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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들은 왜 체육협회장이 되려 할까

김희정 기자 mercuryse@businesspost.co.kr 2014-07-11 19:3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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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인들은 왜 체육협회장이 되려 할까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대한체육회는 빙상연맹 등 61개 협회로 구성된다. 이 중 절반이 넘는 협회의 회장은 기업 CEO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양궁협회장을,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핸드볼협회장을 맡는 등 웬만한 대기업 CEO들은 체육협회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기업 CEO들이 처음 체육협회장에 앉은 것은 권력에 의한 것이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당시 권력의 정당성을 스포츠 강국에서 찾으려 하면서 체육협회에 돈을 지원해 주기 위해 기업 오너들을 동원했다.

그 뒤에는 명예가 필요한 기업 CEO와 돈이 필요한 체육협회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기업 CEO들이 체육협회장을 맡는 일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스포츠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체육협회장 자리는 기업 CEO들의 명예욕을 충족하는 자리가 되고 있다.

하지만 기업 CEO에게 체육협회장 자리는 영광의 자리만은 아니다. 이번 월드컵 실패로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한 일처럼 불명예를 뒤집어쓰기도 한다.

◆ 스포츠로 국위선양에 기업인 강제동원

박정희 대통령은 끊임없이 근대화를 외쳤다. 이를 위해 국민의 통합된 힘이 필요했다. 박 대통령은 스포츠가 국민통합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또 독재에 대한 저항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한국의 위상이 높다는 자부심을 심어주려고 했다. 스포츠를 통해 ‘국위선양’을 과시하려고 했다.

박 대통령은 태릉선수촌과 한국체육대학을 지어 ‘엘리트 체육’의 뼈대를 만들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면 퍼레이드를 벌였다.

전두환 대통령은 스포츠를 더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하고 메달을 위해 선수를 육성했다. 권력은 이 과정에서 각종 체육협회장에 기업인을 앉혀 그들의 돈을 스포츠 부흥에 동원했다.

그 결과 탁구협회는 동아그룹 회장, 테니스협회는 삼익주택 회장, 육상연맹은 진로주조사장, 수영협회는 현대건설 사장, 체조협회는 원진무역 회장, 축구협회는 신동아그룹 회장, 농구협회는 코오롱그룹 회장, 배구협회는 동양나일론 사장, 아마복싱연맹은 대우실업 사장, 레슬링협회는 삼성그룹 회장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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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양궁시연을 하고있다.

◆ 정몽구 정의선 부자의 대이은 양궁 지원


양궁은 현대그룹에 맡겨졌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1985년 대한양궁협회장을 맡아 13년 동안 재직했다. 양궁협회장은 잠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가 정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2005년부터 대한양궁협회회장을 맡아 대를 잇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양궁에 지원한 금액은 모두 3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은 대한민국이 세계 양궁계의 리더로 자리매김 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2012 런던올림픽 중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자양궁 단체전 결승에서 한국이 중국을 꺾고 올림픽 7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 순간 선수들이 달려가 포옹한 사람은 정의선 부회장이었다. 그는 선수들을 차례로 껴안고 기쁨을 나눴다.

다음날 모든 신문에 ‘태극전사 뒤 재계 총수 있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현대차의 이미지도 같이 올랐다. 현대차는 양궁대표선수단에게 16억 원의 포상금을 지급했다.

◆ 레슬링 선수였던 이건희의 선택은 레슬링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982년 대한레슬링협회장 자리에 오른 후 1997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 당선돼 물러날 때까지 15년 동안 회장을 역임했다.
 
이 회장 역시 다른 기업 회장들처럼 정부에 의해 강제로 협회장이 됐다. 그러나 레슬링이라는 종목을 선택한 것에 그의 의지가 반영됐다.

이 회장은 12살 때 떠난 일본 유학시절 외로움 속에서 역도산을 흠모했다. 그래서 귀국 후 서울사대부고에 입학해 2년 동안 레슬링 선수로 활약했다. 1959년 전국대회에 웰터급으로 출전해 입상한 경력도 있다.

이 회장은 레슬링협회장을 맡아 세계대회 수상자들에게 종신연금 지급을 약속했고 선수들이 있는 고등학교에 훈련시설을 지원했다. 국가대표 선수단에게 컬러TV도 제공했다. 체육계 인사들은 "당시가 한국 레슬링의 르네상스시대였다"고 입을 모은다.

