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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知社知] 영국도 산업혁명 기술자 도망 막지 못했다, 반도체 봉쇄 될까

진국영 jineman@careercare.co.kr 2023-04-03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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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知社知] 영국도 산업혁명 기술자 도망 막지 못했다, 반도체 봉쇄 될까
▲ 반도체 기술에 관한 규제와 장벽이 두터워지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비춰볼 때 규제와 장벽은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손해가 된다.
[비즈니스포스트] 1789년. 영국의 젊은 기술자 새뮤얼 슬레이터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영국에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떠나자니 겁이 났고 남아 있자니 답답했다.

그는 열 살 때부터 방적공장에서 기술을 배운 엔지니어였다. 당시 영국은 기계로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산업혁명이 한창이었다.

그가 태어난 바로 다음 해에 이발사 출신으로 기계에 관심 많던 아크라이트란 인물이 수력으로 돌아가는 방적기를 만들었는데, 슬레이터가 기계 작동법을 익히고 제작법을 깨우친 곳이 바로 수력 방적공장이었다.    

갓 20대에 들어선 숙련공, 머릿속에 든 것 많은 젊은이는 야심만만했다.

기술을 익히고 나니 욕심이 생겼다. 노동자 말고, 자신도 번듯한 공장주가 되고 싶었다. 한낱 노동자로 평생을 지내기에는 갖고 있는 기술이 아까웠다. 독립해 공장을 차리려면 자본이 필요했다. 하지만, 부농이라고는 해도 8남매 자녀 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에게 그렇게 큰 돈은 당연히 없었다. 

방법은 미국으로 떠나는 것이었다. 미국에 가면 기회가 있었다.

1776년 독립한 신생국 미국은 정치적으로는 독립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영국에 종속된 나라였다. 남부 광대한 땅에서 엄청난 양의 면화가 재배됐지만 정작 실 뽑고 천 만드는 재주는 없었다. 미국은 면화를 고스란히 영국에 갖다 바쳤고 영국에서 만든 옷감을 바보같이 비싼 값을 주고 수입해서 쓰는 농업 국가였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렇게 해서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초대 워싱턴 정부의 재무부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은 미국 제조업 육성의 꿈을 꾸었다. 보좌관 텐치 콕스가 산업기밀을 넘기는 사람들에게 거액의 보조금을 주는 체제를 만들었다.

자본가들도 기술을 원한다는 광고를 내곤 했다. 신생 미국이 방직, 방적 기술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슬레이터의 귀에 들어왔다. 

하지만 기술을 갖고 나가려다가 걸리는 날에는 당국의 엄중한 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산업기술을 독점하고 있었던 영국은 기술보호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았다. 기술도면의 해외유출은 물론 기술자의 해외 이주 자체가 불법이었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선물도 없다. 슬레이터는 결국 위험 감수를 선택하고, 조국 영국을 등졌다. 어수룩한 농부로 위장하고 노동자로 취업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것이라고 이민국을 속여 넘기고 대서양을 건넜다.

물론 그의 머리 속에는 당시 첨단기술 방적기의 설계도면이 담겨 있었다.

미국 제조업의 아버지, 미국 근대 자동화 공장의 초석을 놓은 미국 산업혁명의 개척자로 칭송 받는 새뮤얼 슬레이터가 바로 그다.

슬레이터는 머릿속에 담아 온 설계도를 되살려 1790년 미국 로드아일랜드에 미국 최초의 근대적 방적 공장을 세웠다.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뒤따랐다. 슬레이터의 공장을 본 뜬 공장들이 미 북동부의 풍부한 물줄기를 따라 퍼져 나갔고 불과 30년 뒤 미국은 영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섬유산업 국가가 되었다.

슬레이터는 미국 기계산업의 영웅이다. 미국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은 1833년 슬레이터의 공장을 방문하여 '미국 제조업의 아버지' 라고 헌사했다.

영국의 입장은 당연히 달랐다. 슬레이터는 자기 이익을 위해 첨단 핵심기술을 해외로 그것도 얼마 전 전쟁까지 벌인 적성국에 빼돌린 도둑이고 범죄자였다.  '조국 영국을 등진 배신자'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하지만 이미 흘러가 버린 기술을 되찾아 올 방법은 없었다. 

