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중머우(모리스 창) TSMC 창업주가 미국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 노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
[비즈니스포스트] 대만 반도체 파운드리기업 TSMC 창업주가 미국 정부의 자체 반도체 공급망 구축 노력을 겨냥해 결국 실패로 끝날 시도에 불과하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미국이 현실적으로 반도체공장 건설 및 운영에 필요한 비용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삼성전자도 중장기 투자 전략에 불확실성을 안을 수 있다.
25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장중머우(모리스 창) TSMC 창업주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8월 대만을 방문했을 때 회담에 함께 참석했다.
펠로시 의장은 이날 류더인(마크 리우) TSMC CEO를 비롯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들과 만나 미국과 대만의 반도체 분야 협력과 관련해 논의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자리에 참석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펠로시 의장 등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장중머우 창업주의 단호한 발언에 놀란 기색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자국에 반도체 생산단지를 구축해 자급체제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결국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비판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발언이 파이낸셜타임스 보도를 통해 뒤늦게 알려지면서 현지시각으로 24일 미국증시에 상장된 TSMC 주가가 하루만에 약 3% 하락하는 등 여파가 확산됐다.
장 창업주는 미국 정부가 처음 TSMC의 미국 반도체 파운드리공장을 유치할 때부터 좋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라며 일관적으로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TSMC가 미국에 반도체공장을 건설하고 운영하는 비용이 대만이나 중국에서 공장을 가동하는 비용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이후 반도체기업의 시설 투자에 최대 520억 달러의 지원금과 세제혜택 등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반도체 지원 법안을 실행했다.
미국 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장 창업주는 TSMC의 미국 반도체공장 설립에 반대하던 기존의 입장을 바꾸지 않은 것이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공장 가동의 비용 부담을 낮춰주기 위해 보조금과 세제혜택을 제공해도 아시아 지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보다 경제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바이든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TSMC와 삼성전자 등 기업의 미국 반도체공장 건설을 유도한 데는 정치적 의도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
중국이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을 낮추고 아시아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하려면 미국에 반도체 생산공장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TSMC는 미국 정부 정책에 따라 약 120억 달러를, 삼성전자는 약 170억 달러를 들여 각각 미국에 첨단 반도체 파운드리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그러나 장 창업주의 예상대로 미국 정부 지원이 반도체기업들의 비용 부담 완화에 기여하는 폭이 제한적이라면 이들의 미국 반도체공장 투자는 오히려 부정적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공장. |
인텔과 마이크론 등 미국 반도체기업도 잇따라 정부 지원을 노려 미국에 삼성전자나 TSMC보다 훨씬 큰 규모의 시설 투자를 벌이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미국 정부는 현재 반도체 지원법 대상 기업과 관련한 평가를 진행하고 있는데 자칫하면 삼성전자와 TSMC에 돌아올 보조금 몫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장 창업주의 비판적 발언은 이런 다양한 시나리오를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예상대로 미국에 반도체공장을 건설해 얻을 수 있는 성과가 크지 않다면 삼성전자 역시 중장기 투자 전략을 적극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텍사스주 당국에 앞으로 약 20년 동안 진행할 중장기 반도체공장 투자 계획을 제시하고 이에 따른 주 정부 차원의 인센티브 신청서를 내놓았다.
관련 문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앞으로 텍사스주에 최대 1921억 달러(약 277조 원)를 투자해 대형 반도체 공장단지를 구축하는 장기 계획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지원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과 투입되어야 하는 비용 등을 고려하면 삼성전자가 이런 계획을 상당 부분 백지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삼성전자는 중장기 투자 계획이 아직 확정된 내용이 아니라고 밝혔다. 텍사스주 정부가 삼성전자에 인센티브 제공을 승인한다고 해도 반도체공장을 반드시 추가로 지을 의무는 없다.
결국 TSMC 창업주의 예상대로 미국 정부가 자국에 글로벌 반도체기업의 대규모 공장을 다수 유치해 자급체제를 구축하려는 노력은 결국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충분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전문가 분석을 인용해 “미국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보조금은 실제로 필요한 예산과 비교해 매우 부족한 수준에 불과하다”며 “계획이 성공하려면 이보다 몇 배에 이르는 예산이 최소한 10~15년 이상 지속적으로 투입되어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