이 회장은 대한레슬링협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2012년까지 한국 레슬링 대표팀을 후원했다. 30여 년 동안 300억 원을 지원했다.

◆ 최태원의 ‘착한 기업’ 이미지 만들기

우리나라 최초의 핸드볼 전용경기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만들었다.

최 회장은 2008년 대한핸드볼협회장을 맡은 뒤 핸드볼인들의 염원이 전용구장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공사비 434억 원 전부를 부담했다. 그리고 완공된 경기장을 국민체육진흥공단에 기부했다.

SK그룹은 ‘SK 올림픽 핸드볼경기장’ 완공 당시 “국내기업이 스포츠시설을 조성해 사회에 기부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경기장 기부는 기업이 하는 또 다른 형태의 사회공헌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이 핸드볼협회장을 맡은 뒤 선수들 연봉도 높아졌다. 한 핸드볼팀 감독은 “최태원 회장이 협회장이 된 후 핸드볼이 비인기종목에서 인기종목으로 발돋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 회장은 2012년 “청춘을 코트에 바친 선수들이 핸드볼을 그만두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며 해체위기에 몰린 용인시청팀을 인수해 ‘SK루브리컨츠’를 창단했다. 그는 창단식에 직접 참석해 선수들을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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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왼쪽)과 스케이트 이상화 선수

◆ 대국민 사과한 김재열


이건희 회장의 둘째 사위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은 스포츠계 실력자다. 그는 현재 스포츠 관련 직위만 3개를 맡고있다.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과 대한체육회 부회장,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이다.

김 사장은 이번 소치올림픽 단장을 맡아 논란이 됐다. 동계올림픽 선수단장은 지난 20년 동안 스키협회 회장과 빙상연맹 회장이 번갈아 맡아왔다. 이번에 스키협회 차례였으나 삼성그룹과 동아일보를 등에 업은 김 사장이 단장으로 선임됐다. 그러자 스키협회 회장을 맡고있던 윤석민 SBS미디어홀딩스 부회장이 이에 불만을 나타내며 사퇴했다.

이 사건으로 올림픽에 대한 삼성의 집착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업계관계자는 “올림픽 단장은 선수단을 인솔하고 국제스포츠 무대에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김재열 사장을 차기 IOC위원으로 키우기 위해 관례를 무시하는 행동을 했다”고 비판했다.

업계의 비판을 들으며 올림픽 단장이 된 김재열 사장은 빙상연맹을 잘못 운영했다는 이유로 전 국민에게 다시 욕을 먹어야 했다.

소치올림픽에서 쇼트트랙 대표팀의 성적이 부진한 이유로 빙상연맹의 파벌이 논란이 됐다. 파벌싸움 때문에 안현수 선수도 러시아로 귀화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박근혜 대통령까지 빙상연맹을 비판했다.

김 사장은 또 김연아 선수가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은메달을 받은 데 대해 올림픽 단장으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차기 IOC 위원을 노려 몸을 사린다는 비난도 받았다.

김 사장은 결국 소치올림픽 해단식에서 “연맹 회장으로 책임을 느낀다”고 사과를 해야 했다. 그는 또 “빙싱연맹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바로잡고 연맹이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겠다”고 약속했다.

◆ 국정감사장에 불려간 박용성

2012년 당시 대한체육회장을 맡고 있던 박용성 회장은 국정감사에 불려가기도 했다.

당시 여자 프로배구 김연경 선수와 흥국생명이 자유계약(FA) 자격을 놓고 마찰을 빚었다. 김연경 선수는 국내에서 4시즌을 소화한 뒤 팀의 배려로 외국에서 3년간 활동했다. 이에 국제무대의 관행상 자신은 자유계약선수라고 주장한 반면 흥국생명은 국내기준을 내세워 2시즌을 더 소화해야 한다고 맞섰다.

대한체육회는 아마추어 경기단체를 총괄하는 곳으로 엄밀히 얘기하면 김연경 사태는 대한체육회가 관여할 사안이 아니었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당시 박용성 회장을 국정감사에 불러내 사태의 해결을 요구했다. 박 회장은 프로 스포츠의 특수성에 대해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야했다.

박 회장은 “사실상 체육회에 권한이 없지만 사태가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해결책을 찾아보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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