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인텔과 대만 TSMC가 잇따라 독일에 대규모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건설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인텔이 독일에 건설을 계획하고 있는 반도체공장 예상 조감도. |
[비즈니스포스트] 독일이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시장의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인텔이 170억 유로(약 23조 원) 규모의 공장 건설을 발표한 데 이어 대만 TSMC도 대규모 투자를 추진한다.
유럽연합이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을 목표로 미국 정부를 뒤따라 반도체기업의 생산 투자에 강력한 지원을 검토하면서 인텔과 TSMC가 시장 지배력을 강화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18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인텔은 현지 반도체공장 건설 계획에 큰 기대를 걸고 독일 정부와 금전적 지원에 관련해 활발히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케이반 에스파자니 인텔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이런 내용을 언급하며 투자 진행 절차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고 밝혔다.
인텔이 이런 입장을 내놓은 것은 최근 독일언론에서 인텔이 현지 반도체공장 투자를 늦추거나 규모를 예정보다 축소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온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반도체업황 불안과 인플레이션, 경기침체 등 거시경제 상황 악화에도 인텔의 독일 반도체공장 건설 계획에는 차질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인텔의 독일 반도체공장 건설은 초기 투자 비용만 170억 달러에 이르는 대형 프로젝트다. 폴크스바겐 등 현지 자동차기업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주요 고객사로 자리잡게 될 공산이 크다.
TSMC도 유럽에 첫 반도체 파운드리공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하며 독일을 최우선 후보로 검토하고 있다.
대만 디지타임스가 부품 공급망에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TSMC 주요 경영진은 이미 독일을 여러 차례 방문해 현지 관계자와 공장 건설 계획에 관련해 논의했다.
TSMC는 12일 개최한 콘퍼런스콜을 통해 “유럽에서 자동차 관련 고객사의 수요, 정부 지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른 시일에 TSMC의 유럽 내 반도체공장 건설이 구체화될 것이라는 언론 보도 내용을 사실상 시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인텔과 TSMC의 독일 반도체 생산투자가 모두 현실화되면서 독일이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시장에 중요한 생산 거점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두 대형 반도체기업이 독일을 최우선 후보지로 검토하게 된 이유는 현지 인프라 및 고객사 기반 등 지리적 이점과 독일 정부 및 유럽연합의 강력한 지원 의지에 따른 것이다.
TSMC가 투자 후보지로 검토하는 독일 드레스덴은 글로벌파운드리와 보쉬, 인피니온이 각각 운영하는 반도체공장이 위한 곳이다. 반도체 생산을 위한 공급망과 인프라 등이 이미 충분히 갖춰져 있기 때문에 공장 운영에 필요한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인텔이 공장 부지로 선정한 마그데부르크 역시 인프라와 부지 면적, 인력 공급 등 측면에서 유리하고 대도시가 가까운 요충지로 꼽히는 지역이다.
독일은 유럽 자동차 생산의 중심지에 해당하는 만큼 고객사 수요 전망도 밝다. 내연기관 차량 대비 반도체 사용량이 많은 전기차 보급 확대에 속도가 붙으며 현지 반도체 수요는 가파른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연합 및 독일 정부의 금전적 지원도 투자 결정에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유럽연합 소속 국가들은 최근 150억 유로(약 20조 원)을 2030년까지 반도체 투자에 지원하는 ‘유럽 반도체 지원법(ECA)’ 시행에 뜻을 모았다.
미국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세계 반도체기업에 520억 달러의 보조금 제공을 약속하며 삼성전자와 TSMC, 인텔 등의 현지 투자 유치에 성과를 내자 유럽도 대응에 나선 것이다.
유럽 주요 국가들은 유럽에 반도체 자급체제를 구축해 반도체 공급 부족과 같은 사태가 자동차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피하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인텔과 TSMC가 유럽연합의 이런 움직임에 적극 화답하며 보조금 지원을 노려 대규모 투자 계획을 잇따라 내놓은 것이다.
특히 독일 정부는 인텔의 반도체공장 투자 비용 가운데 약 절반을 지원하기로 하며 가장 적극적으로 투자 유치에 나섰다. 이런 노력이 두 대형 반도체기업의 공장 건설 논의로 이어졌다.
인텔과 TSMC가 막대한 지원금을 받아 유럽에 반도체 파운드리공장을 건설한다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반도체 생산을 확대해 유럽 내 고객사 기반과 세계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기회를 얻을것으로 전망된다.
아직 유럽에 파운드리공장 투자 계획을 내놓지 않은 삼성전자가 중장기적으로 TSMC 및 인텔과 점유율 싸움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 국가도 현지에 반도체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와 같은 주요 반도체기업이 유럽 내 신규 공장 건설을 추진하는 사례는 앞으로 늘어날 수 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