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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레시피] 아카데미 작품상이 놓친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이니셰린의 밴시'

이현경 muninare@empas.com 2023-03-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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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레시피] 아카데미 작품상이 놓친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이니셰린의 밴시'
▲ 아카데미가 놓친 영화도 돌아보자.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스틸 이미지.
얼마 전,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다. 한국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한 관심은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을 휩쓴 2020년이 가장 뜨거웠을 것이다.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았다고 하면 한 번 더 주의 깊게 보는 정도가 일반 관객들의 반응이다. 그렇다 보니 수상하지 못한 좋은 작품은 소리 소문 없이 개봉되었다가 종영되곤 한다.

오늘은 아카데미의 가장 중요한 상인 작품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 실패한 영화 두 편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하나는 올해 작품상 후보에 오른 '이니셰린의 밴시'(마틴 맥도나, 2022)이고 다른 하나는 2017년 후보작 '맨체스터 바이 더 씨'(케네스 로너건, 2016)이다.
 
대중성은 없는 편이라고 미리 알리고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10년 동안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들 중 베스트 5 안에 꼽고 있는 두 편이다.

이 글을 쓰면서 둘 다 지독히 외로운 남자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언뜻 보면 좀 심심한 영화라는 점도 비슷하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보스턴에서 건물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 리(케시 애플렉)가 갑작스런 형의 임종 소식을 듣고 고향인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돌아가면서 시작된다. 리가 형의 장례를 준비하고 장례식을 마치기까지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이 그려진다.

리는 장례 업체를 알아보면서 혼자 남은 조카 패트릭을 돌본다. 그러던 중 형이 유언장에 자신을 패트릭의 후견인으로 지정했다는 사실을 알고 당혹스러워 한다. 리는 자신은 고향으로 돌아올 수도 없고 조카의 후견인이 될 수도 없다고 변호사에게 말한다.

모든 건 리가 저지른 과거의 실수 때문이다. 실수였지만 그 일로 리는 아이들을 잃었다. 이후 리는 자기혐오와 자학 속에 살아가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끔찍한 것일지 짐작해 보게 된다.

한 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이 파괴된 삶을 살게 된 사람이 느끼는 고통은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영화는 리와 패트릭이 형이 남긴 배에서 낚시를 하면서 끝이 난다.

장례식 직전 이 영화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장면이 무심하게 지나간다. 땅이 얼어 바로 매장을 할 수 없게 되자 리는 예정보다 오래 고향에 머물게 되고 동네에서 허드렛일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리는 우연히 아버지의 옛 지인을 만나게 되고 배관을 고쳐주면서 짧은 대화를 나눈다. 아버지 지인이 들려준 이야기는 이 영화의 주제이며, 리에 대한 위로이고, 자신의 실수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에 대한 용서를 담고 있다. 

아버지 지인은 형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면서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들려준다. 자신의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죽었는데 아무 전조도 없이 어느 날 그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참치 배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여느 날처럼 출항을 했는데 날씨도 괜찮았고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돌아오지 못했다. 무전도 구조신호도 없이 그냥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뜬 것이다.

아마 영화를 보면서 짧게 지나가는 이 대화가 인상 깊게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감독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처럼 우리의 삶에는 불가항력적인 면이 있고 거기에 자신의 실수를 되짚어 본다고 한들 의미가 없다는 걸 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리가 이 말 뜻을 이해할 때 그는 자학과 죄책감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CINE 레시피] 아카데미 작품상이 놓친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이니셰린의 밴시'
▲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 스틸 이미지. 
'이니셰린의 밴시'는 제목이 좀 어렵다. 비영어권에 사는 우리에겐 도무지 짐작이 가질 않는 제목이다. ‘이니셰린’은 영화 속 지명이고 ‘밴시’는 아일랜드에서 죽음을 예고하는 귀신을 지칭한다. 제목처럼 영화 내용도 상징적이고 신화적이다.

