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코퓨처엠이 음극재 자립에 속도를 낸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중국이 미국의 탈중국화 정책에 대한 맞대응 차원에서 흑연 수출을 통제하기로 하며 국내 배터리 가치사슬(밸류체인) 전반에 걸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흑연이 2차전지 음극재의 핵심 원료인 만큼 국내 유일의 음극재제조사 포스코퓨처엠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과거 일본의 수출 통제가 반도체 소재의 자립화로 이어졌듯 포스코퓨처엠도 이를 계기로 원료 조달창구를 다변화하며 공급망을 강화해 소재 분야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도 있다>
24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중국의 흑연 수출통제 기조에 따라 정부와 민관합동으로 대응 방안을 모색하며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흑연은 2차전지 음극재의 핵심 원료다. 음극재는 배터리를 충전할 때 리튬이온을 저장하는 역할을 하며 2차전지의 충전 속도와 수명을 결정하는 핵심 소재다.
국내 수입되는 흑연 가운데 중국산 비중은 90%가 넘을 정도로 압도적인 것으로 파악되는 만큼 중국이 흑연 수출을 통제하게 되면 국내 2차전지 가치사슬에도 일정 부분 영향이 불가피하다.
중국이 지정한 수출통제 대상 품목은 고순도(순도 99.9% 초과)·고강도(인장강도 30㎫ 초과)·고밀도(밀도 ㎤당 1.73g 초과) 인조흑연 재료와 제품, 구상흑연·팽창흑연 등 천연 흑연과 제품이다. 수출통제는 12월부터 적용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중국이 흑연 수출 통제조치를 발표한 직후인 20일 긴급점검회의를 열고 2차전지 관련기업 등과 대응방안을 논의한 데 이어 23일 관계부처와 기업들과 함께 민관합동 흑연 공급망 대응회의를 여는 등 위기대응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중국 정부와 긴밀히 소통해 국내 기업이 필요로 하는 흑연 조달에 차질이 없도록 중국 측에 협조를 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와 함께 중국 외 흑연 보유 지역으로부터 대체 물량을 확보하고 흑연계를 대체할 음극재 개발에도 속도를 내며 다방면으로 대응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마련해 놓았다.
우리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고 중국 정부도 흑연 공급을 전면 금지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번 수출통제 조치가 국내 업체들에게 큰 피해를 야기할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이 많다.
▲ 산업통상자원부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주재로 2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배터리산업협회 및 국내 주요 배터리 생산기업, 소부장 공급망센터의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산업공급망 점검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
다만 중국이 언제라도 글로벌 흑연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압도적 지위를 지렛대로 삼을 수 있는 데다 중국 정부가 수출 허가 과정에서 실제로 흑연 공급을 틀어막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만큼 국내 배터리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특히 포스코퓨처엠은 중국의 흑연 수출통제 조치에 가장 민감한 업체로 꼽힌다.
포스코퓨처엠이 배터리소재 사업의 주력 품목인 양극재와 함께 음극재 사업을 확대할 준비를 하고 있는 만큼 음극재 핵심 원료인 흑연의 수급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사업 현안일 수밖에 없다.
음극재를 필수 원료로 채용하고 있는 배터리 셀 제조사들에게도 흑연 수급은 중요한 사안이긴 하지만 대체로 셀 제조사들은 다변화된 소재 공급처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수출통제의 영향은 그만큼 제한적일 수 있다.
반면 국내에서 유일한 음극재제조사인 포스코퓨처엠은 흑연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흑연 재고가 떨어졌을 때 음극재공장 가동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포스코퓨처엠도 중국이 수출통제를 시행하게 되는 12월 전에 흑연 재고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며 대체 조달처를 물색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포스코퓨처엠은 이미 소재 분야 전반에 걸쳐 자체 조달 역량을 높이며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음극재 분야에서도 포스코그룹 차원의 지원에 힘입어 공급망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포스코그룹 내 종합상사 계열사인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세계 2위 흑연 매장량을 갖춘 탄자니아 마헨지 흑연광산을 보유한 파루그라파이트와 장기공급계약을 맺고 25년 동안 75만 톤 규모의 천연흑연을 공급받기로 했다.
포스코퓨처엠은 포스코인터내셔널이 확보한 탄자니아 천연흑연을 공급받아 음극재를 생산한다는 계획을 두고 있다.
앞서 그룹 지주사 포스코홀딩스는 파루그라파이트의 모회사 블랙록마이닝 지분 15%가량을 확보하며 탄자니아 흑연 확보의 기반을 마련했다.
게다가 포스코퓨처엠은 인조흑연 음극재 생산체제도 갖추고 있다.
인조흑연은 소재 팽창이 적어 안정성이 높고 고속 충전에 유리하다는 장점을 지닌다. 중국의 수출통제 품목에 인조흑연 재료와 제품이 포함돼 있긴 하지만 포스코퓨처엠은 자회사 포스코엠씨머티리얼즈을 통해 인조흑연 원료인 침상코크스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
침상코크스는 콜타트를 가공해 만드는 중간소재인데 콜타르는 포스코의 제철공정에서 부산물로 확보할 수 있다.
이밖에도 포스코퓨처엠은 실리콘음극재와 리튬메탈음극재 등 차세대 소재 분야 쪽으로도 음극재 기술기반을 다져놓고 있다.
포스코퓨처엠이 그룹 차원의 지원에 힘입어 공급망 역량을 날로 강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는 만큼 중국의 수출통제와 같은 자원 무기화가 장기적으로는 공급망 자립화를 촉진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재계 안팎에서는 과거 일본의 수출통제 시기에 국내 반도체 생태계가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를 진전시키며 한 단계 도약했던 것처럼 포스코퓨처엠도 공급망 자립화 속도를 앞당기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포스코퓨처엠은 정부와 협의해 인조흑연 공장을 조기 가동하기로 한 것으로 파악된다. 포스코퓨처엠은 당초 내년 가동할 예정이었던 인조흑연 생산공장의 시험 생산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는대로 이르면 올해 안에 상업생산에 본격 나설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퓨처엠은 음극재 생산능력을 2030년 연산 37만 톤으로 높여 음극재 사업을 크게 확대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는 당초 계획인 연산 32만 톤 체제에서 목표를 5만 톤이나 상향한 것이다. 포스코퓨처엠의 2023년 말 기준 음극재 생산능력은 연산 8만2천 톤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김준형 포스코퓨처엠 대표이사 사장은 8월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비전 공감 2023: 포스코퓨처엠이 더해갈 세상의 가치’ 행사에서 “세계 최고의 양극재·음극재 기업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노우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음극재 사업이 포스코퓨처엠의 새로운 성장의 축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미국, 유럽 권역별 음극재 탈중국화 움직임에 구속력이 있는 중장기 바인딩 계약에 따른 수주잔고가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 연구원은 “탄자니아 등 중국 외 지역 원료 조달, 포스코인터내셜과 협업에 따른 운송 비용 절감, 제조 공정 전반의 내재화 등에 따라 고객사에 대한 협상력(바겐 파워)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