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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문화프리즘] 중국문화를 경영철학으로 승화한 화웨이 창립자 런정페이

이욱연 gomexico@sogang.ac.kr 2024-03-11 08: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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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문화프리즘] 중국문화를 경영철학으로 승화한 화웨이 창립자 런정페이
▲ 2월27일(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4'의 화웨이 부스 모습.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중국 통신 장비 회사 화웨이가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2024에서 5G어드밴스라고 불리는 5.5G 상용화 계획을 발표했다. 세계 최초다. 이미 중국, 홍콩, 중동 지역에서 5.5G 통신망의 속도 검증을 완료했고 중국 일부 지역에서 상용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화웨이는 2018년에 세계 최초 5G 통신망을 개발하였고 이것은 미국이 한층 더 중국 첨단기술 봉쇄에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 통신 시장을 선도하는 화웨이는 젊은 기업이다. 1987년에 설립했으니까 이제 37년밖에 되지 않았다. 화웨이를 설립할 때 창업자 런정페이는 44살이었다. 그때까지 회사 생활을 한 경험도 창업 경험도 없었다. 그는 군인이었고, 중국공산당 당원이었다.

이렇게 설립된 화웨이가 지금처럼 고속 성장한 가장 중요한 비결 가운데 하나가 런정페이의 독특한 경영 철학이다. 중국문화에 바탕을 둔 그의 독특한 경영 철학이 화웨이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중국은 송나라부터 근세 사회로 빠르게 변했고 능력주의 원리가 중국인의 삶의 철학이자 중국문화로 자리 잡는다. 수나라 때 과거제를 도입하면서 시작된 세습적 특권층 해체가 당나라를 거쳐 송나라 때 완료되었다. 

이제 대대로 권력을 세습하는 세습적 특권층이 사라지고 능력만 있으면 공부로 출세하거나 돈으로 출세할 수 있게 되었다. 능력에 따라 이익을 분배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가 되었다. 집안 유산만 해도 자식이 모두 균등하게 상속했다. 

이렇게 시작에서는 균등한 기회를 보장해도 결과의 균등과 평등은 보장하지 않았다. 이런 무서운 능력 경쟁주의 사회가 송나라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송대 시기를 중국의 근세라고 부른다. 황제만 빼고는 세습 특권을 누리는 사람이 없이 모두가 경쟁해 능력에 따라 이익을 나누어 갖는 세상이 된 것이다.

중국 사회의 이런 능력주의는 화웨이 창립자 런정페이의 가장 중요한 경영 철학이다. 화웨이는 무엇보다 이익을 위해 뭉친 이익 공동체다. 사람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만들 수 있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만날 수도 있다. 그런데 화웨이 설립자 런정페이는 사람은 자기 이익 실현을 위해 모인다. 그리고 회사는 무엇보다 이익 공동체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화웨이가 지금도 기업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도 이런 이익 공동체 경영 철학과 관련 있다. 화웨이는 주식회사가 아니라 유한회사다. 런정페이는 기업을 공개하게 되면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보다 투자자들의 이익에 기업이 좌우되는 문제점이 나타나기 때문에 기업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화웨이는 이익을 주식 투자자와 공유하는 게 아니라 화웨이 내부 구성원 사이에서 공유한다. 화웨이 주식 가운데 98.6%는 종업원 소유다. 창립자 런정페이는 단지 1.4%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 

화웨이 주식은 다만 소유할 뿐 외부에 팔 수 없다. 기업 성장에 따라 수익을 낼 수 있고 퇴사할 때는 주식을 팔고 나간다. 화웨이 주식을 배분하더라도 종업원의 주식 소득이 근로 소득의 3배를 넘지 않도록 규정하기도 한다. 자본 소득 비율이 높아지면 나태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화웨이 직업의 급여는 고정급과 성과급, 그리고 화웨이 주식으로 구성된다. 회사와 종업원이 이익을 매개로 공동 운명체를 이루고 있다. 이익에 따라 행동하고 뭉치는 중국인의 기질을 잘 반영한 회사가 화웨이다. 

그런데 이익으로 뭉치는 관계는 이익이 없어지면 흩어진다. 화웨이는 그래서 이익 공동체만큼 중요한 가치로 문화 공동체를 설정한다. 목적과 가치관, 행동 방식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추구한다. 
 
[한중 문화프리즘] 중국문화를 경영철학으로 승화한 화웨이 창립자 런정페이
▲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 <연합뉴스>
그렇기 때문에 1995년에 화웨이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화웨이 기본법을 만들었다. 

화웨이 구성원 사이의 공동 가치관이자 공동의 심리적 계약, 전체 직원이 따르는 핵심 가치관과 행동 방식을 규정해 화웨이 구성원 모두가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기본법을 만든 것이다. 

