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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리포트 6월] 미국의 중국 견제, 한국 반도체 위축 일본 부활 가능성

박창욱 기자 cup@businesspost.co.kr 2023-06-07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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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세계 경제 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글로벌 차원의 효율을 추구하던 자유무역의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흘러갔다. 그 빈 자리는 패권을 위한 강대국의 자국 우선주의가 메웠다. 

경제는 국제정치와 안보의 하위 개념이 됐고 그런 추세는 갈수록 강화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있고 그 한 가운데 반도체 산업이 놓였다. 
 
[데스크리포트 6월] 미국의 중국 견제, 한국 반도체 위축 일본 부활 가능성
▲ 미국이 최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 과정에서 일본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사진은 일본 키오시아와 미국 웨스턴디지털의 일본 내 합작 메모리반도체 생산공장의 모습.

미국이 반도체를 산업 안보와 경제 패권의 중요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어서다. 이에 미국은 '칩스법'을 비롯한 각종 정책수단을 동원해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나섰다. 

이를 통해 최첨단 반도체 제조기업인 대만 TSMC와 한국 삼성전자가 미국에 파운드리(시스템반도체 수탁생산) 공장을 짓도록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미국이라도 글로벌 반도체 생산시설을 자국 안에 모두 둘 순 없다.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위한 적절한 보완책이 필요하다.

현재 세계 시스템반도체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는 TSMC와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삼성전자는 둘 다 미국이 견제하는 중국의 영향권 아래에 놓여 있다. 

대만은 중국의 침공 위험에 노출돼 있고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수출의 절반 이상을 중국에 의존한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을 견제할 반도체 공급망 구축 전략에서 일본이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일본은 미국 못지 않은 반도체 소재와 장비 분야 강국이자 제조업 대국이다. 더구나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핵심 파트너이기도 하다. 

일본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했던 나라였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한 때 세계 시장의 80%를 차지하기도 했다. 당시 미국은 자국 반도체 기업들이 일본 기업에 밀리자 위협을 느꼈다. 

일본에 반도체 협정을 강제해 수출량과 가격을 통제했고 내수도 개방시켰다. 그 뒤 플라자합의로 엔화가치까지 올라가며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다. 

미국은 일본을 견제하면서 동시에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보전하기 위해 메모리 기술을 이전해주며 한국을 도왔다. 이 덕분에 한국은 일본을 대체하며 메모리 반도체 최강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랬던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진흥)를 막기 위해 최근에는 일본과 협력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미국 마이크론의 히로시마 D램 공장 증설에 천문학적 자금을 지원한다. 이미 일본에서 낸드 합작공장을 지은 일본 키오시아와 미국 웨스턴디지털은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일본 정부의 주도로 설립된 라피더스는 미국 IBM 기술을 이전 받아 2027년 2나노 첨단 파운드리 공정에서 인공지능과 슈퍼컴퓨터 등 분야를 중심으로 최첨단 시스템반도체를 생산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한 때 일본을 견제했던 미국이 지정학적 위협이 덜한 반도체 생산 기지로서 일본과 다시 손 잡는 역사의 전환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은 반도체를 발명한 나라로 반도체 관련 원천 기술을 대부분 쥐고 있다. 미국의 원천 기술과 장비가 없다면 어느 나라도 반도체를 만들 수 없다. 

그런 미국이 일본을 다시 공급망 파트너로 삼는 정책을 가속화한다면 반도체 산업 안에서 한국의 입지가 1990년대 일본처럼 급전직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마음만 먹으면 한국 반도체 산업에 막대한 영향력을 얼마든지 행사할 수 있다.
 
[데스크리포트 6월] 미국의 중국 견제, 한국 반도체 위축 일본 부활 가능성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0년 5월 중국 시안 반도체 사업장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삼성전자>

중국을 상대로 한 반도체 장비 수출제한 정책에서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예외를 허용하지 않으면 당장 두 회사는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중국에서 낸드의 40%가량을, SK하이닉스는 D램의 40%와 낸드의 20%를 만든다.

또 미국은 칩스법의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을 이용해 미국에 공장을 짓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지원 해주는 대신 두 회사 중국 공장의 증설을 제한할 수도 있다. 

미국이 앞으로 공급망의 무게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반도체 산업의 판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자체 반도체 제조 역량을 대만이나 한국 수준까지 갖추지는 못했다. 일본 역시 예전 수준의 반도체 제조 역량을 확보하려면 갈 길이 멀다.

아무리 미국이 반도체 산업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해도 자국 산업을 고려해 제조 역량이 강한 한국 반도체 산업을 중국 견제를 위해 바로 당장 옥죄고 나설 여지는 현재로선 크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정부는 일본과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에서 협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한일경제인회의 대표단에 반도체 소부장 분야 협력을 당부했다. 또 두 나라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 소부장 관련 공동 연구와 기술 협력도 추진한다.

반면 중소벤처기업부 소관의 소부장 진흥과 관련한 올해 예산은 3분의 1 이상 삭감했다. 우리나라의 2022년 기준 소부장 자립률이 30%에 머무는 점을 고려해 일본과 협력을 통해 반도체 제조 분야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이런 정부 정책을 놓고 자유무역 시대에나 어울리는 방식이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 지금은 서로 잘 하는 것을 협력해 생산성을 높이던 시기가 아니라 국가 사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경제가 좌우되는 시대다.

일본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2019년 한국에 포토마스트 등 핵심 반도체 소재 수출에 관한 경제 제재를 한 나라다. 한일 외교 관계가 최근 일정 부분 회복됐다고 하지만 일본은 언제 다시 한국의 반도체 산업의 숨통을 끊자고 달려들 지 모를 일이다.

더구나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자국 중심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서 핵심 파트너로 일본과 손 잡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일본에 기대서는 안 된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일본이 잃어버린 반도체 제조 역량을 되찾는다면 한국을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는데 제조역량 강화에 필요한 소부장 자립을 추진하는 대신 일본과 손 잡는 일은 너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의 교훈에서 볼 때 미국은 자국 패권을 위해 일본의 반도체 생산이 궤도에 올라온다면 중국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은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

그런데도 미국과 일본 사이 반도체 협력의 하부 구조에 한국이 들어간다면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 반도체 산업이 생존할 길을 스스로 차버리는 일이 될 지도 모른다. 박창욱 산업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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