◆ 도버해협 너머 대륙으로 향한 영국 기술자

영국 입장에서 슬레이터와 같은 사람이 한 명으로 그쳤으면 그나마 다행이었겠는데, 그런 사람들은 또 있었다. 이번 목적지는 유럽 대륙이었다. 윌리엄 코커릴, 그 역시 영국 출신의 엔지니어였다.

뛰어난 엔지니어로 주목 받았던 코커릴은 일찌감치 영국 밖으로 샜다. 러시아 예카테리나2세의 초빙을 받아 러시아로 떠났던 그는 황제 사후 처지가 어려워지자 스웨덴 운하기술자 등을 거쳐 떠돌았다. 세월은 흐르고 있었지만 엔지니어로서의 꿈은 요원했다. 결국 그도 모험을 선택했다. 

잠시 영국으로 돌아 가려는 시도를 안 했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 귀국을 포기한 그는 1799년 당시 프랑스령이었던 벨기에 리에주 근처 베르비에로 이주했다.

그 곳에서 그는 대륙 최초의 양모 방적 및 카딩(Carding) 공장을 세웠고, 1807년에는 영국에서 불러 들인 세 아들과 함께 당시까지 영국이 독점하고 있었던 방적, 방직 기계를 만들어 냈다.

오늘날 벨기에의 대표적 철강 금속 엔지니어링 업체로, 성능 좋은 저반동 전차 포탑 생산업체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존코커릴이 바로 그 회사다. 존 코커릴은 윌리엄이 불러 들인 세 아들 중 막내 아들의 이름이다.

회사는 벨기에의 풍부한 석탄자원과 맞물리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윌리엄과 존 코커릴 부자는 영국에 갇혀 있던 산업혁명이 도버해협 건너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전체로 퍼져 나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역사적 기여자로 기억됐다.

업적을 치하하며 1807년 나폴레옹이 수여한 프랑스 최고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은 윌리엄 코커릴은 1810년 귀화해 프랑스인으로 남았다. 

슬레이터 배신과 코커릴의 변신은 영국엔 매우 뼈아팠다. 18-19세기 면방직 기술은 '해가 지지 않는 그레이트 브리튼'을 가능하게 하는 물적기반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 그레이트 브리튼을 가능케 한 영국 면방직산업

애초 영국에게 면 직물의 우수성을 가르쳐 준 것은 다름 아닌 인도였다. 그런데 인도에서 들여 온 값 싸고 품질 좋은 '캘리코 면'이 전통적 모직산업을 위협하자 영국은 처음엔 인도산 면직물 수입금지로 대응하다가 대세를 거스릴 수 없다고 판단되자 1736년 수입을 자유화하고 기계화로 방향을 틀었다. 

혁신은 실을 뽑는 방적기부터였다. 1764년 8가닥 실을 한꺼번에 짜내는 제니 방적기가 나왔고 1768년에는 수력방적기, 1779년에는 제니방적기와 수력방적기의 장점을 합한 뮬방적기가 등장했다.

결정적 장면은 1785년에 나왔다. 목사 출신 카트라이트가 방직기에 증기기관을 달아 돌리는데 성공했다. 수력 때문에 물가에만 지을 수 있었던 기계가 도시로 이동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기계화의 힘은 놀라웠다. 증기 방적기의 생산성은 숙련된 인도 장인의 무려 370배에 달했다. 영국은 인도와 식민지 미국에서 값싼 면화를 대량으로 들여와 이를 맨체스터에 밀집해 있던 면방직 공장에서 면직물로 가공한 후 다시 이를 전 세계로 내보냈다.

전 세계는 더 값 싸고 더 품질 좋은 영국 면직물의 소비시장이 되었다. 수천 년 내려 오던 인도의 면직공업이 붕괴했고, 영국은 19세기 세계 산업 생산의 50%를 차지하는 세계의 공장이 되었다. 

국부의 원천인 기술을 영국이 애지중지한 것은 당연했다. 대내적으로는 특허법을 시행해 발명가들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숙련 기술자들의 해외여행과 이주까지 금지해 가면서 기술이 해외로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틀어막았다. 영국 해군은 해외로 나가는 배에 기술자가 타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오면 배를 나포해 수색까지 했다.

