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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창수 GS그룹 회장 |
GS그룹은 2004년 LG그룹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지주회사체제를 갖췄다. 지주회사인 GS가 GS칼텍스정유, GS홈쇼핑, GS리테일 등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GS의 지분은 허창수 GS그룹 회장을 비롯한 허씨 일가 49명이 골고루 나눠서 소유하고 있다.
GS그룹은 가계도가 복잡하기로 유명하다. 최근 그룹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4세를 제외하더라도 LG그룹과 GS그룹 경영에 참여한 허씨 일가는 10여 명을 훌쩍 넘는다. 이들이 오랜 기간 그룹에 몸담으며 보유하게 된 지분은 후대로 가면서 더욱 잘게 쪼개졌다.
이들이 지분을 골고루 나눠 갖게 된 원인으로 허씨 일가 특유의 가풍이 꼽힌다. 동업자 시절 몸에 밴 양보와 화합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워낙 잘게 나눠진 지분 탓에 경영권 승계구도는 안개 속이다. 그 누구도 유리하지도 불리하지도 않은 상황이다. 이런 구도가 앞으로 GS그룹에 위기를 안겨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1인당 평균 0.96%...잘게 쪼개진 지분
GS의 최대주주인 허창수 회장이 보유한 지분은 4.75%에 불과하다. 허씨 일가 49명이 소유하고 있는 GS 지분은 총 47.45%에 이른다. 1인당 평균 0.96%다. 말 그대로 잘게 쪼개져 있는 상황이다.
GS의 지분이 이렇게 골고루 퍼진 이유는 LG그룹 시절 보유하던 지분이 GS로 그대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2004년 GS그룹이 독립하면서 지주회사 LG가 지주회사 LG와 GS로 분할됐다. 인적분할이었기 때문에 분할 후에도 LG와 GS의 대주주 구성은 그대로 유지됐다. 이 과정에서 LG시절 원래 나눠 갖고 있던 지분이 그대로 GS로 넘어왔다.
이 때문에 GS그룹의 2세와 3세들은 GS그룹의 경영에 관여하지 않더라도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GS 지분은 허창수 회장 다음으로 허경수 코스모그룹 회장이 3.21%,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이 2.64%를 가지고 있다. 이 둘은 GS그룹의 경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따로 독립해 각자의 사업을 운영하는 중이다.
이들이 처음 LG의 지분을 취득하게 된 배경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허경수 회장의 아버지는 허신구 LG유통 명예회장이고, 허광수 회장의 아버지는 허정구 전 삼양통상 명예회장으로, 허만정 LG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즉 이 둘의 지분은 아버지대로부터 물려받았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분할 이전 LG의 사업보고서에 최대주주인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특수관계인으로 등재된 허씨 일가가 6명에 불과해 허씨 가문의 재산 분배는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GS그룹 지분구조의 윤곽이 드러난 것은 GS그룹이 떨어져나간 이후다. 분가 이후 GS의 지분구조가 공개되면서 새삼 주목을 받았다. 5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나눠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GS그룹의 다른 축을 이루는 GS건설의 지분 역시 허씨 일가가 골고루 보유하고 있다. GS건설은 GS의 자회사가 아닌 계열사에 속한다. GS가 GS건설 지분을 취득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계열사로 남아 있다.
GS건설 역시 14명의 친인척이 0.02~12%의 지분을 나누어 보유하고 있다. GS건설의 1대 주주는 11.8%를 보유한 허창수 회장이며, 2대 주주는 허창수 회장의 동생들로 각각 2.27∼5.8%를 보유하고 있다. 그밖에 허창수 회장의 자녀들과 5촌 조카들이 1% 미만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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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창수 회장이 2011년 열린 수출투자고용확대를 위한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뉴시스> |
◆ 동업자 시절부터 내려오던 가풍이 지금도 이어져
허씨 일가들이 이처럼 주요 계열사 주식을 나눠 갖고 있는 데 대해 허씨 일가의 가풍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오랜 동업에서 비롯된 합리적 사고방식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동업자 시절 LG의 구씨 집안은 굵직굵직한 바깥일을 주로 맡은 반면 숫자에 밝고 치밀한 허씨 집안은 재무나 영업 등 꼼꼼한 손길이 필요한 안살림을 담당했다. 이런 시절을 거치면서 역할 분배에 대해 더 철저해졌다.
재산 분배 역시 이런 성향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철저하고 엄격한 역할분담과 재산분배로 분란의 씨앗을 미리 막고 있다는 것이다.
구씨와 허씨 일가는 3대에 걸친 동업자 시절 동안 지분구조를 철저하게 유지해 분란의 소지를 없앴다. LG와 GS는 창업 초기부터 재산비율을 65대 35로 유지해 왔고 그룹 분리 과정에서도 이 비율은 정확히 지켜졌다.
LG그룹의 기업문화인 ‘인화’를 원인으로 꼽는 시선도 있다. 인화는 인간 사이의 화합을 말한다.
LG그룹의 대표적 기업문화인 인화는 사실 구씨 가문이 아닌 허씨 가문이 주도했다. 허씨 가문은 창업 초기 실질적 자금줄이었음에도 자신을 낮추고 뒤에서 지원하는 역할에 충실했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기업문화가 바로 인화라는 것이다.
