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생활사박물관 '서울살이와 집' 전시관에 공개된 1975년 준공식 당시 서울 송파구 잠실시영아파트 단지 모습. <서울생활사박물관> |
[비즈니스포스트]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435에는 총 66개 동, 6864세대 규모의 대단지 아파트 잠실파크리오가 자리잡고 있다.
잠실파크리오는 인근의 잠실엘스, 리센츠, 트리지움 아파트 등 일명 ‘엘·리·트’와 함께 잠실의 대표 단지다. 올해 8월 전용면적 84㎡가 25억 원에 거래됐고 최근 아파트값 하락으로 타격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잠실의 대장주 아파트 가운데 한 곳으로 꼽힌다.
서울, 그것도 강남3구에 보기 드문 대규모 단지인 잠실파크리오는 1975년 준공한 잠실시영아파트를 재건축해 세운 것이다.
서울시에서 지어 '시영'이란 이름이 붙은 잠실시영아파트는 1970년대 대한주택공사에서 건설한 잠실주공아파트와 함께 당시 최대 규모의 아파트단지로 꼽혔다.
▲ 서울시 노원구 동일로 서울생활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11월4일부터 2023년 4월까지 '서울살이와 집' 기획전시가 열린다. <비즈니스포스트> |
13일 서울시 노원구 동일로 서울생활사박물관 기획전시실을 찾았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주변에 콩밭과 황무지가 펼쳐져 있었던 1975년 잠실시영아파트로 잠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서울생활사박물관은 11월부터 해방과 6·25 전쟁 뒤 70여 년 동안 서울사람들의 집과 생활의 변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서울살이와 집’이라는 기획전시회를 열고 있다.
전시는 1958년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지어진 해방 이후 최초의 현대식 아파트 ‘종암아파트’부터 성북동 도시형 한옥, 공공주택의 시초인 안암동 재건주택 등을 소개한다.
그리고 1970년대까지 서울 주거형태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2층 콘크리트 슬라브 양옥주택에 이어 아파트가 대량으로 공급되면서 조성된 1970년 중후반 잠실단지아파트를 보여준다.
생활사박물관은 잠실시영아파트 13평형을 실제 크기와 평면도 그대로 재현한 공간과 당시 단지 조감도, 준공 당시 아파트 내부와 외부의 모습을 담은 사진 등 전시하고 있다.
▲ 서울생활사박물관 4층 기획전시실에서는 1975년 서울시영아파트 준공식 당시 사진을 볼 수 있다. |
잠실시영아파트에서 실제 살았던 주민의 인터뷰 영상에서는 당시의 생활상도 엿볼 수 있다.
잠실시영아파트가 2003년 재건축에 들어가기 전까지 20여 년을 살았던 정봉녀씨는 1981년 5월 잠실시영아파트 13평짜리를 백색전화 50만 원을 포함해 990만 원을 주고 샀다고 한다.
백색전화는 1960~70년대 폭증하는 전화 수요에 전화국을 통한 가입이 힘들어 몇 배의 프리미엄이 붙던 시절, 매매가 가능한 전화회선을 말한다. 1975년 4월 서울의 백색전화 가격은 최고 140만 원에 이르기도 했다.
잠실은 잠실도와 부리도 두 섬을 합치고 송파강을 매립해 육지로 만든 땅이다. 잠실시영아파트가 처음 들어섰던 때만 해도 주변에 논과 밭이 많았다.
이에 아파트에 살던 아이들은 콩밭에서 놀며 콩을 주워 구워먹기도 하고 겨울이 되면 단지 주변의 ‘노는’ 땅에 물을 받아 스케이트를 타기도 했다고 정봉녀씨의 아들 조용혁씨는 회상했다.
▲ 서울생활사박물관 4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서울살이와 집' 전시에서는 잠실시영아파트 내부와 외부 모습을 볼 수 있다. <서울생활사박물관, 사진 비즈니스포스트> |
아파트 내부를 살펴보면 잠실시영아파트는 거실과 소파, 싱크대가 있는 입식 부엌 등 당시만 해도 아주 잘 사는 집에서나 볼 수 있던, 서구식 생활이 가능한 아파트였다.
