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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부동산시장 규제 있었다, 영조의 여염집 탈취 금지령

김홍준 기자 hjkim@businesspost.co.kr 2024-03-01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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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정부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완화와 전매제한 유예를 추진하는 등 규제 완화로 분위기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 집값 문제 해결을 위해 강력한 규제 정책을 펼쳤던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하지만 정부가 정책을 통해 부동산시장 움직임을 통제하고자 한다는 점에선 궤를 같이한다.
 
조선시대에도 부동산시장 규제 있었다, 영조의 여염집 탈취 금지령
▲ 국토교통부와 한국부동산원이 2월22일 대전 서구 캠코 캐피탈타워에서 정비사업 정책 방향 현장 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1일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국토교통부, 서울시 등은 재개발·재건축 규제 해제를 바탕으로 한 도시정비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월22일 대전 서구 캠코 캐피탈타워에서 한국부동산원과 함께 진행한 정비사업 정책 방향 현장 설명회에서 6가지 추진 과제를 중심으로 한 재개발·재건축 정책 방향과 관련해 설명했다.

추진 과제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정비사업 진입 문턱 완화 △사업 속도 가속화 △사업성 제고 △분쟁 완화 △투명성 강화 △신탁 방식 활성화 등이었다.

서울시도 27일 ‘서남권 대개조’ 추진계획을 시작으로 도시정비 규제 완화 방침을 구체화했다. 공장과 주거지를 엄격히 분리, 개발하는 기존 준공업지역 규제를 해제하고 용적률 인센티브를 대폭 개선하는 등의 방식으로 준공업지역을 산업구조와 다양화된 도시공간 수요에 적합한 '융복합 공간'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이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냔 지적도 고개를 든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월10일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막대한 개발이익을 발생시키는데 그 혜택은 토지주와 개발업자들에게만 집중된다”며 “30년 이상 된 모든 아파트가 재건축을 시작한다면 유주택자와 무주택자 사이 자산 불평등은 더욱 악화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 또한 “공매도 금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에 이어 부동산 규제 완화까지 총선만 보며 달리고 있는 정부의 포퓰리즘 폭주는 국민의 삶과 국가 살림을 망가뜨릴 뿐”이라며 “정부가 투기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부동산 투기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정부가 부동산시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하기 위해 깊숙하게 개입하는 일이 현대사회에 국한되지 않은 이유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 조선시대에도 부동산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나라가 영을 내려 시장활동을 제한한 사례가 있었다.  

조선시대 서울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17세기에 접어들게 되면 주택 부족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에 따라 주택의 매매, 전세, 월세 가격이 모두 상승했는데 시장 원리에 따라 수요가 늘었음에도 공급은 한정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은 계급사회라는 시대적 배경과 합쳐지며 폭력 현상으로 이어졌다. 권력을 동원해 민가를 강제로 탈취하는 여가탈입(閭家奪入) 행위가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 되버린 것이다.

권력자들은 민가를 강제로 헐거나 헐값으로 강매하는 방법 등을 통해 거대한 저택을 만들었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줘 막대한 임대수익을 올렸다.
 
조선시대에도 부동산시장 규제 있었다, 영조의 여염집 탈취 금지령
▲ 영조가 51세이던 때의 모습을 그림 초상화. <문화재청>

영조가 이러한 부동산시장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 과제로 추진했던 대표적 부동산 정책이 ‘여염집 탈취 금지령’이었다.

즉위하기 전 궁궐 밖 생활을 경험한바 있는 영조는 즉위하자마자 여염집 탈취 금지령을 선포했다. 

영조가 즉위한 지 3년째 되던 1727년 3월20일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영조는 이와 관련해 “선인의 사업을 이은 다음 처음으로 여염집을 빼앗아 드는 것을 금단한 것은 민생들로 하여금 편히 살게 하려는 뜻이었다”고 설명했다.

