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수 포스코 생산기술본부 생산기술전략실장은 콘퍼런스콜에서 “280톤 규모의 대형전기로를 도입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낮추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며 "합탕 등의 방식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합탕은 고로에서 뽑아낸 거친 쇳물(용선)과 전기로에서 생산한 깨끗한 쇳물(용강)을 섞어 전로의 용선 사용량을 줄이는 것을 말한다. 고로에서 생산량을 줄이는 대신 전기로 사용 비중을 높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기로는 고로와 비교해 탄소배출량이 25%에 불과하다.
물론 현재도 전기로를 사용하고 있지만 현재 기술력으로는 고철(철스크랩)을 녹여 철근 등 일부 제강 제품을 생산하는데 그친다. 앞으로는 전기로에서 생산한 용강을 혼합해 사용하면서 전 철강 제품에서 고로 사용량을 줄이겠다는 의미다.
현대제철의 경우 독자적 전기로를 개발해 자동차강판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면서 탄소배출을 줄이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현대제철은 기존 전기로에서 발전해 철 원료를 녹이는 것부터 불순물을 제거하고 성분을 추가하는 기능까지 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전기로(Hy-Arc)’를 통해 자동차강판 등의 고급판재류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국내 전기료 인상에 따라 두 철강사가 전기로에서 수익성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게 됐다. 전기로를 통한 고급판재류 생산은 궁극적 탄소중립 방안인 수소환원제철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수소환원제철은 화석연료 대신에 수소를 사용해 철을 생산하는 기술로 탄소배출이 없다. 현재 세계 주요 철강회사들이 기술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전기로를 활용해 열연 등 판재류를 생산하는 공정은 이미 1989년 미국에서 개발됐지만 고로와 비교해 생산 단가가 높았던 탓에 오랫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다.
생산비용이 높다고 그렇다고 해도 수소환원제철 기술이 개발되기 전에 전기로를 통해서라도 먼저 탄소배출을 줄이지 않는다면 앞으로 수출길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탄소국경세라는 강력한 무역장벽이 형성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유럽연합(EU)은 철강과 시멘트 등 6개 품목을 대상으로 올해 10월부터 탄소배출과 관련해 보고 의무를 부여하는 탄소국경제도 시범기간을 운영한다.
유럽연합이 탄소국경조정제도를 도입하면서 국내에서 고로 조업을 하는 포스코와 현대제철로서는 큰 부담을 안게 됐다.
유럽연합은 2025년까지 제품의 탄소배출량을 당국에 보고하도록 하는 시범운영 기간을 거쳐 2026년부터 정해진 조건을 지키지 못하는 업체는 유럽연합 탄소배출권 시세 수준의 탄소국경조정제도 인증서를 구입해야만 한다. 자국보다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에서 생산, 수입되는 제품에 사실상 관세를 물리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유럽연합에 철강 수출규모는 43억 달러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탄소국경제도 6개 규제 품목 대상 수출품 가운데 가장 크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안그래도 고로에서 전기로로 전환하면 생산 비용이 늘어나는 문제가 있다”며 “그나마 최근에는 친환경 철강제품을 찾고 있는 고객사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위안거리”라고 말했다. 장은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