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SK하이닉스가 많은 공을 들인 낸드플래시 사업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업황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는 탓이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은 어려운 시기에 초고적층 낸드 개발 등에 필요한 기술력을 축적해 업황 반등기를 기다릴 것으로 보인다.
▲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사진)은 업황 악화기에 초고적층 낸드 개발 등 기술력을 축적해 업황 반등기에 대비할 것으로 보인다.
20일 반도체업계와 증권업계에 따르면 메모리반도체 업황 침체가 지속됨에 따라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메모리반도체업체들의 1분기 실적이 예상보다 더 나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는 사업구조에서 메모리반도체 비중이 절대적인 만큼 경쟁사인 삼성전자보다 많은 타격을 입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비메모리반도체 사업이 메모리반도체보다는 선방하고 있는 데다 모바일, 디스플레이, 가전 사업이 반도체 쪽 부진을 상쇄하는 측면도 있다.
김광진 한화증권 연구원은 “당초 예상보다 서버·모바일 주요 고객사들의 재고 축소 기조가 1분기 내내 강하게 유지되며 전분기보다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더욱 부진하다”며 “D램과 낸드 출하량 모두 기존 전망치를 밑돌 것”이라고 바라봤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반도체 불황이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특히 낸드 사업에 대한 고민이 더 깊을 것으로 보인다.
같은 메모리반도체라 하더라도 D램은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와 마이크론과 함께 3자 과점체제를 확실히 형성하고 있는 시장이다. 반면 낸드는 6개 주요 사업자들이 경쟁하고 있는 시장인 만큼 과점체제가 공고하지 않고 그만큼 시장 예측 가능성도 적다.
더구나 낸드 시장에서는 선두 사업자인 삼성전자가 감산에 동참할 유인이 D램 시장에서보다 더 적은 것으로 분석된다.
위민복 대신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D램에서는 직접적 감산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지만 낸드에서는 감산을 할 가능성이 낮다”며 “낸드 시장에 6개 업체가 존재해 중장기적으로 기존 경쟁자의 퇴출과 통합이 이뤄져야 안정적 수익 증대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하면 SK하이닉스는 당분간 낸드 사업에서 실적 침체와 함께 시장 지배력도 일정 부분 상실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낸드 사업에서 실적과 점유율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낸드 부문에서 매출 17억5570만 달러를 낸 것으로 집계됐다. 직전분기보다 30.9%나 줄어든 수치다. 지난해 4분기 시장 점유율은 17.1%로 직전 분기(18.5%)보다 1.4%포인트 축소됐다.
반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매출 증감률(직전 분기 대비)은 –19.1%로 SK하이닉스보다 양호했다.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3분기 31.4%에서 33.8%로 오히려 늘어났다. 무감산 기조가 점유율 확대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트렌드포스는 “대부분 낸드 업체들이 감산에 나서고 있음에도 삼성전자가 자본지출을 유지하고 막대한 연구개발 투자를 진행하는 것은 이 시기에 기술과 생산 능력 측면에서 더 많은 이점을 누리기 위한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이 업체는 “SK하이닉스와 키옥시아, 마이크론, 웨스턴디지털 등 낸드 업체들이 감산에 나서고 있지만 불행히도 1분기는 전통적으로 고객 구매력이 낮은 시기인 만큼 주문량 증가는 제한될 것”이라며 “낸드 매출은 1분기에도 계속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SK하이닉스에서 낸드 사업은 ‘아픈 손가락’처럼 여겨진다. SK하이닉스는 2022년 초 인텔의 낸드 사업부를 인수 작업을 완료해 솔리다임을 출범시키는 등 낸드 사업에 많은 공을 들여왔지만 좀처럼 성과가 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솔리다임에서 영업외손실 1조3444억 원을 냈다. SK하이닉스는 감사보고서를 통해 “솔리다임 현금창출 단위에서 미래 경제적 효익의 창출에 기여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자산의 장부가액 1조3444억 원을 ‘기타영업외비용’으로 인식했다”고 설명했다.
자체 낸드 사업의 부진과 더불어 솔리다임이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셈이다.
곽노정 사장은 이런 고난의 시기에 낸드 기술력을 축적하며 다음 업황 회복기를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낸드 적층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는 것도 향후 기술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의 일환으로 여겨진다.
낸드는 단수가 높아질수록 같은 공간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 양이 늘어나 성능과 생산 효율이 높아진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현재 낸드 적층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지난해 8월 반도체 업계 최초로 238단 낸드 개발에 성공했고 올해 중 양산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가 개발한 238단 낸드는 단수가 높아진 것은 물론 세계 최소 사이즈로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이전 세대인 176단 낸드와 비교해 생산성이 34% 높다. 단위면적당 용량이 커진 칩이 웨이퍼 당 더 많은 개수로 생산되기 때문이다.
특히 적층기술 확보는 향후 전망이 밝은 기업용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에서 빛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용 SSD는 스마트폰이나 PC 등에 적용되는 소비자용 SSD와 달리 메모리 용량이 큰 서버에 탑재되는 만큼 낸드 성능 개선 효과가 더 분명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곽노정 사장은 낸드 단수가 올라갈수록 마주칠 여러 기술적 도전들에 대한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 데도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곽 사장은 지난해 10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24회 반도체대전(SEDEX2022)’ 기조연설에서 “현재 낸드는 238단까지 적층해 잘 올라가고 있지만 400단까지도 이렇게 갈 수 있는가란 고민을 하고 있다”며 “가급적 층수는 쌓되 높이는 낮추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