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검찰의 롯데그룹 비자금 의혹수사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자칫 포스코 수사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 강현구 이어 허수영 영장도 기각
한정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19일 “주요 범죄혐의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는 등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허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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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이 18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서울 서초구에 있는 서울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뉴시스> |
검찰이 롯데그룹의 비자금 의혹수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뒤 계열사 사장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건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에 이어 두번째다. 이에 앞서 법원은 강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도 기각했다.
허 사장은 기준 전 롯데물산 사장과 함께 부정한 방법으로 법인세 220억 원 등 모두 270억 원가량을 부당하게 돌려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실재하지 않는 1512억 원의 유형자산을 보유한 것처럼 속여 국세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모두 270억 원을 돌려받았다.
검찰은 허 사장이 소송사기에 직접 개입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당시 롯데케미칼 대표이사였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이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다고 판단하고 11일 허 사장을 불러 신 회장의 지시가 있었는지 등을 추궁했다.
허 사장은 이와 함께 개별소비세 13억 원을 포탈한 혐의도 받고 있다.
허 사장은 또 국세청 출신인 세무법인 대표 김모씨에게 국세청 세무조사 무마청탁과 함께 수천만 원을 건넨 혐의도 받고 있다. 협력업체로부터 해외여행 경비 명목으로 4500여만 원을 수수한 혐의도 영장 범죄사실에 포함됐다.
◆ 포스코 수사 전철 밟나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잇따라 기각되면서 이번 수사가 자칫 용두사미가 될 수도 있다.
검찰 내부에서도 영장기각이 되풀이되면서 사실상 수사가 불가능해졌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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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
검찰은 당초 허 사장의 신병을 확보해 제기된 의혹 전반에 대해 신동빈 회장의 개입여부를 집중적으로 추구하려 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사실상 물건너 갔다. 롯데케미칼은 검찰이 수사 초기단계부터 주요 수사대상으로 올려둔 계열사였다.
검찰이 6월10일 롯데그룹 비자금의혹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간 뒤 청구된 구속영장은 모두 8건이다. 이 가운데 3명이 구속됐고 나머지 5명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구속된 사람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롯데케미칼 전 재무이사 김모씨, 기준 전 롯데물산 사장이다.
그러나 신 이사장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입점청탁 의혹수사에 대한 결과로 구속된 만큼 롯데그룹 차원의 비자금 의혹수사와 비켜나 있다.
반면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 롯데케미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았던 세무사 김모씨, 20억 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가 적용됐던 롯데건설 임원 2명의 영장은 차례로 기각됐다.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혔던 소진세 롯데그룹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 사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 데 그쳤다.
검찰이 수사에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자 1년 가까이 포스코를 뒤흔들고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던 지난해의 전철을 다시 밟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포스코 수사는 지난해 3월13일에 시작돼 올해 2월에야 끝났다. 1년 가까이 이어진 수사에서 소환된 사람만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 등을 포함해 100여 명을 훌쩍 넘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구속된 10여 명은 포스코 계열사 전무와 상무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정 전 회장 등 비리의 핵심으로 지목되던 인물들은 모두 불구속기소됐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