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직원이 라이브 버추얼 시스템을 통해 생산 현장을 원격으로 공유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
[비즈니스포스트]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이 본격화하던 당시 글로벌 제약바이오업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제품 생산을 감독하고 승인해야 할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실사 활동이 마비됐기 때문이다.
가장 빠르게 대책을 내놓은 기업은 삼성바이오로직스였다. 첨단 디지털 기술을 도입해 ‘비대면 실사’ 체계를 완성하고 1만 km 밖에 있는 의료당국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정보를 제공했다. 이를 통해 확보한 세계 최초의 비대면 실사 성공사례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위탁개발생산(CDMO)기업으로서 신뢰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디지털 전환으로 코로나19 위기를 이겨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제 본격적인 친환경 기업으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삼성과 디지털의 결합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에 대해서도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삼성바이오로직스, 디지털로 코로나19 정면돌파
17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코로나19로 글로벌 공급망이 얼어붙은 시기에도 대형 고객사로부터 잇따라 일감을 수주하며 성장세를 이어간 데는 ‘라이브 버추얼 시스템’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라이브 버추얼 시스템은 세계 어디에서든 접속해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을 둘러볼 수 있게 만든 체계다. 기능과 목적만 보면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던 원격회의 시스템과 비슷하다. 하지만 기존 시스템은 영상 등의 기능적인 측면에서 충분한 품질을 제공하지 못했다. 결국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규제기관의 눈높이에 맞게끔 자체 시스템을 개발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20년 6월 라이브 버추얼 시스템 서비스를 시작할 즈음 미국 FDA는 이미 해외 실사를 대부분 중단한 상태였다. 한국바이오협회 자료를 보면 FDA는 2019년 해외 실사 977건을 진행했으나 2020년 3월부터 2020년 10월까지는 고작 3건을 소화했다. 규제기관에게나 기업에게나 실사를 대신할 수단이 절실했다.
다행히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릴리가 맡긴 코로나19 치료제의 생산공정을 FDA로부터 승인받은 것이다. 이는 비대면 실사의 첫 성공사례이기도 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후 라이브 버추얼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승인 실적을 창출하기 시작했다. 서비스 시작부터 지금까지 비대면 실사 184건을 진행했고 성공률 100%를 기록했다. 코로나19에 구애받지 않는 규제 역량은 고객사가 안심하고 제품 생산을 맡기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디지털 혁신’은 단순히 생산현장을 원격으로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은 규제기관뿐 아니라 고객사에도 해당하는 문제였다. 고객사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제품 품질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IT기업 비바(Veeva)와 협력해 기업품질통합시스템(EQUIS)을 개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전자품질관리시스템(EQMS), 전자문서관리시스템(EDMS), 전자교육관리시스템(LMS) 등 기존에 별도로 운영되던 시스템을 통합해 접근성과 효율성을 개선한 것이다.
이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 실무 담당자와 고객사는 장소에 상관없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작성, 검토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고객사가 직접 방문해 승인해야 했던 일부 과정이 디지털 방식으로 간소화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바이오의약품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과 자원이 대폭 줄었다.
제임스 최 삼성바이오로직스 부사장은 지난해 11월 비바의 온라인 서밋에 참가해 “모든 의약품 제조관리기준(GMP) 생명과학기업이 EQMS, EDMS, LMS 등 3개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나 시스템을 통합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며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품질 관리에 필요한 시스템을 완전히 결합할뿐 아니라 고객사에게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든 시스템에 대한 접근을 보장한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설명했다.
이런 디지털 역량은 이제 CDMO기업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기본적인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컨설팅기업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2021년 3월 보고서를 통해 CDMO기업이 코로나19 특수가 종료된 후에도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는 등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진단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는 CDMO기업이 디지털 기술을 통해 종단간(엔드투엔드) 공급망 파악, 장기적 협업 네트워크 구축, 동적인 가격 책정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봤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코로나19가 CDMO기업의 입지를 강화했지만 변화가 오래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다”며 “이제 CDMO기업이 보다 전략적인 파트너십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야 할 때다”고 말했다.
