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규 SK엔무브 대표이사 사장 9월 열린 지크브랜드데이 행사에서 사업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SK엔무브 > |
[비즈니스포스트] SK엔무브가 열전달 유체를 활용한 전기차 열관리 솔루션 연구개발 계획을 공식화했다.
전기차용 윤활유, 액침냉각 등으로 대표되는 박상규 SK엔무브 대표이사 사장의 에너지 효율화 사업 계획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19일 업계 소식을 종합하면 SK엔무브가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신사업 분야와 관련해 연구개발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SK엔무브에서 공개한 최신 공시 자료에 따르면 3분기 연구개발 품목에 ‘HVAC플루이드’가 추가됐다.
여기서 HVAC란 냉난방공조시스템을 말하는데 HVAC플루이드는 이러한 시스템 내부에서 기계가 내는 열을 흡수하고 전달하는 능력을 갖춰 냉각에 활용할 수 있는 유체를 뜻한다.
공시에 기재된 내용에 따르면 SK엔무브는 전기차의 열관리 성능을 개선하는 냉매와 냉동기유 등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상세한 내역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박 사장은 앞서
9월 공식발표를 통해 전기차 냉난방 성능 개선용 냉매와 배터리에 적용할 수 있는 액침냉각 방식 등을 개발할 계획이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의 문의에 “기존에 박 사장이 언급했던 분야의 기술 개발 실적을 공식화한 것이 맞다”고 말했다.
SK엔무브는 SK이노베이션의 윤활유 부문을 맡고 있는 자회사다. 세계 내연기관차 윤활유 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을 정도로 윤활유 부문에서는 탄탄한 시장 입지를 가지고 있다.
다만,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 비중이 높아지면서 내연기관차 윤활유 시장의 성장세에는 한계가 생겼다.
이에 올해 1월 취임한 박 사장은 세계적으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전기차와 배터리, 서버와 관련한 제품 시장으로 사업의 외연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박 사장은 4월 임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요구되는 역량이 달라진다”며 “전기차 시대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신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역량을 갖춰달라”고 말한 바 있다.
전기차 확산에 따른 윤활유 수요 감소에 대비하고 여기에 대응해 ‘에너지 효율화 기업’이라는 기업 방침에 대응하는 신제품 개발을 강조한 것이다.
실제로 박 사장은 취임 후부터 전기차용 윤활유부터 액침냉각에 이르기까지 신사업 분야로 확장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 9월 지크브랜드데이 행사에서 공개된 '지크이플로(ZIC e-FLO)' 개념 설명 모형. <비즈니스포스트> |
9월 열렸던 ‘지크브랜드데이’는 박 사장의 사업 의지를 업계 안팎에 내보인 무대였다. 상장사도 아니고 기업 간 거래(B2B)가 주력인 SK엔무브로서는 이례적인 대중 공개 행사였다.
현재 생산하고 있는 그룹3 즉 고급 윤활유 소재 ‘유베이스(YUBASE)’를 기반으로 한 ‘이플루이드’도 이날 공개됐다. 가공하기에 따라 내연기관차용 윤활유, 전기차용 윤활유, 액침냉각액 등이 될 수 있는 소재다.
이플루이드를 활용해 만든 차세대 전기차용 윤활유 ‘지크이플로(ZIC e-Flo)’도 같은 날 첫선을 보였다. 기존 윤활유와 달리 단순히 부품 마모를 방지하는 것을 넘어 냉각은 물론 차량 에너지 소비 효율까지 높일 수 있는 제품이다.
박 사장은 “전기차 시대를 맞이해 윤활유 수요가 꺾일 것이라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섣부른 판단”이라며 “전기차도 모터를 냉각하고 기어의 마찰저항을 줄여 전비를 향상시키기 위해 윤활유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SK엔무브가 전기차용 윤활유 시장으로 제품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는 배경에는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는 전기차 시장이 있다.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NEF)에서 올해 8월 내놓은 분석에 따르면 2040년 전기차는 전체 상용차량 가운데 약 48%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SK엔무브는 이런 환경에 힘입어 SK엔무브의 전기차용 윤활유 제품의 판매 실적이 2019년부터 매년 30% 이상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 자사의 판매율과 블룸버그 등의 해외 연구진의 분석 결과를 통해 향후 전기차용 윤활유 시장이 최대 12조 원 이상까지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내연기관차용 윤활유 시장을 점유한 것처럼 전기차용 윤활유 부문에서 세계 시장을 점유하겠다는 게 SK엔무브의 목표다.
아직 상용화된 전기차용 윤활유 제품이 적어 내연기관차용 윤활유를 대신 사용하고 있는 차주들이 많다는 점도 SK엔무브에게는 좋은 신호로 읽히고 있다.
박 사장이 구상하고 있는 이플루이드의 활용법은 지크이플로를 넘어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효율화 분야도 포함한다. SK엔무브가 2040년 기준 42조 원 규모가 될 것으로 추정하는 액침냉각 시장이다.
▲ SK엔무브에서 제공받은 액침냉각액을 실증하고 있는 SK텔레콤 데이터센터 서버장비. < SK텔레콤 > |
액침냉각이란 전기가 흐르지 않는 액체에 직접 전자 기기를 넣어 열을 흡수하는 냉각 방식을 말한다. 액체가 직접 열을 흡수하기 때문에 냉각 효율이 높고 추가로 냉각 설비를 가동할 필요가 없어 에너지 소비도 큰 폭으로 줄일 수 있다.
24시간 가동하는 데이터센터의 서버 장비에 적용하면 에너지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도 자사의 데이터센터에 액침냉각 기술을 실험하고 있다.
SK엔무브도 시장 진출을 위해 이플루이드를 활용한 액침냉각액을 개발했고 국내에서는 SK텔레콤, 미국에서는 델과 협업해 그들이 보유한 데이터센터에서 실증을 진행하고 있다.
박 사장은 "데이터 사용량의 폭발적인 증가로 열관리를 통한 전력효율 증대는 미래의 핵심 사업이 될 것"이라며 "SK엔무브는 세계 1위 고급 윤활기유 경쟁력과 연구개발 역량을 바탕으로 액침냉각과 열관리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올해 1월 SK엔무브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2008년 SK그룹 기획담당 상무로 승진한 후 그룹 내 여러 임원 자리를 거쳤던 그는 SK엔무브를 맡기 전엔 SK네트웍스 대표이사 총괄사장으로 다양한 신사업을 추진했다.
이러한 경력을 바탕으로 그룹 안팎에서 박 사장은 신사업 기획 역량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12월 박 사장을 SK엔무브의 대표이사로 선임하면서 배포한 자료에서도 “박 사장은 그룹 내 다양한 사업경험을 바탕으로 전략 기획 역량과 현장 사업 감각을 두루 갖춰 에너지 효율화 기업으로서 SK엔무브의 새로운 정체성을 강화하고 사업을 확대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언급된 적 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