영조는 여염집 탈취만을 금지하게 되면 권력자가 매매 계약의 형태로 민가를 빼앗으리라는 것도 꿰뚫어 봤다. 이에 여염집 탈취 금지령과 함께 도성 안 주택의 전세와 매매도 금지하는 강력한 부동산 통제 정책을 폈다.

영조는 처벌 규정도 엄격하게 정했다. 금지령을 위반하면 왕족과 고급 관료도 유배를 보냈다. 관리가 법을 어기면 2년 동안 벼슬길을 막았고 유생들은 6년 동안 과거시험 응시를 금지했다.

이러한 영조의 처벌 의지는 즉위 기간 내내 지속됐다. 그는 한성부 관리의 정기적인 보고를 받았으며 위반자가 없다는 보고가 올라오면 담당 관리를 닦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영조는 즉위 33년인 1757년 5월4일 조선왕조실록 기사에서 “여염집을 함부로 빌려서 들어가는 것을 금지한 것은 바로 나의 처음 정사였는데 햇수가 오래돼 법이 해이해졌다"고 지적했다. 영조는 "한 사람이 그것을 범하게 되면 또한 100명이 본받고 있으니 분노를 참을 수 없다”며 “옛날 상태로 돌아가게 하면 국가가 반드시 망할 것이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영조의 강력한 부동산 정책과 처벌 아래 권력자들에게 집을 뺏기는 서민 피해자가 줄기는 했으나 이에 따라 주택시장이 경색되는 부작용도 발생했다.

생계를 위해 서울로 이주해 왔으나 집이 없는 사람, 벼슬을 새로 얻어 들어온 신입 관리 등이 집을 살 수도 집을 빌릴 수도 없게 된 것이다. 

영조 시절 우의정을 지낸 조재호는 이와 관련해 영조에게 직언하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조재호는 영조 30년이던 1754년 8월22일 영조를 만난 자리에서 “한미한 양반과 가냘프고 약한 서얼로서 매우 가난해 작은 집에 세든 자와 먼 지방의 문신·무신으로 벼슬을 구해 여염집을 산 자가 한꺼번에 쫓겨나서 길에서 방황하고 있으니 어찌 매우 불쌍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지적했다.

영조의 과다한 부동산시장 통제 아래 피해를 본 인물 가운데 실학자이자 북학파의 거두로 꼽히는 박제가도 있다.

박제가가 12살이던 영조 37년, 후처였던 어머니 이씨가 남편이었던 박평이 죽은 뒤 따로 집을 구한 것이 여염집 탈취로 고발당한 것이다.

양반이 양반을 상대로 집을 구한 것이기에 엄밀히 따지면 일반 백성이 피해를 당한 상황은 아니었으나 영조는 이 사건에 크게 격분했다.

우부승지를 지내며 자신을 가까이에서 모셨던 박평이지만 영조는 신하들의 변호에 귀를 막고 이번에도 법을 엄격히 적용할 것을 고집했다. 결국 박평이 1년 전에 사망했고 어머니 이씨는 여자라 귀양을 갈 수 없는 상황이라 당시 12살이던 박제가가 귀양에 갈 위기에 처했다.

다만 1761년 7월21일 승정원일기 기록에 따르면 형조판서 남태제가 박제가의 나이가 미성년자인 점을 간언해 박제가가 유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영조는 박제가의 나이가 15살보다 어리다면 여자 노비를 대신 귀양 보내라는 명을 내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박제가의 어머니 이씨는 허드렛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박제가 또한 홀어머니 아래에서 이 동네 저 동네를 옮겨가는 궁핍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됐다.

박제가는 자신의 문집 ‘정유각집’에서 이 시기를 놓고 “어머니는 혼자되신 후 가난하게 10여 년을 사시면서 몸에는 온전한 옷을 걸치지 못하셨고 입에는 맛있는 음식을 대지 못하셨으며 새벽까지 잠 못 들며 삯바느질로 공부시키셨다”고 설명했다. 김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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