1923년, 아일랜드의 외딴 섬 이니셰린은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이곳에 사는 파우릭(콜린 파렐)은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나이 차이는 있지만 소울 메이트 콜름(브렌단 글리슨)이 절교 선언을 한 것이다.

매일 오후 2시면 마을에 하나뿐인 술집에서 콜름을 만나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인 파우릭은 하루아침에 태도가 돌변한 콜름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냥 네가 싫어졌다는 콜름이 댄 이유도 믿을 수가 없고, 콜름을 만나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을지 상상할 수도 없을 뿐이다.
 
과거 음악가로 명성을 얻었던 콜름은 매일 시시껄렁한 수다나 떨면서 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파우릭과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졌다. 파우릭과 지금처럼 시간을 보내다가는 좋은 곡을 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콜름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 하는 파우릭은 콜름의 절교 선언을 일시적 변덕으로 생각하고 그의 마음을 돌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콜름은 파우릭에게 앞으로 자신을 귀찮게 하거나 괴롭히면 그때마다 자신의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겠다며 불같이 화를 낸다.

콜름에 대한 파우릭의 집착과 콜름의 무모할 정도의 결단과 실천에서 비롯되는 갈등이 이니셰린의 밴시의 플롯이다. 콜름과 멀어지고 유일한 가족인 여동생마저 더블린으로 떠나자 파우릭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남자가 되어버린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한 편의 우화로 보면 여러 의미를 끌어낼 수 있다. 가령, 바다 저편 아일랜드 본토에서 들려오는 총성과 하늘로 치솟는 화염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내란 상황을 알려준다.

보통 내란은 외부에서 보면 저럴 필요가 있을까, 결국 서로를 소모하는 무모한 일인데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파우릭과 콜름의 대결에서 우리는 그런 느낌을 갖게 된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무거운 분위기와 달리 '이니셰린의 밴시'는 블랙 코미디 성격을 띤다. 이는 마틴 맥도나 감독의 전작들에서도 발견되는 특징이다. 참 독특하고 기발한 유머 코드 때문에 심각한 이야기임에도 중간 중간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마틴 맥도나 감독은 영국에서 촉망받는 희곡 작가로 활약하다 '킬러들의 도시'(2009)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된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그의 첫 작품 '킬러들의 도시'와 마치 한 쌍처럼 보인다.

임무 수행 중 실수를 저지른 킬러 레이(콜린 파렐)는 동료 켄(브렌단 글리슨)과 브뤼셀로 여행을 떠난다. 실수를 저지른 요원을 제거하는 게 규칙인 조직에서 주는 마지막 휴가인 것이다. 출연 배우도 같고 두 남자의 버디 무비라는 점도 같다. 그리고 아일랜드와 브뤼셀의 멋진 풍광을 십분 담아내는 연출 방식도 동일하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와 '이니셰린의 밴시'는 밋밋하고 심심한데 관객을 통곡하게 만드는 지점을 갖고 있는 영화들이다. 좋은 영화의 기준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관객에게 통곡할 기회를 주는 영화는 분명 좋은 영화라고 믿는다. 이현경 영화평론가/영화감독 
 
영화평론가이자 영화감독.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으로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영화와 인문학 강의를 해오고 있다. 평론집 '영화, 내 맘대로 봐도 괜찮을까?'와 '봉준호 코드', '한국영화감독1',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등의 공저가 있다. 단편영화 '행복엄마의 오디세이'(2013), '어른들은 묵묵부답'(2017), '꿈 그리고 뉘앙스'(2021)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영화에 대해 쓰는 일과 영화를 만드는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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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ㅂㅋ
이니셰린의 밴시는 명배우 총출동이란 점에서도 볼만한 가치가 있는듯. 혹시 보실 분들을 위해 말해보자면 처음엔 아일랜드 시골처럼 지루하지만 끝으로 갈수록 눈을 크게 뜨게 됩니다.   (2023-03-20 08:5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