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으로 전기차 구매 보조금 지급대상에서 제외된 현대차그룹이 IRA 시행 뒤 1년 동안 단기대응전략을 펼쳐 현지 전기차 판매량을 크게 늘렸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현대자동차그룹이 3분기 미국 전기차 판매 시장에서 호조를 보이며 테슬라에 이어 2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8월 미국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한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시행된 뒤 1년 여의 기간 동안 약 1천만 원의 보조금 없이 현지 판매 경쟁을 펼쳐 왔다.
2024년 하반기엔 현대차그룹 최초의 미국 현지 전기차 전용공장(HMGMA)가 조지아주에서 완공될 예정인 만큼 IRA 장벽을 넘기 위한 여정의 반환점을 성공적으로 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17일 미국 자동차 전문 평가기관 켈리블루북(KBB)에 따르면 올 3분기 미국에선 전년 동기보다 49.8% 급증한 31만3086대의 전기차가 판매돼 역대 분기 최다 판매 기록을 새로 썼다.
현지 분기 판매량이 30만 대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전체 신차 판매량에서 진가차가 차지하는 비중도 1년 전보다 1.8%포인트 증가한 7.9%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3분기 현대차그룹은 미국 전기차시장 성장률을 크게 뛰어넘는 판매실적을 올리며 현지에서 점유율 9.8%(3만757대)로 전기차 판매량 2위에 올랐다.
반면 3위권을 형성한 경쟁 브랜드의 점유율은 미국 포드 6.7%(2만962대), 독일 폭스바겐그룹 6.5%(폭스바겐·아우디·포르쉐, 2만295대), 미국 GM 6.4%(쉐보레·캐딜락·GMC, 2만57대) 등으로 모두 6% 대에 그쳤다.
1위는 미국의 글로벌 선도 전기차업체 테슬라가 차지했다. 테슬라는 3분기 미국에서 전기차 15만6621대를 판매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다만 후발 전기차업체들이 다양한 전기차 모델을 내놓고 판매량을 늘리면서 올해 1분기만 해도 62%였던 테슬라의 전기차 시장점유율은 3분기 50%까지 떨어지며 역대 최저치를 보였다.
현대차그룹은 3분기 미국 전기차 판매 호조에 힘입어 올해 현지 누적 전기차 판매에서 2위 GM과 격차를 올해 1~6월 1726대에서 1~9월 1만2467대로 크게 벌렸다.
이에 현대차그룹이 단기 대응 전략을 펼쳐 미국 초기 전기차 시장에서 최대 위기로 여겨졌던 IRA 장벽의 5부능선을 성공적으로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애초 2025년으로 예정됐던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전용공장(HMGMA) 완공 시점을 내년 하반기로 단축하기 위해 그룹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10월 현재 현대차그룹은 IRA가 시행된 뒤 전기차 현지 생산체제를 갖추기까지 정확히 절반의 시점을 지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8월 시행된 IRA는 북미에서 최종조립된 전기차에 한해 최대 7500달러(약 1천만 원)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세액공제)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아직 미국에 전기차 생산 체제를 구축하지 못한 현대차그룹의 전기차들은 모두 미국 전기차 구매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미국 전기차 판매 톱5 업체 가운데 1천만 원 가까운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곳은 현대차그룹이 유일하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일찌감치 제조 혁신을 통해 전기차 생산 단가를 낮춘 테슬라가 현지 전기차 가격경쟁을 주도하면서 보조금 지급 대상 제외된 데 더해 가격 인하 경쟁에도 나서야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미국 자동차 시장조사업체 콕스오토모티브는 12일 보고서를 통해 "테슬라가 시작한 가격 전쟁으로 인해 미국 전기차 평균 가격은 8월 5만2212달러에서 지난달 5만683달러로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테슬라는 1년 전과 비교해 가격을 25%가량 낮췄고 10월 첫주 테슬라 모델Y는 3만8880달러로 역대 최저 시작가격을 기록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년 동안 IRA에 관계없이 전기차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리스와 플릿(자동차를 법인, 렌터카, 중고차업체 등 대상으로 대량 판매하는 것) 등 상업용 판매 채널을 늘렸다.
또 전기차 모델에 따라 IRA 보조금(7500달러)에 필적하는 수준의 자체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수익성보다는 판매대수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지난 1년 동안 판매실적을 크게 늘렸다. 특히 현대차 아이오닉5는 올 3분기 미국에서 전년 동기보다 143% 증가한 1만1665대가 팔려나가며 역대 분기 최다 판매량 기록을 새로 썼다.
브랜드별로도 3분기 1년 전과 비교해 현대차는 237.1%, 기아는 67.0%, 제네시스는 102.9% 판매량을 늘렸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전기차 생산체제를 갖추기까지 반환점을 돌며 올해 4분기부터 현지 전기차 판매량을 더욱 늘릴 공산이 커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3분기 기아의 플래그십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EV9 미국 수출 물량 양산을 시작했고 4분기부터 본격 현지 판매를 시작한다.
EV9는 상업용이 아닌 일반 소매 판매 방식의 할인을 제공하지 않아도 미국에서 상당한 수요를 확보할 수 있는 차량으로 기대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EV9와 같은 3열 전기 SUV는 선택지가 넓지 않은 데다 그나마 있는 현지 시판 모델 대부분이 IRA가 규정한 SUV 보조금 지급 가격 기준 상한인 8만 달러를 훌쩍 넘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기 때문이다.
켈리블루북(KBB)은 미국에서 판매될 EV9 시작가격을 5만5천 달러(약 7400만 원), 모든 옵션을 다 넣으면 7만 달러(약 9400만 원) 수준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반면 테슬라 모델X 가격은 8만1380달러(1억1천만 원), 메르세데스-벤츠 EQS SUV 가격은 10만4400만 달러(1억4천만 원)부터 시작한다. 그럼에도 모델X는 3분기 미국에서 4699대가 팔렸다. 4만 달러(5400만 원) 초반 가격에서 시작하는 현대차 아이오닉6의 3분기 판매량(5073대)과 비슷한 수준이다.
송호성 기아 대표이사 사장은 3월 EV9 월드프리미어(세계 최초 공개) 행사에서 "EV9은 전세계 전동화 경쟁구조를 재편하고 기아가 전기차 톱티어 브랜드로 올라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