인화라는 기업문화는 세계 경영학계에서 회자될 만큼 주목받는 특별한 문화다.
최종태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경영사학회 연구총서에서 인화에 대해 “상호 합의한 원칙을 존중하고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한다는 엄정한 책임의식이 전제돼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정신이 창업 1, 2대를 거쳐 3대로 내려오면서도 변함없이 LG를 지탱했고 나아가 계열분리된 이후에도 GS그룹을 이끄는 바탕이 됐다는 것이다.
두 집안은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 전에 항상 충분한 합의를 거쳐 원칙을 정하고 이를 지켰다. 결과에 대해서도 투명하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해 57년 동안 한 번도 분란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처럼 욕심을 드러내지 않고 화합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지분구조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LG와 GS가 갈라서는 과정에서 LG전선과 LG산전을 두고 두 가문이 갈등을 빚을 뻔 했지만 가족회의를 거쳐 허씨 일가가 깨끗이 양보하면서 갈등이 봉합됐다.
허씨 일가는 그룹 경영 등 중대한 일을 결정할 때 가족회의를 거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분변동 시에도 가족 간 사전협의를 거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LG그룹과 GS그룹의 전 세계적 연구대상이 되고 있는 인화와 화합의 기업문화는 사실 허씨 집안이 만든 것”이라며 “바로 이런 법칙에 따른 상호협력이 재물이나 야망에 의한 불화를 피할 수 있는 힘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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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홍 GS칼텍스 상무(좌)와 허윤홍 GS건설 상무 |
◆ 사이좋은 허씨 일가, 포스트 허창수는?
허씨 일가가 사이좋게 지분을 나눠가진 까닭에 경영권 승계는 아직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오너일가의 지분이 워낙 분산돼 있어 섣부르게 자산을 승계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4세 가운데 가장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인물로 2명이 꼽힌다.
바로 허창수 회장의 장남 허윤홍 GS건설 상무와 창업주의 장남 허정구 삼양통상 회장의 장손 허준홍 GS칼텍스 상무다. 이 둘은 4세들 가운데 경영전면에 나서 있으며 나이도 허윤홍 상무가 35세, 허준홍 상무가 39세로 비슷하다.
허윤홍 상무는 지난 4일 3년 만에 GS 주식 총 5만2610주를 매입해 지분율을 기존 0.43%에서 0.48%로 늘렸다. 허윤홍 상무는 2002년 평사원으로 GS칼텍스에 입사한 후 2005년 GS건설로 자리를 옮겼다. 10년 넘게 핵심 계열사에서 경영수업을 받았지만 지분승계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앞서 허준홍 GS칼텍스 상무도 지난 5월 1년 만에 또 다시 지주사 지분을 매입했다. 허준홍 상무는 GS가 4세 가운데 GS의 지분을 가장 많이 갖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아왔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1.24%의 지분을 보유했으나 이번 취득으로 총 1.64%의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이 2명이 2달 사이 지분을 연달아 매입하자 향후 경영권 승계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허준홍 상무는 지난해에도 3일 연속으로 25만주를 매입해 주목을 받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허윤홍 상무가 그룹 총수인 허창수 회장의 장남이지만 허준홍 상무는 지주회사에 대한 지분율이 높을 뿐 아니라 장손으로서 집안 내 서열도 허윤홍 상무보다 높다”고 얘기했다. 향후 4세 후계 경쟁이 있을 경우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가문 내 서열은 장자인 허준홍 상무가 높다. GS가문은 실제 유교적 가풍에 따른 엄격한 위계질서를 따르고 있다.
허씨 일가는 자손이 매우 많다보니 조카와 삼촌의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거나 나이가 뒤바뀌는 경우도 많다. 허승조 LG유통 사장은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의 삼촌이지만 12살이나 어리다. 젊은 삼촌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예의를 차리는 것이 당연한 가풍이라는 것이다.
이런 가풍과 위계질서로 인해 장자 우선 원칙이 거의 지켜졌고 딸들은 경영에서 배제됐지만 잡음이 나오지 않았다.
과거 2세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장자승계 원칙이 잠시 틀어진 것이지 원칙을 따지면 허준홍 상무가 우선순위에 있다. 허창수 회장의 선친인 허준구 회장은 삼남이지만 장남인 허정구 회장이 다른 사업을 독자적으로 시작해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었다.
허준홍 상무 외에도 4세 가운데 허윤홍 상무보다 GS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인물이 즐비하다. 허동수 GS칼텍스 이사회의장의 아들인 허세홍(44) GS칼텍스 부사장이 1.4%, 허 상무의 사촌인 허정수 GS네오텍 회장의 아들인 허철홍(35) GS과장이 1.34%를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촌형제들의 합의와 양보가 없다면 허윤홍 상무가 차기 총수에 오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4세가 경영권을 승계하더라도 3세와 마찬가지로 그룹 회장이 GS의 대표이사로서 그룹 전체를 조율하고, 많은 친인척이 계열사를 나누어 경영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