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이커머스 앱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국내 시장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알리 지옥.”
소비자 커뮤니티를 돌아다녀보면 알리익스프레스에서 물건을 자주 사는 것이 어느새 습관이 돼버렸다며 이를 ‘알리 지옥’에 빠졌다고 비유하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쿠팡에서 매일 상품을 배송시킨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잔소리를 들었지만 언제인가부터 알리익스프레스 제품을 매일 구매하는 남편에게 오히려 잔소리를 하는 입장이 됐다는 아내들의 경험담도 제법 된다.
소비자들이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과 같은 중국발 이커머스에 열광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이런 열풍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3일 이커머스업계에 따르면 해외직구 상품을 다루는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높다.
최근 진행된 조사는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한국에서 얼마나 급성장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앱 분석데이터를 제공하는 와이즈앱에 따르면 2023년 1~11월 기준으로 사용자 수가 가장 많이 증가한 앱 순위에서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는 나란히 1, 2위에 올랐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사용자 수 증가폭은 각각 371만 명, 354만 명이었다. 이는 기업공개를 준비하며 기업가치 10조 원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는 국내 핀테크기업 토스의 사용자 수 증가폭 349만 명을 앞서는 것이다.
▲ 배우 마동석씨가 출연한 알리익스프레스 광고의 한 장면. <알리익스프레스> |
두 앱은 종합몰 앱 사용자 수 순위에서도 선전했다.
쿠팡과 11번가, G마켓 등 국내 종합몰 사용자 수 상위 10개 앱 가운데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사용률은 각각 66.6%, 68.7%로 쿠팡(91.0%) 다음이었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세대별 종합몰 앱 순위에서도 20대 이하에서 3위, 30대 이상에서 모두 4위에 올랐을 정도로 국내 소비자에게 자주 선택받고 있다.
이런 통계는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 적지 않은 균열을 내고 있다는 점을 나타낸다.
사실 알리익스프레스가 3월 한국 시장에 공식 진출한다며 배우 마동석씨를 홍보 모델로 기용하고 대대적 투자 계획을 내놨을 때만 해도 ‘알리가 한국에서 될까’ 미심쩍어하는 소비자 반응이 많았다.
중국 앱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높은 데다 이미 한국 이커머스 시장은 쿠팡과 네이버가 주도하는 시장으로 굳어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리익스프레스가 이런 의구심을 깨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데이터관리플랫폼 기반 앱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바일인덱스의 자료를 보면 알리익스프레스는 지난해 3월 기준으로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 합산 쇼핑 분야의 신규 앱 설치 건수 1위에 올랐다. 알리익스프레스가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지 한 달 만의 일이었다.
당시 알리익스프레스 앱을 설치한 건수는 모두 68만2332회로 2위인 당근마켓(58만5541회)을 10만 회가량 차이로 앞섰다. 당근마켓이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35개월 연속으로 이 분야 1위를 지키고 있었다는 점에서 파장이 적지 않았다.
알리익스프레스의 성공은 중국 이커머스 핀둬둬 산하의 온라인 장터 플랫폼 테무의 한국 진출로 이어졌다.
테무는 2022년 9월 출시된 ‘신생 이커머스’로 올해 7월 일본에 이어 한국에도 진출했는데 한국 진출 불과 석 달여 만에 국내 사용자 300만 명 이상을 모았다.
소비자들이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에 열광하는 이유로 제일 먼저 꼽히는 것은 단연 ‘가격 경쟁력’이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앱에 접속해보면 쿠팡과 네이버스마트스토어에서 판매되는 비슷한 물품의 가격이 최소 절반에서 많게는 5분의 1 수준에 판매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심지어는 쿠팡이나 네이버스마트스토어에서 판매되는 동일한 물품도 절반 가격에 살 수 있다.
예컨대 애플워치 스트랩의 가격대를 보면 국내 온라인몰에서는 싸게는 5900원부터 비싸게는 1만 원대 후반까지 있다.
하지만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에서 판매되는 애플워치 스트랩 가격은 1천~2천 원대 제품이 주를 이룬다. 비싸봐야 5천~6천 원대인 제품이 허다하기 때문에 사실상 국내 이커머스 앱들이 가격으로 승부하기는 어렵다.
플랫폼에서 첫 구매할 때 주는 혜택도 국내 이커머스 앱들과 비교되지 않는다.
현재는 없어졌지만 알리익스프레스는 한 때 플랫폼 첫 구매 혜택으로 ‘꽁돈대첩’ 코너에 올라와 있는 상품을 한국 돈으로 13~15원에 판매한 적이 있다. 이런 믿기 어려운 가격에 무료배송 혜택까지 줬는데 이는 소비자들의 초기 구매 욕구를 끌어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이커머스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테무도 국내 시장 진출 초창기라는 점을 감안해 현재 플랫폼 안에서 일부 제품을 100원 미만에 팔고 있으며 국내에서 몇 천원 이상을 지불해야 하는 주방용품, 생활용품 등도 단돈 몇백원에 판매하고 있다.
▲ 테무에서는 한국에서 수천 원을 지불해야 하는 상품도 단돈 몇백원에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테무 초기 화면 모습. <테무> |
물론 상품의 질이 보장돼 있는 것은 아니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에 올라온 국내 고객들의 구매 후기를 보면 가격만 보고 상품을 구입했지만 산 지 일주일도 안 돼 성능이 제기능을 발휘 못한다거나 금세 망가졌다는 리뷰가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국내 고객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는 그만큼 가격이 가져다 주는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알리익스프레스 등장 이후 이 앱에서 구매하는 빈도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한 소비자는 “알리나 테무에서 사는 물품에 결코 품질을 기대하지는 않는다”며 “그러나 ‘보물찾기’처럼 간혹 싸고 괜찮은 제품을 구하는 경우도 있어 심심할 때마다 한 번씩 구매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무료배송 혜택을 아낌없이 주는 것도 소비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처럼 중국산 제품을 해외에서 살 때 가장 큰 걸림돌로 꼽혔던 것은 배송비용이었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물건이 넘어와야 하니 이와 관련한 배송료가 큰 부담이 됐던 것이다.
하지만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는 현금흐름이 탄탄한 각각의 모회사 알리바바그룹과 핀둬둬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어 대부분의 상품에 무료배송 혜택을 제공한다. 심지어 한국으로 5일 안에 배송해주는 시스템도 갖춰놓고 있다.
사실상 해외직구에 대한 소비자 저항감을 무너뜨린 것이 두 앱의 성공 요인일 수 있다.
해외직구에 대한 저항감을 무너뜨린 다른 요인으로는 사용자 편의성을 극대화한 점도 꼽힌다.
해외 현지 이커머스 앱을 사용하는 것이 어려웠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절차가 복잡했다는 점이다. 과거만 하더라도 해외에서 물품을 직접 구매하려면 배송대행지를 지정해야 하고 개인통관부호도 따로 넣어야 했으며 결제방법도 현지 업체가 허용하는 것만 가능했다.
하지만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는 이런 절차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
단지 개인통관부호만 입력해 놓으면 나머지는 모두 국내 앱처럼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심지어 카카오페이와 같은 국내 결제 시스템도 이용할 수 있게 해놨기 때문에 해외에서 이용 가능한 카드가 없어도 쇼핑이 가능하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