6장 103조인 화웨이 기본법에는 화웨이의 경영 철학에서부터 연구개발비 투자 비율, 임원 구성 방법 등 화웨이의 모든 게 들어 있다. 흡사 삼국지의 도원결의 내용 같다. 이익만이 아니라 가치와 생각, 행동에서도 공동체를 만들려는 시도로 이익 공동체와 문화 공동체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화웨이 특유의 늑대문화도 중국인 기질을 닮았다. 

근대 중국 지도자 쑨원은 중국인은 모래알이라고 비판했다. 서로 뭉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인이 영원히 뭉치지 않는 모래알은 아니다. 중국인의 특성을 연구한 유명한 인류학자 페이샤오퉁은 중국인이 서구인처럼 집단 중심으로 뭉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중국인은 자기를 중심으로 집단을 구성하는 자아주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자기와 친한 사람, 중국인이 말하는 ‘꽌시’가 있는 사람끼리 뭉쳐서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다. 중국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관계인 ‘꽌시’는 단순한 친목 관계가 아니라 이익을 주고받는 이익 동맹이다. 일단 꽌시를 통해 인관관계가 형성되면 친형제처럼 서로 정보를 주고받고 서로 힘이 되어 주면서 힘을 합쳐 이익을 추구한다.

런정페이는 화웨이 구성원에게 늑대정신을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늑대정신은 이런 것들이다. 기회를 포착할 줄 아는 민감함, 전략적 시야, 두려움이 없는 공격력, 사냥할 때 모두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응집력과 협력 능력. 이익을 알아채는 민감한 후각을 바탕으로 공동의 이익 실현을 위해 단결해 집요하게 목표를 실현하는 늑대 정신, 런정페이가 화웨이 구성원에게 요구하는 자질이다. 

회색정신도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가 강조하는 경영 철학이다. 그는 경영은 회색이라고 말한다. 경영자의 능력이란 회색의 의미를 깨닫는 데 있다는 거다. 

왜 그럴까? 그가 보기에 “경영은 흑과 백 사이에서 균을 잡는 역량, 즉 회색이다.” 

그는 회색의 의미를 놓고 “변혁이 필요한 시기에는 회색 관념을 지녀야 하고 반드시 변혁해야 하지만 극단적으로 가서는 안 되며 극단적인 변혁은 원래 쌓은 것을 파괴하고 정반대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아울러 궁극적 목표에 이르려면 부차적 목표에서는 적당히 양보하는 일, 후퇴를 통해 전진하는 일, 상대와 적당한 교환을 통해 목표를 실현하는 일이 중요하며 이런 능력은 경영자가 반드시 지녀야 하는데 이게 바로 회색의 지혜라고 말한다.

한국인은 애매모호한 것보다 확실한 걸 좋아한다. 회색은 기회주의와 나약의 상징이다. 리더가 회색 성향을 지녔다고 평가받으면 그에게는 미래가 없다. 그만큼 회색에 부정적이고 타협보다 선명성을 존중한다. 

하지만 중국인은 모호하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 본다.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하다.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고 저 사람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일 그러니 선명하게 말하고 처신하기보다는 모호하고 애매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게 제일 좋은 처세 철학이다.

한국인으로는 속이 터지는 속성이다. 그런데 이런 중국인 속성에 중요한 경영 철학이 담겨 있다고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는 말한다.

미중 대립 속에서 중국인 사이에서 중국 제품을 소비하는 열풍이 이른바 ‘궈차오’(國潮) 열풍이 일어나고 있다. 이 열풍 속에서 화웨이 소비가 특히 늘고 있다. 작년 화웨이는 미중 대립 이전 매출액을 거의 회복했다고 한다. 

중국인이 화웨이를 즐겨 쓰는 데는 가성비도 작용하고 있고 화웨이가 지독히 중국다운 기업이라는 이유도 있다. 경제적으로만이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중국을 상징하는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개혁개방 이후 중국문화를 기업 경영에 접목하여 성공한 기업인이 바로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이고 이것이 그가 다른 어느 중국 기업인보다 중국인의 사랑과 존경을 독차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이욱연 서강대 교수
 
현재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베이징사범대학교 대학원 고급 진수과정을 수료했고 하버드대학교 페어뱅크 중국연구소 방문교수를 지냈다. 중국 문학과 문화를 연구하며 여러 권의 책을 냈고 jtbc '차이나는 클래스', EBS '내일을 여는 인문학'에 출연하는 등 대중과 소통에도 활발하게 나서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이욱연의 중국 수업', '중국이 내게 말을 걸다', '이만큼 가까운 중국', '포스트 사회주의 시대의 중국 지성' 등이 있고, 번역한 책으로 '들풀', '광인일기',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아큐정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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