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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남노 1년 냉천 '상처' 여전, 포항제철소 용광로 불길 사수 프로젝트 진행 중

장상유 기자 jsyblack@businesspost.co.kr 2023-09-06 15: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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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남노 1년 냉천 '상처' 여전, 포항제철소 용광로 불길 사수 프로젝트 진행 중
▲ 4일 경북 포항시 남구 냉천교에서 바라본 냉천의 모습. 약 1년 전 태풍 힌남노가 뿌린 집중호우로 범람한 이 곳은 아직 온전한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4일, 냉천 위 하늘은 흐렸다. 범람의 피해가 심각했던 하류 냉천교, 인덕교 부근은 아직도 본래의 모습을 되찾지 못했다.

115년만의 폭우였다. 지난해 9월6일, 태풍 힌남노가 포항과 경주 지역에 시간당 최대 110mm의 많은 양의 비를 몰아왔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포항시 남구 오천읍 갈평리부터 청림동으로 이어지는 냉천은 19km 굽이굽이 지난해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냉천교에서 바라본 냉천은 여전히 토사 제방이 드문드문 끊어진 채 불규칙하게 이어져 있었다. 인덕교 부근 냉천에는 모래와 돌이 채워진 원통형의 톤마대가 임시 제방 역할을 하고 있었다. 

현장에는 포크레인들이 하천의 흙 등을 걷어내 바닥을 깊게 만드는 준설작업을 하고 있었다.

냉천에서 300여 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30년 이상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한 상인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30년 만에 냉천이 넘친 것을 처음 목격했고 가게 안으로도 발목 높이 이상에 물이 들어찼어요. 앞으로 예상치 못한 폭우가 더 자주 발생할 것이라고 하는데 지난해와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걱정이 많습니다."

냉천교에서 포스코 포항제철소 방향으로 걸어가니 높이 2m로 길게 늘어선 흰색 차수벽이 나타났다. 마치 성벽처럼 굳건히 포항제철소 일부분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 차수벽은 포항제철소 정문부터 3문에 이르는 1.9km 구간에 5월 설치가 완료됐다.

포항제철소 각 출입구에는 동시에 차수문이 세워졌다. 2문과 3문 사이 차수벽 바로 바깥에 위치한 배수로도 더 넓게 구축했고 내부 배수로 신설, 비상 전원 공급체계 구축 등 설비 개선을 진행했다.

또 포항제철소 3문에서부터 냉천과 직접 닿아있는 냉천 토사 제방 1.65km 구간에 강널말뚝(시트파일)을 설치했다. 강널말뚝은 제방 차수설비 아래 바닥에 심는 구조물로 제방 붕괴를 막는 역할을 한다.

1년도 지나지 않아 세워진 포항제철소 차수벽에선 다시는 침수로 가동을 멈추지 않겠다는 포스코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기후변화로 높아지는 워터리스크(Water risk)에 대비해 경상북도와 포항시는 장기적으로 150년, 200년만에 오는 폭우도 견딜 수 있는 대비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포스코는 지구온난화를 '1.5'도 상승에서 제한하겠다는 최상의 목표를 가정한 시나리오에 기반해 워터리스크 대비책을 수립하고 있었다.
 
힌남노 1년 냉천 '상처' 여전, 포항제철소 용광로 불길 사수 프로젝트 진행 중
▲ 냉천 재해복구사업 현장에서 굴착기가 준설(하천 바닥의 흙 등을 걷어내 바닥을 깊게 만드는 것)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지방하천 관리주체인 경북도는 냉천 준설을 통해 통수능력, '물 그릇'을 키우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겉보기엔 지지부진한 냉천 재해복구사업, "통수능력 확대로 '물 그릇' 키우겠다"

지방하천 관리주체인 경북도는 5개 지방하천(냉천·신광천·칠성천·장기천·대화천) 재해복구사업을 5월에 동시 착공해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에는 모두 1716억 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피해가 극심해 가장 많은 795억 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냉천 재해복구사업의 핵심은 치수능력 확보, 특히 냉천의 통수능력(수리 시설이 물을 보낼 수 있는 능력)을 증대하는 것에 있다.

단순히 재해복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물 그릇’ 용량을 키워 미래 대응능력을 갖추려는 것이다. 경북도는 80년 빈도에 맞춰진 냉천의 통수능력 설계 강우량 기준을 하천 중류와 하류에서는 상향한다.

경북도 관계자는 "국가에서 추진되는 공사는 많게는 수십개의 행정절차가 필요해 이 탓에 다소 복구가 느린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9월 피해가 발생한 뒤 복구사업에 본격 착수하기까지 8개월이 걸렸다.