잠실시영아파트는 5층 높이의 아파트 단지로 13평형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서울생활사박물관에서 구현한 잠실시영아파트 13평형 재현 공간에 들어서면 현관 앞으로 거실과 발코니가 보인다. 그리고 현관 오른쪽으로 화장실과 부엌이 일렬로 있고 그 옆으로 아이들 방과 안방 이렇게 방 두 개가 있다.
우선 거실을 둘러보자면 TV와 TV장이 있는 광경은 지금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도 냉장고와 쌀통이 자리잡고 있는 점은 눈에 띈다.
부엌이 넓지 않기도 했고 냉장고가 비싼 가전제품이다 보니 다들 현관에서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곳에 두고 썼다고 한다.
잠실시영아파트 발코니는 따로 유리창이 없이 개방된 형태로 설계됐고 장을 담궈 먹던 시절이었던 만큼 발코니는 장독대와 빨래를 말리는 공간으로 사용됐다고 설명돼 있다.
▲ 서울생활사박물관 4층 기획전시실에 마련된 잠실시영아파트 13평형 재현공간. 발코니에는 장독들이 있고 거실에 냉장고와 쌀통이 보인다. <비즈니스포스트> |
현관 오른쪽에 있는 화장실에는 세면대와 물을 받아 사용하는 수세식 변기가 보인다.
설명에 따르면 화장실 공간이 협소해 빨래나 샤워 등은 화장실보다는 주방 옆 다용도실을 이용했다고 한다.
주방에는 한 칸짜리 싱크대와 아궁이가 있었고 밥을 짓고 할 때는 석유곤로를 많이 사용했다. 다용도실에는 주로 부엌 연탄 보일러에 사용할 연탄을 보관했고 쓰레기 투입구가 있었다.
당시에는 분리수거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각 가정 다용도실의 쓰레기 투입구에 모든 쓰레기를 버리면 통로로 아파트 1층까지 내려갔고 그렇게 쌓인 쓰레기는 일주일에 한 번 업체에서 가져갔다.
▲ 스테인리스 싱크대와 석유곤로, 아궁이가 있는 1970년대 잠실시영아파트 부엌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
연탄 배달료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각 집집마다 상가에서 연탄을 ‘배달주문’해 쓰는데 아파트 층마다 배달료가 달랐다고 한다.
연탄이 20원이면 4층에 사는 사람은 각 층마다 1원씩 배달료가 4원 붙어 24원에 연탄을 사서 썼다.
아파트 ‘커뮤니티’ 생활도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
현재 아파트들은 관리사무소가 있고 전문 보안업체, 공용공간 청소업체 등을 고용한다. 입주민의 운동, 문화, 여가생활을 위한 시설도 갖춰져 있다.
하지만 1970년대 잠실시영아파트에는 관리사무소도 없었다.
당시 주민 인터뷰 영상을 보면 아파트 복도나 계단 청소를 주민들이 일요일 아침에 직접 했다. 함께 모여 5층에서부터 물청소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야말로 ‘공동주택’의 모습이었다.
제대로 된 놀이터도 없었다. 아파트 주변에 펼쳐진 논과 밭 등 공터에 물을 뿌려 만든 스케이트장이 주민들과 아이들의 최고 놀이공간이었다.
▲ 연탄 창고와 쓰레기 투입구가 있는 1970년대 잠실시영아파트 다용도실 모습. |
생활사박물관 ‘서울살이와 집’ 전시 소개자료에 따르면 1970년만 해도 서울에 있던 집 가운데 아파트는 4%에 불과했다.
현재는 서울 집의 약 60%가 아파트다.
잠실시영아파트 재현 공간을 둘러보고 나오면 전시의 마지막으로 ‘서울사람들이 살고 싶은 집’을 주제로 한 설문조사 등을 소개한 공간이 나온다.
서울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구가 500만 명을 넘어섰고 1988년에는 서울에 사는 사람이 1천만 명을 돌파했다.
2022년 10월 기준 서울시 전체 인구는 944만3722명으로 집계됐다.
사람이 많아지면서 ‘서울 아파트’ 값은 점점 오르고 집에 관한 수요도 계속해서 늘고 있다.
1980년대 990만 원, 2022년 현재는 25억 원 안팎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잠실 아파트. 앞으로 또 50년이 흐른 뒤 서울살이와 서울의 집은 어떤 모습일까?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