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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혹한기' 명암 갈리는 유통기업, 뱃머리 돌린 곳은 활로 찾았다

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 2023-01-25 15: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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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혹한기' 명암 갈리는 유통기업, 뱃머리 돌린 곳은 활로 찾았다
▲ 유통분야 주요 기업들의 명암이 갈리고 있다. 이익을 내는 회사와 그렇지 못한 회사 사이의 옥석 가리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다.
[비즈니스포스트] 유통분야 주요 기업들의 명암이 갈리고 있다.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등 외부 위기를 미리 감지한 기업은 일찌감치 사업전략을 수정해 안정적인 기조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반면 그렇지 않은 기업은 오래 준비했던 계획을 철회하거나 심지어 회사 존폐마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2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유통기업에 대한 투자업계의 옥석가리기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해당 기업이 '이익을 내는 회사'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보고(VOGO)'를 운영하는 보고플레이는 파산 직전 상태에 몰렸다. 

류승태 보고플레이 대표이사는 22일 보고 앱(애플리케이션)에 '서비스 일시 중단 관련 사과문'을 올리고 "저희는 현재 서비스 정상화를 위해 채권단 협의와 신규 자금 확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며 "상황이 개선되는 대로 약 한 달 안에 서비스를 정상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류 대표는 19일 서울 모처에서 입접업체를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고 사실상 회사를 살려달라고 읍소하기도 했다. 그는 입점업체의 80% 이상이 보고플레이의 정상화 작업에 동참하겠다는 동의서를 제출해주면 이를 바탕으로 새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플레이는 삼성전자 사내벤처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2019년 10월 독립법인으로 출범한 회사다. '즐거운 쇼핑공간을 만들자'라는 비전 아래 구매 금액의 최대 100%를 포인트로 돌려주는 서비스 등을 선보이며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보고'를 키웠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은 결국 보고플레이의 발목을 잡았다.

류 대표가 간담회에서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22년 말 기준으로 보고플레이가 보유한 부채는 526억 원이며 입점사 615곳에 정산하지 못한 판매 대금은 336억 원이다. 소비자에게 적립해준 포인트도 12억 원 규모나 된다.

입점업체들이 동의하지 않는 이상 보고플레이가 파산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투자금융업계의 시각이다.

보고플레이는 지난해 5월 CJ대한통운, 포스코기술투자, 중소기업은행, SK증권 등 모두 7개 회사로부터 110억 원의 시리즈A(기업공개 전 투자단계) 투자를 받았지만 이 자금을 대부분 소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플레이의 파산 위기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몇몇 유통기업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무관하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는 컬리다.

컬리는 지난해 상반기부터 준비해온 기업공개 절차를 1월 초에 중단했다. 신선식품 새벽배송 시장을 개척한 회사지만 창립 이후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한 탓에 기업가치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컬리가 2021년 한 사모펀드에서 투자를 유치할 때 인정받았던 기업가치는 4조 원이 넘었지만 최근에는 눈높이가 1조 원대까지 떨어졌다.

컬리는 시장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상장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수익성을 개선하기 전까지는 기업공개 시점을 기약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회 당일배송 플랫폼 '오늘회'를 운영해온 오늘식탁도 마찬가지다.

오늘식탁 역시 투자받은 자금을 마케팅에 쏟아부으며 거래액을 늘리는 데 집중하다가 보유 현금을 모두 소진한 탓에 지난해 상반기부터 자금난에 직면했다. 급기야 지난해 9월 서비스를 급하게 중단했고 곧이어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까지 받으며 살 길 찾기에 나섰다.

오늘식탁은 최근 일부 서비스를 19일부터 재개하겠다고 공지했지만 여전히 결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25일 현재 '설 이후에 만나요'라는 공지만 뜰 뿐 서비스 이용이 불가능한 상태다.

배달시장의 호황에 힘입어 급성장했던 메쉬코리아도 현재 매각 절차를 밟는 중이다.

메쉬코리아는 퀵커머스 플랫폼인 '부릉'을 운영해온 회사다. 새벽배송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다가 적자 규모가 커졌고 창업자 개인 지분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자금까지 조달했지만 추가 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은 탓에 현재는 매물로 나와 있는 상태다.
 
