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제13호 우수건축자산으로 등록된 고 김창열 화백의 평창동 주택. <서울시> |
[비즈니스포스트] 작고한 김창열 화백의 집. 일제강점기 지어진 교회를 리모델링한 체부동 생활문화센터. 종로구 경복고등학교의 체육관.
서울 도심 곳곳 우리 일상 속에 있는 이 건축물들은 얼핏 공통점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모두 서울시가 보존, 관리하는 소중한 근현대 건축자산들이다.
29일 서울시 한옥포털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에서 한옥 등 건축자산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사회, 문화, 경제, 경관적 가치를 지닌 우수건축자산으로 등록된 곳은 모두 13곳이다.
최근 건축위원회 심의에서 ‘물방울 화가’로 유명한 현대 미술가 김창열 화백의 평창동 자택이 제13호 우수건축자산으로 결정되면서 건축물 9개소, 공간환경 1개소, 기반시설 2개소가 유지관리 지원을 받게 됐다.
서울시 우수건축자산에는 김 화백의 집처럼 누군가가 살던 주택에서부터 고등학교 체육관과 강당, 공장, 사옥 등 다양한 건축물들이 올라있다.
한옥청, 박물관 같은 특별한 건축물은 아니지만 각각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이야기와 모습들을 간직하고 있는 곳들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애초 우수건축자산 등록제도는 문화재적 지정이 아닌 ‘활용가치’에 중심을 둔 건축문화와 지역 정체성 진흥 등을 목적으로 하는 지원제도다.
가장 최근에 우수건축자산이 된 김창열 화백의 평창동 주택도 현대미술의 거장이 30년 동안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했던 공간으로 의미를 높게 평가받았다. 김 화백의 집을 문화공간으로 개방하면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물론 건축학적으로도 김 화백의 집은 가치가 있다.
김 화백은 오랫동안 프랑스에서 작품활동을 하다 1984년 귀국하면서 우규승 건축가에 주택 설계를 부탁했다. 우규승 건축가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하버드대학 대학원 기숙사, 환기미술관 등을 설계한 건축가다. 2008년 호암상 예술상을 받기도 했다.
김 화백의 집도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2층 주택인데 천장을 통해 빛이 집 안으로 들어오도록 설계돼 자연, 환경과 조화를 중요시한 건축가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집은 2021년 김 화백이 작고한 뒤 종로구가 매입해 더 많은 시민과 공유하기 위해 우수건축자산 등록을 신청했다.
▲ 한국 1세대 건축가인 고 김중업 건축가가 설계한 서울 종로구 사직동 주택. <서울주택도시공사 블로그> |
지난해에는 종로구 사직동의 한 치과의사가 살던 집이 우수건축자산으로 등록됐다.
붉은벽돌 외벽에 아치형 창문과 발코니, 나선형 계단, 천장의 원형 창, 네모가 아닌 다각형의 공간으로 1980년대 한국 고급주택의 익숙함과 이국적 분위기를 동시에 지닌 건물이다.
이 주택은 1983년 지어진 김중업 건축가의 작품이다.
김중업 건축가는 1922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나요코하마고등공업학교 건축과, 파리건축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김중업 건축가는 프랑스 건축거장 르 코르뷔지에 건축가의 제자로 올림픽공원 평화의문, 주한프랑스대사관, 건국대 도서관 등을 설계했다.
▲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서울시 우수건축자산 제3호 켐벨 선교사 주택. <서울시> |
13개 우수건축자산 가운데 마지막 주택도 종로구 사직동에 있다.
종로구 사직동 311-32 외 1 일대에 자리 잡은 켐벨 선교사 주택은 2019년 제3호 우수건축자산으로 등록됐다.
켐벨 선교사 주택은 구한말 미국 남감리교회가 서울에 파견한 첫 번째 여성 선교사 조세핀 켐벨이 살았던 집이다. 조세핀 켐벨 선교사는 당시 서울에 배화학당을 세워 여성인재를 양성하는 일 등에 힘썼다.
이 집은 서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한양도성과 가까운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한국 교회 초기 선교역사를 보여주는 역사적 가치와 함께 흥미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석재 주택이 2개의 동으로 구성돼 있고 경사진 기둥 2개와 목조 캐노피로 구성한 독특한 현관이 특징이다.
▲ 서울시 우수건축자산 제1호 종로구 체부동 성결교회. <서울시> |
사직동 인근 종로구 체부동에서는 우수건축자산 제1호인 성결교회를 만나볼 수 있다.
체부동 성결교회는 1931년 지어진 건축물로 프랑스와 영국의 근대 건축양식과 한옥이 어우러진 독특한 형태로 건축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옛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해왔다.
체부동 성결교회는 2018년 리모델링을 거쳐 인근 주민을 위한 생활문화센터로 다시 문을 열었다. 건축물의 가치를 보존하면서 활용한다는 우수건축자산 등록제도의 취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체부동 성결교회 지붕은 근대 건축물에 활용된 서양식 목조지붕 형태인 삼각형의 ‘트러스 구조’로 복원해 본당은 시민 생활오케스트라 공연·연습실로, 한옥부분은 마을카페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서울시 우수건축자산 가운데는 고등학교 체육관, 강당 등도 있다.
2020년 서울시 우수건축자산 제7호로 등록된 종로구 자하문로 28가길 9 일대 경복고등학교 체육관은 1960년대 노출콘크리트 구조 특성이 잘 남아있어 역사적, 경관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체육관 벽면에 새겨진 운동 관련 부조 역시 1960~70년대에 건축 디자인 유행을 담고 있다. 부조는 돌이나 나무 등 평면 재료를 깎거나 파고 붙이는 방법으로 입체감을 통해 표현하는 조각기법이다.
▲ 서울시 우수건축자산 제6호 용산구 원효로 97길 33-4의 선린인터넷고등학교 강당. <서울시> |
용산구 원효로 97길 33-4의 선린인터넷고등학교 강당도 서울시 우수건축자산이다. 이 강당은 1935년대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시설로 3개 동 가운데 1개 동만 남아있다.
선린인터넷고등학교 강당은 붉은벽돌을 쌓아올린 방식과 굴뚝, 환기구멍, 볼록 줄눈 등에서 근대건축의 특징들을 볼 수 있는 건축물로 평가된다.
이밖에도 한국 근대 산업건축물의 전형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대선제분 영등포공장, 가회동 한옥밀집지역에 있는 도시형 한옥인 북촌한옥청, 서울에 건설된 최초의 터널인 사직터널 등도 서울시 우수건축자산이다.
김수근 건축가의 대표적 작품 가운데 하나이자 대학로 붉은벽돌 건물 효시인 공공일호(옛 샘터사옥), 1960년대 교통혼잡 해소를 위해 한국에서 두 번째로 설치된 지하도로인 명동 지하상가, 조선시대 창덕궁과 가로가 일체화된 돈화문로 등도 우수건축자산으로 등록돼 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