그러나 결국 규제는 영국의 고민을 해결해 주진 못했다. 제도와 규제는 일정 기간 영국의 기술독점을 가능하게 하긴 했지만, 특허권과 특허권자를 피해 다른 나라에서 야망을 실현하고 영웅이 되려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슬레이터의 배신과 코커릴의 모험은 결국 전 세계적 영국 기술지배 구조에 틈새를 벌렸고, 한번 벌어진 그 틈새는 곧 거대한 균열로 발전했다.

기술을 둘러싼 나라 간의 각축은 산업혁명기 18-19세기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기술전쟁은 소재와 주제를 바꿔 가면서 언제나 계속돼 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가진 자는 무슨 수를 쓰든지 지키려고 하고, 없는 자는 뺏으려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런 시도는 한 때 성공할 수 있을 뿐 결국은 실패로 끝난다는 사실이다. 봉쇄는 한가지쯤은 허점을 갖고 있기 마련이고, 설혹 완전한 봉쇄망을 짠다고 해도 누군가 이해를 달리하는 사람과 집단에 의해 흠집이 나기 마련이다. 

◆ 장벽으로 시장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

2천년대 초반 우리나라 헤드헌팅 회사에는 현 직장에서 경쟁력을 잃은 한국 기술자를 데려 가려는 중국 기업들의 요구가 심심치 않게 접수되곤 했다.

급여에 불만이 있거나, 승진에 누락된 중간 간부급 기술자면 가장 좋았고, 은퇴한 기술자들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현 직장에서라면 절대 받을 수 없을 놓은 연봉과 기대하기에는 너무 멀어져 버린 높은 직위를 내 보이며 중국 기업들은 한국의 기술자를 유혹했다.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중국 기업들의 요구에 응한 한국 헤드헌팅 업체는 더더욱 없었다. 배신자라는 낙인이 기다리고 있었고, 잘못하면 불법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8-19세기 영국에서 그랬듯이 위협은 충분하지 않았다. 낙인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각오를 한 사람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해외 소재 외국 헤드헌팅 업체들에게 규제는 애초 해당 사항이 없었다. 

반도체 기술을 둘러싼 두꺼운 국제 공동장벽이 최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최신 핵심 장비를 경쟁국에 수출하는 것은 당연히 금지고, 이미 있던 기존 공장 장비를 돈을 들여 유지하거나 보수하는 것도 이적행위 중 하나로 취급 받는 모양새다.

'갑 같은 을'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업체 ASML과 그 협력사들이 중국에서 철수해 동남아로 거점을 옮기려고 하고 있고, 중국에 대규모 생산 거점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업체들에게도 1년 유예기간만이 빠듯하게 주어졌다. 

공급망에서 배제된 중국의 반도체 기업 5700여 개가 폐업했다고 하니 규제와 제재 효과는 우선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언젠가 한번 쯤 봤던 이 데자뷰적 시도가 끝내 성공할 수 있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1806년 나폴레옹은 영국과의 무역을 금지해 영국을 부채와 인플레로 몰락시키려 시도했지만 봉쇄는 프랑스 경제 자체에 큰 해를 끼쳤을 뿐만 아니라, 봉쇄로 인한 피해를 견딜 수 없었던 동맹국들의 이반으로 이어져 되려 프랑스를 고립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영국의 기술자 해외출국 제한 조치는 결국 1825년 종료됐다. 기술자 출국제한이 기술유출을 막기는 커녕 오히려 타국으로의 이주를 꿈꾸는 열망만을 키웠을 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개척을 제한하는 방해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점차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기술을 봉쇄해 제국의 영화를 영원히 지키려 했던 영국의 뒤는 1차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통일제국의 지도력 아래 전기 광학 화학 등에서 제2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나선 독일이 맡았다.   

튼튼하고 높게 장벽을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 쪽 피해는 전혀 없이 상대만 지속적으로 힘들게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2020년 한국 반도체 산업에 치명상을 입히려 했던 일본의 시도가 그랬듯이 말이다. 만약 갖고 있는 에너지가 있다면 봉쇄와 장벽에 쓰기보다는 장벽 너머 새로운 땅을 찾고 개척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맞다. 진국영 커리어케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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