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 세대를 자신의 틀 내에서 어떻게든 설명해내려는 시도는 고정관념과 성급한 일반화라는 지뢰를 맞닥뜨릴 수 있다. < Unsplash > |
[비즈니스포스트] 한동안 미디어에서는 MZ세대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 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비판하고, 분석하고, 풍자하고, 변호하는 등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기 바빴다. 동네북도 이런 동네북이 없었다.
이제 그 열기(?)가 좀 사그라든 듯도 한데, 그 자리를 이제는 잘파(Zalpha)세대 (Z세대와 2010년 이후 출생한 알파세대)가 슬슬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MZ세대만큼의 인지도를 얻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그 시대의 젊은 세대를 어떤 식으로든 한데 묶는 행위는 앞으로도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MZ세대 전에는 X세대가 있었고, 그 전에는 베이비붐 세대가 있었고... 한참 전에는 이집트 벽화 속에 ‘요즘 애들’ 버릇없다는 말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젊은 세대가 세상에 등장할 때마다 마치 신인류를 발견한 것처럼 깜짝 놀라며 그들만의 공통적인 특징을 열심히 찾고 비판하는 시도는 이렇듯 유구한 역사를 지닌 것 같다.
이런 일이 매번 새로운 이벤트처럼, 그러나 사실은 꾸준히 반복되는 이유는 우리 안에 있는 근원적인 불안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실체가 파악되지 않은 불확실한 자극에 대한 불안이 존재한다. 모호함만큼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없다.
물론 이는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특성이다. 숲속 저 멀리서 다가오는 그림자의 실체를 알 수 없을 때, 혹시나 곰일까 싶어 염려하는 사람이 태평한 사람에 비해 살아남을 확률이 분명 더 높은 것처럼.
이처럼 알 수 없는 대상은 반드시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전제로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모습의 젊은 세대 역시 기성세대를 불안하게 한다.
정시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하거나, 에어팟을 끼고 근무하거나, 영어학원에 가야 해서 회식에 참석할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하는 직원을 마주하는 순간 마치 숲속에서 그림자를 발견한 것 같은 감정에 휩싸이는 것이다.
미지의 자극이 불러일으킨 불안을 우리는 어떻게든 처리하고 싶어진다. 그때 할 수 있는 가장 즉각적인 첫 반응은 그 대상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난하는 일이다. (내게 스트레스를 준 네게는 틀림없이 문제가 있을 것이다!)
이는 스트레스를 마주할 때 사람이 자동적으로 보이는 투쟁 또는 도피(fight or flight) 반응과 닮아 있다. 이 경우 아직 도피까지는 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그래도 젊은 세대가 곰만큼 위험하지는 않다는 것쯤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싸워서 없애려는 노력은 한계에 부딪힌다. 비난을 하든 못마땅해 하든 그들은 계속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이제 미지의 자극이 주는 불안을 없애기 위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알 수 없는 그 대상을 어떻게든 자신이 납득 가능하도록 설명해냄으로써 불확실성을 없애고 안심을 얻는 일이다. 설령 그 설명이 정확하지 않더라도. '90년생이 온다' 같은 책은 바로 그 모호함을 줄이는 역할을 훌륭히 해주었기에 큰 사랑을 받았다.
어떻게든 빈 칸을 채워 설명하려는 이런 노력은 휴리스틱(heuristic)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 전략이다. 휴리스틱은 한 마디로 신속하게 어림짐작하여 판단하는 기술을 말한다.
우리는 자신의 입장이나 행동을 결정할 때 100%의 완벽한 정보와 충분한 시간을 늘 확보할 수는 없으며, 심리적인 에너지 역시 한정되어 있다. 한 주제에만 매달려 있기에는 너무 바쁜 삶을 살아간다. 그렇다고 불확실한 상황을 그대로 두는 것도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그간의 경험과 인지적인 자원을 토대로 ‘ㅇㅇ는 대충 이럴 거야’라고 빠르게 판단하고 결론을 내림으로써 삶에 필요한 결정도 효율적으로 하고, 불안을 줄이면서 안심도 얻는다.
휴리스틱은 그 자체만으로는 전혀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휴리스틱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유니폼을 입은 사람을 그 매장의 직원이라고 판단하고 말을 거는 과정에도 사실 휴리스틱이 개입한다.
그런데 굳이 따지자면 독특한 취향을 가진 누군가가 그 유니폼을 패션으로 입었을 가능성도 0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의 수까지 따진다면 우리는 간단한 판단도 도저히 제때 해나갈 수 없기에 휴리스틱은 삶에 필수적이다.
하지만 분명히 함정도 존재한다. 휴리스틱은 우리의 고정관념과 편견에 상당히 기여한다. 말쑥한 옷차림의 사기꾼에게 당하고 후줄근한 옷차림의 주요 인사를 무시했다가 망신을 당하는 일은 휴리스틱으로 인한 어림짐작이 가져다주는 결과물이다.
휴리스틱의 함정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로, 호주에 사는 두 청년이 관광지나 콘서트장 같은 곳에는 늘 형광조끼를 입은 관계자가 있다는 사실에 착안해 그저 형광조끼 하나만을 걸치고 영화관, 동물원, 콘서트장까지 제지 없이 무단으로 입장하는 데 성공한 일이 있었다. 젊은 세대를 자신의 틀 내에서 어떻게든 설명해내려는 시도 역시 고정관념과 성급한 일반화라는 지뢰를 맞닥뜨릴 수 있다.
낯선 존재로 인한 불안을 없애기 위해 처음에는 비난했다가 그 다음 어떻게든 설명하려는 데까지 왔다. 그 다음 단계는 대상을 풍자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대상으로 인한 고통을 줄이기 위해 유머를 동원한다.
젊은 세대의 받아들이기 어려운 행동을 과장하고 패러디하는 순간, 그간 느꼈던 자신만의 불안은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크기로 작아지며 더 통제 가능한 감정이 된다. 그래서 MZ세대의 회사생활을 풍자했던 어마어마한 양의 영상은 기성세대가 가진 불안과도 비례한다.
고통을 해학으로 돌파하는 이 유머화는 휴리스틱처럼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심리적 방어기제이다. 보통 유머화는 주로 권력이 더 약한 쪽이 강한 쪽을 향해 발휘할 때 비로소 성숙하게 기능한다. 조선시대에 서민들이 탈을 쓰고 양반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며 시름을 잠시나마 잊고 즐겼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각 시대의 젊은 세대들이, 오늘날에는 MZ세대라 불리는 이들이 과연 사회의 권력층이며 기성세대보다 더 큰 힘을 가졌는지를 떠올려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 다소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기성세대가 가진 불안의 크기가 크고, 그들 자신이 실제 가진 힘에 비해 스스로를 약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징후일지도 모르겠다.
잘파세대 이후에는 또 어떤 세대가 등장할까? 신인류를 보듯 놀라며 그 세대만의 특징을 급히 일반화하는 경향이야 인간의 근본적 불안으로 인해 어쩔 수 없더라도, 인간으로서 함께 공유하고 있는 훨씬 더 많은 공통점, 그리고 각각의 개인이 가지고 있는 다채로운 차이들에도 함께 주목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여성학협동과정 석사를 수료했다. 광화문에서 진료하면서, 개인이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책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언니의 상담실>을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