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2022년 수소차의 전체 판매량은 2만2786대다. 그 가운데 1만3166대, 그러니까 57%가 현대차의 넥쏘다. 현대차는 사실상 수소차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기업인 셈이다.
또 현대차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수소차 판매에 뛰어든 회사이기도 하다. 현대차의 현대 투싼ix FCEV은 세계 최초로 양산된 수소전기차다.
이런 사실만을 놓고 보면 확실하게 현대차는 수소차 시장의 ‘퍼스트 무버’로 보인다.
하지만 현대차는 정말로 수소차 시장의 퍼스트 무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전적 의미로만 본다면 현대차는 수소차 시장에서 ‘가장 먼저 움직인’ 기업이 맞다. 하지만 진정한 퍼스트 무버란 단순히 빨리 그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사실 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에디슨을 백열전구의 발명가로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기 전부터 이미 수많은 백열전구들이 시장에 나와있었다. 수명이 매우 짧다는 굉장히 확실한 단점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다지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지금의 수소차와 상황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 백열전구의 수명을 40시간으로 늘리고 다른 단점들도 보완한 백열전구의 개선판을 내놓은 것이 바로 토머스 에디슨이다. 우리는 에디슨 이전에 백열전구를 발명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에디슨을 백열전구의 아버지로 기억하고 있다.
더 친숙한 물건을 예시로 들 수도 있다. 스마트폰을 맨 처음 만든 곳은 애플이 아니라 IBM이다. 지금의 스마트폰과 조금 다르긴 하지만, IBM이 최초의 스마트폰을 만들어 낸 연도는 무려 1992년이다.
지금처럼 모바일 인터넷이 자유로운 시대는 아니지만 IBM이 만든 최초의 스마트폰 사이먼에는 전화, 메시지, 이메일, 계산기, 팩스, 게임, 그리고 ‘터치스크린’까지 현대의 스마트폰이 갖추고 있는 대부분의 기능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아이폰으로 스마트폰의 혁신을 이뤄낸 애플을 스마트폰 시장의 퍼스트 무버라고 인식하고 있다. 반면 IBM을 휴대폰 회사로 인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김국태 LG경영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퍼스트 무버를 단지 시장의 선발 진입이라는 타이밍으로만 단정짓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시장을 개척한 것 못지않게 틈새시장에 불과한 초기 시장을 얼마나 의미 있는 규모의 대중시장(Mass Market)으로 키워냈느냐가 실질적으로 더 중요할 수 있으며 최초 진입자의 이점이 반드시 그 시장의 육성이나 지배력 확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현대차가 수소차 시장을 완전히 대중시장으로 성장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현대차가 시장 점유율 1등을 하고 기술력에서도 가장 앞서나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퍼스트 무버가 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현대차는 수소차의 대중화를 이뤄내고 수소차 시장의 진정한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을까?
관건은 제 3세대 수소연료전지의 양산을 얼마나 빨리 이뤄낼 수 있느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
3세대 수소연료전지의 장점으로는 가볍고, 오래가고, 크기가 작고, 형태를 사용처에 따라 달리할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현대차는 3세대 수소연료전지 양산을 시작하면 차량 가격도 일반 전기차 수준으로 낮추고, 출력과 내구성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3세대 수소연료전지의 양산이 원래 계획보다 조금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원래 2023년으로 예정돼있던 3세대 수소연료전지 양산을 2027년까지 늦췄다.
현대차는 좀 더 완벽한 3세대 수소연료전지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어차피 현대차는 일단 후발주자들과 어느 정도 기술격차를 벌려놓은 상황이기 때문에 시간싸움을 하는 것보다 좀 더 제대로 된 물건을 내어놓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3세대 수소연료전지가 출시되고 현대차가 지금 수소차 시장에 제기되고 있는 문제점들을 제거할 수 있다면 수소차의 대중화도 그리 먼 얘기는 아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역시 인프라다.
전기차 충전소에 비해 수소 충전 인프라는 현저히 부족한 상황에 놓여있다. 현대차는 국내 최초로 이동형 수소충전소 운영하는 등 인프라 확충에 힘쓰고 있다.
문제는 인프라 확충과 대중화의 선후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프라가 확충돼야 사람들이 수소차를 탈텐데, 사람들이 아직 수소차를 이용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은 자친 굉장한 낭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살펴보면 결국 중요한 것은 수소차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자체를 바꾸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대차가 직접 나서 “수소차가 정말 좋습니다”고 고객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인용한 LG경영연구원의 보고서에서는 “고객 입장에서 보면 누가 먼저 제품을 출시했든, 누가 시장을 키워냈는지 하는 것은 사실 그다지 중요치 않다”며 “비록 한발 늦게 제품을 내놓더라도 자신들의 현재 삶을 바꿀 만큼 큰 혁신적 가치를 제공받았다면 그 기업을 퍼스트 무버로 기억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수소차가 고객들에게, 인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혁신이란 무엇일까? 전기차와 차별화 될 수 있는 수소차의 강점이란 ‘완전한 친환경 에너지’다.
전기차가 진짜 친환경이 아니라는 얘기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전기차 자체는 친환경 이동수단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 전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소차는 다르다. 수소차는 그 ‘전기를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를 친환경 에너지인 수소에게 맡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소차가 정말로 전기차와 비교해 가치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루빨리 제대로 된 그린수소(수소를 친환경적 방법으로 생산하는 것) 밸류체인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수소차 시장이 그리 비관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수소차 시장에서 현대차의 오래된 경쟁자인 토요타는 수소차를 포기할 것처럼 보였으나 결국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수소차 사업을 끌고가고 있고, 최근에는 BMW가 수소차 시장에 뛰어들겠다는 선언을 했다.
다만 이는 현대차에게는 쫓아오는 후발주자들이 늘어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들이 현대차보다 먼저 수소차를 통한 혁신을 고객들에게 제공한다면 세상은 현대차가 아니라 토요타나 BMW를 수소차의 퍼스트무버로 기억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보면 현대차가 수소차 시장의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한 골든 타임이 시작됐다고 볼 수도 있다.
과연 현대차는,
정의선 회장은 이 골든타임을 어떻게 보내게 될까? 앞으로 현대차의 수소전략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궁금해진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