인데 2034년에는 29%로 현재 일본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본의 고령화가 한국보다 정확히 10년 앞서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미국, 호주 등과 비교해 퇴직연금 선진국으로 평가되지 않더라도 한국 퇴직연금시장의 미래를 모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김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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