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2023-12-15 15: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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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정치권이 ‘슈링크플레이션’(shrink+inflation) 대책 마련에 나섰다.
슈링크플레이션은 기업들이 제품의 가격은 그대로 둔 채 용량이나 원료 함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사실상 가격을 올린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리려는 행위를 뜻한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제기돼왔던 문제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과자류를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최근 불황 속에서 실제 슈링크플레이션에 해당하는 사례를 정부가 지적한 데 이어 야당도 법안을 내놓으면서 규제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1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정부에 따르면 최근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슈링크플레이션 대책 4법을 대표발의해 관련 논의에 물꼬를 텄다.
황 의원의 ‘슈링크플레이션 대책 4법’은 소비자기본법 개정안,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개정안,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다.
소비자기본법 개정안에는 용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추는 등 소비자가 실질적인 가격 인상을 쉽게 알지 못하게 하는 경우 한국소비자원이 일상생활에서 대표적으로 소비되는 물품 등에 대하여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공표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담았다.
표시광고 공정화법 개정안은 제품의 용량 또는 품질을 변경하는 경우 그 변경 전후의 사항을 공정거래위원회 고시로 정하는 바에 따라 표시하도록 했다.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식품제조업자 등에게 식품 등의 내용량을 변경하는 경우 변동내역을 표시하고 내용량 변동내역에 관한 실태조사를 실시해 공개할 수 있도록 한다.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개정안은 소비자의 보호 또는 공정한 거래를 위햐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사업자에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물품 및 원재료의 내용량 변동사항을 표시하도록 규정했다.
황 의원은 “슈링크플레이션은 사실상 꼼수 가격 인상이자 소비자 기만행위”라며 “내용량 변동 등 정확한 정보를 표시하도록 하는 등 대응방안을 강화하고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의원의 입법 시도는 정부의 움직임과도 맥락을 같이하고 있는 만큼 국회에서 처리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3일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편법적 가격 인상,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관계부처와 공동으로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며 “최대한 신속히 관련 규정을 개정하고 이행 상황을 면밀하게 모니터링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제도 개선을 통해 유통업체의 단위가격 표시 확대 △소비자원 직접조사 품목 확대 등 모니터링 강화 △정부가 제조사 및 유통사와의 자율협약을 통해 용량변경 정보 제공 등 3가지 기본대책을 제시했다.
정부에 이어 야당인 민주당까지 적극 대응에 나서는 이유는 실제 시장에서 나타나는 ‘슈링크플레이션’ 의심사례들이 적지 않아 이와 관련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은 2022년 12월부터 올해 11월까지 소비자원 가격 정보 사이트인 ‘참가격’에서 관리하는 가공식품 209개를 조사한 결과 견과류·김·만두·맥주·소시지·사탕·우유·치즈·핫도그 등 9개 품목·37개 상품의 용량이 실제 줄었다고 13일 발표했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올해 1월 HBAF의 ‘허니버터아몬드’, ‘와사비맛아몬드’ 등 16개 아몬드 상품 한 봉지 용량(210g→190g)이 줄었다. 같은 달 CJ제일제당도 ‘백설 그릴 비엔나’ 한 봉지를 640g에서 560g으로 줄였다. 이밖에도 서울우유의 체다치즈’ 20매도 지난 7월 400g에서 360g으로 용량이 줄어들었다.
황희 의원 역시 법안을 발의하면서 국회 입법조사처로부터 제출받은 슈링크플레이션 사례를 지적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오리온, 농심, 롯데제과 등 11개 제조사가 2022년 10월부터 올해 7월까지 14개 품목의 중량을 줄인 것으로 조사됐다.
소비자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11월27일부터 소비자 눈속임 가격 인상과 관련된 제보를 받는 ‘꼼수 가격인상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고물가가 지속되면서 외국에서는 이미 슈링크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정책들이 다수 시행되고 있다.
프랑스 유통브랜드인 카르푸는 올해 9월부터 가격 인하 없이 용량이 작아진 제품에 ‘슈링크플레이션’이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여 화제가 됐다. 캐나다는 지난 10월 ‘슈링크플레이션’처럼 소비자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적발하고 조사하는 ‘식료품 태스크포스’가 출범했다.
브라질에서도 제품 제조업체가 용량이 달라졌을 때 6개월 동안 ‘새로운 무게(NOVO PESO)’라는 표기를 해야 한다.
다른 나라들처럼 우리나라도 슈링크플레이션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온다. 특히 입법을 통해 사업자에게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고개를 든다.
한국소비자단체연합은 최근 성명서에서 “정부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신속하게 제시해야 하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며 “용량이나 함량 등 변화가 있을 때 소비자가 인지하도록 사업자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표시에 대한 법제화가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