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이 대법원 판결에 따라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지만 금융당국과 정치권의 압박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교보생명은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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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보생명 사옥. |
교보생명 관계자는 “대법원에서 재해사망특약에 대한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판결을 받은 것”이라며 “대법원의 최종판결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교보생명의 결정은 다른 생명보험회사의 결정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교보생명이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처음 받은 데다 미지급 자살보험금 규모가 지급을 미루고 있는 생명보험회사 가운데 두번째로 많기 때문이다.
자살보험금에 대한 법적 결론을 기다린 생명보험회사는 교보생명(1134억 원)을 비롯해 삼성생명(1585억 원), 알리안츠생명(122억 원), 한화생명(83억 원), KDB생명(74억 원), 현대라이프생명(65억 원) 등 6곳이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자살보험금 미지급 생명보험회사들에 대해 더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뒤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판결과 별개로 자살보험금 미지급 생명보험회사들에게 보험업법에 따른 행정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은 민사적 책임이 없다는 확인일 뿐”이라며 “이번 자살보험금 논란의 핵심은 소멸시효가 아니라 보험회사가 약관대로 보험금을 지급했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금융감독원이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금융감독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생명보험회사 절반가량이 그동안 지급여부를 놓고 결정을 미뤄온 데다 사법부의 상반된 판단이 나오면서 금융감독원의 자존심이 구겨졌다는 것이다.
지급결정을 미루고 있는 생명보험회사들에 대한 정치권의 압박도 거세다.
김선동 새누리당 의원은 자살보험금 청구권에 대해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 특례를 적용하는 내용을 담은 특별법을 발의하기로 했다.
김 의원은 “대법원 판례취지와 금융당국의 입장, 이미 자살보험금 지급을 결정한 보험회사 등을 고려할 때 보험회사가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며 “특별법 제정으로 생명보험회사는 배임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고 보험계약 당사자들은 각자 소송을 제기하는 불편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살보험금 이슈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정감사가 파행되면서 일단 무산됐지만 국회 정무위원회는 자살보험금 미지급과 관련해 김남수 삼성생명 부사장을 증인으로 불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자살보험금 지급을 미뤄온 동부생명이 9월 말 고객과의 신뢰를 이유로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123억 원을 지급하기로 한 점도 부담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고객의 신뢰라는 가치를 놓고 법적 논리만을 내세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생명보험회사의 한 관계자는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결국 소모적일 수밖에 없다”며 “이보다 사회적으로 자살을 재해로 볼 수 있는지와 자살을 방조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