이어 "냉천 재해복구사업은 행정안전부에서 설계 사전심의 과정을 사업 후반부로 미루는 등 절차상으로도 비교적 신속하게 진행된 편"이라고 덧붙였다. 

장기적으로 경북도는 폭우 대처 기준을 힌남노 때보다 높여 홍수 피해를 방지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경북도 관계자는 "냉천의 상류는 그대로 80년 빈도로 유지되지만 중류는 150년 빈도, 하류는 200년 빈도에 맞게 변할 것"이라며 "힌남노에서 경험했듯이 앞으로는 폭우의 빈도나 강도의 예측이 쉽지 않아 여기에 대처할 수 있게 기준을 높여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천법에 따르면 국가하천은 100~200년 빈도, 지방하천은 50~100년 빈도 최대 강우량에 맞춰 설계돼야 한다. 경북도는 이보다 높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냉천 재해복구사업은 크게 준설, 식생호환블럭 등 구조물 설치, 산책로 등 부대시설 구축 등 3단계로 나뉜다. 이 가운데 사토반출, 불필요한 구조물 철거 등의 준설 작업이 냉천의 통수능력을 키우는 핵심 작업이다.

경북도는 냉천 재해복구사업 이후에도 지속적 모니터링을 통해 적절한 수준의 준설작업을 진행한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하천 너비 자체를 넓히는 작업도 함께 진행한다.

또 3개월 동안 모두 22만㎥, 25톤 덤프트럭으로 1만4660대의 분량의 준설작업을 진행한 결과 통수능력을 일부 확대해 8월 초 태풍 카눈으로부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경북도 관계자는 "빠르게 2차 재해피해가 우려되는 지역(하류) 중심으로 준설작업을 진행해 선제적으로 올해에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힌남노 1년 냉천 '상처' 여전, 포항제철소 용광로 불길 사수 프로젝트 진행 중
▲ 포항시의 안전도시 종합추진계획 요약 그림. 포항시는 이 계획에서 대배수터널 대배수터널 구축, 저류지 및 빗물펌프장 확충, 항사댐 및 홍수통제소 구축 등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홍수 대응능력을 키운다. <포항시>
◆ 포항시 대배수터널과 도심저류지 확충으로 포괄적 홍수 대응, "문제는 정부 예산 확보" 

냉천을 품은 포항시는 '안전도시'로 거듭나겠다는 종합추진계획을 지난해 힌남노 피해 직후 수립한 뒤 이를 실행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핵심은 대규모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근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포항시는 포괄적 홍수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폭우 때 냉천과 형산강의 물을 바다로 직접 보내는 총 길이 28km의 대배수터널 2개 구축, 물 저장능력을 키우는 도심 저류지 100개소 확충, 하천 주변의 침수를 예방하는 빗물펌프장 추가 설치 등이다.

또 저수용량 476만 톤 규모의 홍수조절댐인 항사댐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현재 전국에 4개만 존재하는 홍수통제소 건설도 환경부에 지속적으로 건의하고 있다.

문제는 조 단위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일례로 대배수터널 건립에만 1조3천억 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올해 초부터 10월 준공을 목표로 한국수자원학회와 함께 냉천 주변의 홍수 피해의 원인을 분석하는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이후에는 포항시 전반에 홍수 대응능력을 높일 방안을 진단하는 용역을 1년여에 걸쳐 진행한다.

김수호 포항시 생태하천과장은 "현재 수리시설로는 앞으로의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힘들다"며 "이 용역들은 학술적 및 기술적 데이터, 즉 과학적 근거를 갖고 정부에 건의해 장기적 홍수 대응능력을 갖추기 위한 예산을 확보하는 시작점"이라고 말했다.

포항의 홍수 대응능력은 산업적으로도 의미가 매우 크다. 침수 피해가 한 기업을 넘어 국가적 산업역량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항에는 철강 분야의 맏형 포스코의 포항제철소가 존재한다. 여기에 현대제철, 동국제강, 세아제강 등 주요 기업들이 함께 산업단지를 이루는 국내 철강 산업의 중심지다.

최근에는 포항 블루밸리산업단지가 정부 차원에서 집중 육성하고 있는 이차전지 분야의 특화단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김 과장은 "포항에는 국가기간산업시설 포항제철소가 위치해있고 향후 이차전지 산업의 유망 기업들이 다수 입주할 예정"이라며 "포항의 홍수 대응을 포함한 물 관리 역량은 국민의 안전뿐 아니라 산업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힌남노 1년 냉천 '상처' 여전, 포항제철소 용광로 불길 사수 프로젝트 진행 중
▲ 경북 포항시 남구에 위치한 포스코 포항제철소 정문부터 3문(1.9km)에 설치된 차수벽. 포스코는 2문과 3문 사이 차수벽 바로 바깥 배수시설도 개선했다. <비즈니스포스트>
◆ 49년 만에 '올스톱' 포항제철소, 지구 기온 '1.5도' 상승 시나리오로 대비책 마련 중

포항제철소는 지난해 설립 뒤 49년 만에 처음으로 고로 3기의 가동이 모두 중단되는 최악의 피해를 겪었다. 여의도 면적의 3배인 287만 평에 이르는 포항제철소 대부분이 물에 잠긴 것이다.

