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경 기자 hkcho@businesspost.co.kr2023-12-07 09:24:10
확대축소
공유하기
[비즈니스포스트]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증산을 통해 유가를 더욱 하락시켜 다른 원유생산국들을 견제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7일 “일부에서 사우디의 원유 정책이 증산으로 선회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며 “사우디가 원유 증산을 통해 미국은 물론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 회원국과도 ‘치킨게임’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 사우디가 원유 증산을 통해 미국 등과 치친게임을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사진은 미국 텍사스주에 위치한 엑손 모빌 소유 시추설비. <연합뉴스>
치킨게임이란 어떤 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하는 상태에서 서로 양보하지 않다가 극한으로 치닫는 상황을 뜻한다.
사우디가 원유생산을 늘릴 수 있다는 주장의 배경에는 감산정책의 유가 상승 견인력이 약화된 점이 있다.
이는 사우디의 감산에도 불구하고 원유공급측면에서 큰 차질이 발생하지 않은 영향으로 풀이됐다.
사우디의 원유생산은 지난해 말보다 하루당 약 143만 배럴 줄었으나 석유수출국기구(OPEC) 전체 원유생산은 같은 기간 하루당 113만 배럴 줄어드는데 그쳤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원유생산을 하루당 약 110만 배럴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박 연구원은 “미국의 증산 규모는 공교롭게 OPEC 전체 원유 감산 규모와 유사한 수준이다”며 “당분간 원유 수요가 크게 증가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러시아가 원유 수출을 늘릴 수 있다는 점이 원유공급에 또 다른 변수로 꼽혔다.
박 연구원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대비해 2024년 국방예산을 올해보다 70% 가까이 늘릴 것이다”며 “원유 등 각종 원자재 수출은 러시아 연방 재정수입의 주원천인 만큼 러시아의 추가 감산정책 참여 가능성은 낮고 오히려 원유 수출을 확대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우디의 감산정책 실효성이 떨어짐에 따라 오히려 증산을 통해 미국 내 원유 생산을 주도하고 있는 셰일 업체와의 생존 게임에 돌입할 수 있다는 시각이 나왔다.
박 연구원은 “아직은 시나리오지만 사우디가 미국 셰일 업체를 압박하기 위해 증산을 통한 유가 하락카드를 선택할 가능성 있다”며 “유가가 추가로 급락하면 미국 셰일 업체의 생산·경영에 큰 타격을 주면서 미국 내 원유생산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우디가 증산을 통한 치킨게임에 나선다면 국제 유가가 큰 폭으로 하락할 수도 있다”며 “유가 지지를 위한 감산 정책을 포기하고 사우디가 원유 생산 정책을 증산으로 선회할 지는 2024년 1분기 가운데 결정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다만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의 확전 가능성 등이 재고조되면서 유가가 반등한다면 사우디의 감산 정책 역시 유지될 것으로 예상됐다. 조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