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전까지 소비자들 사이에서 노 사장의 이미지는 그리 좋지 못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긱벤치 퇴출로 이어졌던 GOS(게임 최적화 서비스) 논란, 지나친 원가 절감 정책 등의 ‘원흉’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뛰어난 성능을 지닌 갤럭시북3 프로 공개 이후 노 사장의 이미지는 180도 달라졌다. 위에 언급했던 ‘노태북’에 더해 인터넷에서 노 사장을 ‘갓태문(신(God)+노태문)’, ‘빛태문’ 등으로 부르는 사람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조선 역대 국왕의 암기법인 ‘태정태세문단세’를 활용해 ‘태정태세노태문단세’라는 유행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한 누리꾼이 올린 ‘갤럭시북3 노태문 리미티드 에디션’ 이미지 역시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이 이미지는 LG전자의 그램 스타일 뉴진스 에디션을 흉내내 갤럭시북3 프로에 노 사장의 얼굴을 합성해 만든 것으로,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이 에디션을 실제로 삼성전자가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누리꾼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 일론 머스크에서 리사 수까지, 인터넷 속 최고경영자 밈의 역사
지금까지 인터넷에서 밈의 소재가 되는 최고경영자는 대부분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였다. 혹시 발생할지도 모르는 명예훼손 등의 법적인 문제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울 뿐 아니라, 스타성이 있는 최고경영자가 한국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 인물은 역시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크스다. 특히 일론 머스크는 본인이 기행과 트윗 등을 통해 끊임없이 밈의 소재를 제공해주는 탓에 인터넷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최고경영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와 강아지(도지 코인)을 합성한 사진. 머스크 최고경영자는 인터넷 세상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최고경영자다.
국내 유튜브 채널인 ‘나몰라패밀리 핫쇼’에서 일론 머스크의 사진을 걸고 한국어로 “화성 갈끄니까~”라고 말하는 영상이 굉장한 이기를 끌기도 했다.
AMD의 최고경영자, 리사 수 역시 국내 누리꾼들에게는 굉장히 친숙한 경영자다.
리사 수는 인텔이 독점하고 있던 CPU 시장에 AMD가 파고들 수 있게 만들었던 일등 공신으로 평가받는데, 인터넷에서는 리사 수라는 본명보다 ‘빛사 수’, ‘갓사 수’ 등의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린다. 친근함을 담아 ‘리사 수 누나’라고 부르는 누리꾼도 굉장히 많다.
특히 리사 수의 이름이 스타크래프트 게임 속 유닛인 광전사(질럿)의 대사, ‘Issah'tu(이사아-투)’와 비슷하게 들린다는 데서 착안해 리사 수의 이름이 게시물에 언급되면 댓글에 ‘아름다울 미’를 언급하는 소위 ‘댓글 놀이’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광전사의 다른 대사인 '명예가 나를 이끈다(Honor guide me)'가 한국어로 아름다울 미처럼 들린다는 데서 나온 밈이다.
◆ 인터넷 밈이 된 최고경영자들, 기업의 이미지 전환에도 활용된다
이런 현상을 단순히 누리꾼들의 재밌는 놀이 문화 정도로 치부하기에는 기업의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크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한때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삿대질을 하고 있는 사진에 '너 고소'라는 자막을 입혀놓은 짤방(인터넷 게시글에 첨부되는 이미지 파일)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이 이미지의 유행은 애플이 고소를 남발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는 데 커다란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노태문 사장이 밈의 소재로 활용된 것이 갤럭시북3 프로의 인기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갤럭시북3 프로가 노트북과 관련이 없는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까지 커다란 화제가 된 데에는 처음에 언급했던 '노태북' 이미지의 힘이 컸다.
▲ 글로벌 반도체 기업 AMD는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의 사진을 모아놓은 '리사 수 갤러리'를 공식 홈페이지에서 운영하고 있다. < AMD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기업이 직접 최고경영자의 인기를 홍보에 활용한 사례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AMD가 그 주인공이다.
리사 수 최고경영자는 언제 어디서 사진을 찍더라도 항상 똑같은 미소를 짓는 것으로 세계 누리꾼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한데, AMD는 이를 활용해 공식 홈페이지에 리사 수 최고경영자의 사진을 모아놓은 '리사 수 갤러리' 메뉴를 만들어 홍보에 활용하고 있다.
이경렬 한양대학교 교수는 이와 관련해 'CEO 이미지의 브랜드적 가치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CEO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가운데 일부는 기업 가치와 회사에 대한 태도 모두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PR 실무자들은 CEO의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CEO의 이미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분석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