이는 유형자산 피해, 복구비용뿐 아니라 포스코 영업이익에도 1조3천억 원이 넘는 손실을 야기했다.

포스코는 다시는 침수 피해를 겪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포스코는 힌남노 피해를 계기로 홍수에 따른 침수 등 물리적 리스크 대응 역량을 체계적으로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포스코는 올해 7월 발간한 '2022 기업시민보고서'에서 처음으로 RCP 2.6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자연재해로 인한 자산손실 분석을 진행했다.

RCP(온실가스 대표농도경로)는 인간 활동이 대기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낸 지표로 RCP 2.6은 지구온난화를 ‘1.5’도 상승에서 제한하겠다는 최상의 목표를 가정한 시나리오다.

이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포스코는 ‘하천 범람’이 2050년까지 자산가치 손실률 1~10%를 발생시킬 수 있는 급성 위험요인이라는 결과를 내놨다. 자산가치 손실률이 10% 이상인 ‘해안 침수’ 발생에 이어 2번째로 높은 리스크다. 

이를 기반으로 포스코는 자연재해 예방, 피해복구, 생산 보호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담은 ‘업무연속계획(BCP)’를 수립했다.

포스코는 올해 상반기 포항제철소에 업무연속계획 지침을 마련했다. 이에 포항제철소에서는 자연재해 경보발령 기준이 기존 2단계에서 4단계로 세분화해 운영되고 극한의 재난 발생 때 전사 차원의 대응본부가 운영된다.

포스코는 "앞으로 기후변화에 따라 태풍, 호우, 해일 등 자연재해 규모와 빈도가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RCP 2.6 기반) 물리적 리스크 분석 결과를 토대로 하천 범람 등에 관한 관리를 지속해서 강화해 나가고 설비를 신·증설에도 리스크 영향을 면밀히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과 지자체들이 홍수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길게 바라보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500년 빈도'의 힌남노 강우가 보여주듯 기후변화의 폭이 더욱 예측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 추진되고 있는 방안들 가운데 일부분에서는 한계가 지적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하천 준설을 둘러싼 논쟁이다.

하천의 홍수 대응 능력을 확보하는 데 준설이 가장 적합한 방식이냐는 데는 이견이 존재한다. 한 마디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백경오 한경국립대학교 토목안전환경공학과 교수는 "하천을 준설하면 빈 공간이 생기므로 홍수위(홍수 때 최대 상한수위)가 떨어지는 효과가 당장에 생기기는 한다"며 "하지만 빈 공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흘러온 토사에 다시 퇴적돼 효과가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하천생태계를 파괴하면서 바닥을 파내는 준설이 홍수방어 효과가 부족하기 때문에 제방후퇴, 홍수터 확대 등 지속가능한 치수 정책이 필요하다"며 "이런 정책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세계적 추세의 치수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대응책 마련의 기준이 장밋빛 전망에 기댔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RCP 2.6에서 가정하는 지구온난화 '1.5도' 상승 제한 목표가 이미 사실상 붕괴됐다고 보고 있다. 현재 추세로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되는 최악의 시나리오인 RCP 8.5 등 더 높은 목표의 설정이 필요한 것이다.

과거에 우리가 경험했던 호우로 미래를 대비하면 안되는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다가온 만큼 홍수 대책이 신속하면서도 효과적 방향으로 마련되야 할 것으로 보인다. 포항=장상유 기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워터리스크, 물이 산업안보다] 폭우와 가뭄 등 극단적 기후현상은 세계 많은 지역에서 점차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9월 한반도에 몰아친 115년 이래 최악의 폭우로 포항제철소 고로는 사상 처음 가동을 완전히 중단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공장 운영에 필요한 수자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투자 계획을 고심하고 있다. 물이 너무 많아도, 부족해도 문제다.
인구 증가와 산업 활성화, 기후변화로 ‘워터리스크(water risk)’, 물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수자원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일이 산업 안보에 중요한 과제가 됐다. 워터리스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반도체, 철강, 화학, 발전 등 주요 산업은 물론 국가와 지역경제도 위험해진다.
비즈니스포스트는 국내외 주요 기업과 물 관리 선진국의 리스크 관리 및 대응사례를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한국위원회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함께 발굴해 보도한다. 최신 동향과 해법 관련 기사들은 비즈니스포스트 워터리스크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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