다른 CDMO기업도 디지털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는 마찬가지다.
화이자 산하 CDMO기업인 화이자센터원의 톰 윌슨 위탁생산 담당임원은 2022년 CDMO업계의 주요 동향 중 하나로 디지털 혁신을 꼽으며 “첨단 디지털 기술은 CDMO업계가 개발 일정을 단축하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현할 수 있게 하는 도구다”고 평가했다.
▲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제약바이오기업이 추진하는 탄소 배출 저감사업에서도 디지털 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존 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 사장이 지속가능시장계획위원회(SMI) 이니셔티브 참여와 관련해 탄소 저감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
◆ 삼바 탄소배출 ‘제로’ 과제, 디지털의 역할은
디지털 기술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ESG경영을 고도화하는 과정에서도 필수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11월 들어 사노피, 아스트라제네카,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머크, 노보노디스크, 로슈 등 대형 제약바이오기업과 함께 헬스케어 분야의 탄소 순배출량 제로(0)를 달성하기 위한 공동행동에 나선다고 밝혔다.
이 기업들은 영국 왕실 주도의 기후변화 대응 이니셔티브 지속가능시장계획위원회(SMI)의 건강시스템태스크포스(Health Systems Task Force)에 참여하고 있다. 탄소 배출량을 줄여 지구 평균 온도 상승폭을 유엔(UN) 등 국제기구의 목표인 1.5도로 제한하기 위해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세계 1위 수준의 바이오의약품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공급망 쪽의 탄소 배출을 저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헬스케어 분야는 세계 탄소 순배출량의 4~5%를 차지하고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공급망에서 나온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배출하는 탄소는 2021년 기준으로 스코프1 4만4033tCO₂eq(이산화탄소 환산기준 톤), 스코프2 8만6835tCO₂eq, 스코프3 91만629tCO₂eq 등으로 집계된다. 스코프1은 기업이 직접 배출하는 탄소를, 스코프2는 에너지원 등을 통해 간접 배출하는 탄소를 뜻한다. 스코프3는 스코프2를 제외하고 협력업체와 고객을 비롯한 공급망 전반에서 발생하는 간접 탄소 배출량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26년까지 온실가스의 원단위 배출량을 스코프1와 스코프2는 54.3%, 스코프3은 25.7%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배출량의 절대량을 고려하면 스코프3를 줄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스코프3은 간접 배출이라는 특성상 측정과 저감 모두 어려운 항목으로 꼽힌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데이터를 공유하면 협력업체가 현재 탄소를 얼마나 배출하는지, 또 앞으로 배출량을 얼마나 줄일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물류 역량 강화방안의 일환으로 디지털화를 위해 공급업체와 시스템을 통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디지털 시스템이 지속해서 확대될 경우 향후 거래하는 기업의 ‘탄소 경쟁력’을 평가하는 일이 수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홈페이지를 통해 “스코프3 배출은 조직(기업)의 통제 아래 있지 않지만 조직은 배출을 초래하는 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조직은 공급업체에 영향을 미치거나 계약할 공급업체를 선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자체적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일도 가능하다. SMI는 ‘디지털 트윈’을 헬스케어 공급망의 탄소 저감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했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의 기능이나 특성을 가상공간에 복제해 재현하는 것을 말한다. 바이오의약품 생산공정에 디지털 트윈을 적용해 시험하면 실제 시설을 이용하는 것보다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들어 결과적으로 탄소를 적게 배출하게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존 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 사장은 탄소 저감을 위한 공동행동을 발표하며 “기후변화의 가장 심각한 결과와 그것이 우리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피하기 위해 탄소 순배출량 제로를 달성해야 한다”며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제시간에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고 말했다.
디지털 기술은 제약바이오를 포함한 모든 산업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 5월 컨설팅기업 액센츄어가 세계경제포럼과 공동으로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디지털 기술이 에너지, 소재, 모빌리티 분야 전반에 적용될 경우 2050년 탄소 순배출량 제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감축량의 20%를 제공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포함한 제약바이오 분야가 가세하면 저감효과가 배가될 것으로 전망되는 대목이다.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