'투자 혹한기' 명암 갈리는 유통기업, 뱃머리 돌린 곳은 활로 찾았다
▲ 서울 시내의 한 아파트에서 택배기사가 물품을 배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의 공통점은 수익성보다 성장성에 방점을 뒀다는 데 있다.

우선 거래액을 키우기 위해 자금을 쏟아붓고 자금이 떨어질 때쯤 다시 추가로 투자자를 모아 계속 사업을 확장해왔던 것이 이들의 전략이었다.

2021년까지만 해도 이런 전략은 먹혔다. 1%대의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시장에 유동성이 넘쳤고 갈 곳 없는 돈들이 스타트업계로 모여들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인플레이션이 가속화하면서 금리가 빠른 속도로 높아지자 '유동성 호황'은 모두 옛말이 됐다. 투자자들은 재빨리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고 성장성이 높은 회사라도 이익을 내지 못하면 추가 투자를 꺼리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만년 적자를 내던 사업자들이 더 이상 돈 구할 곳을 찾지 못하면서 결국 문을 닫거나 전략을 전면 수정하는 회사가 많아지고 있다.

반면 이런 위기를 일찌감치 감지한 회사들은 현재도 순항하고 있다.

쏘카가 대표적이다. 쏘카는 차량공유 사업을 하는 회사로 2011년 11월 설립된 뒤 적자만 내다가 2020년 4분기에서야 처음으로 흑자를 봤다. 2021년 3분기에도 두 번째 분기 기준 흑자를 냈지만 연간 기준으로는 여전히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랬던 쏘카가 지난해에는 창사 이후 처음으로 연간 흑자전환을 바라보고 있다. 2022년 2~3분기에 연속으로 흑자를 냈는데 4분기에도 흑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쏘카의 흑자전환에는 박재욱 대표의 공이 크다.

박 대표는 9일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미국시장에서 급격한 변화가 먼저 감지되기 시작했고 저희 회사도 3-4월부터 이런 낌새를 바탕으로 전면적인 사업계획의 수정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며 "하지만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시장에서는 충격이 크게 감지되지 않았고 (2022년) 1월에 발표한 사업계획을 큰 폭으로 수정한다는 것에 대해 내부 구성원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그는 "그럼에도 충격은 무조건 한국시장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빠른 속도로 사업계획을 수정했고 모든 사업계획은 2022년부터 영업이익을 낼 수 있는 기업의 모습을 갖추는데 초점을 맞췄다"며 "사업 계획 수정에 대한 내부 우려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밀고나가야 했는데 지금 와서 돌아보건데 그 때 빠르게 사업계획을 수정하고 뱃머리를 돌린 것이 회사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아주 중요한 의사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신선식품 새벽배송 기업 오아시스는 애초 불안 요인을 키우지 않은 회사로 유명하다.

오아시스는 지난해 말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한지 2주도 지나지 않은 12일 한국거래소에 상장신고서를 제출했다. 오아시스 계획대로라면 2월에 코스닥 상장사가 되는데 '이커머스 1호 상장기업'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오아시스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상장에 다가설 수 있었던 배경은 새벽배송으로 유일하게 흑자를 낸 기업이기 때문이다.

새벽배송 시장은 쿠팡을 제외하면 대부분 적자에 허덕이는 시장이다. 지난해 롯데그룹과 같은 대기업도 새벽배송에서 철수했을 정도다. 하지만 오아시스는 그 업체들 가운데 유일하게 흑자 기조를 유지해왔다.

이는 투자 혹한기에도 불구하고 오아시스가 스스로 기업가치 '1조 원대'를 책정하며 상장에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보다 앞서 수익성 개선으로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체질을 만들어낸 회사도 있다. 바로 쿠팡이다.

쿠팡은 2021년까지만 해도 만년 적자기업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다녔다. 누적 적자만 6조 원가량이라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말까지 들었다.

하지만 지난해 초 수익성 반등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이후 지속적인 수익성 개선 모습을 보였고 급기야 지난해 3분기에는 사상 첫 분기 흑자전환이라는 성과도 얻었다.

쿠팡의 흑자전환은 '계획된 적자'로 얻어낸 규모의 경제 효과와 더불어 비효율적인 신사업 투자 축소 등 다양한 노력의 결과물로 여겨진다. 남희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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