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텔롯데가 '기업공개'에서 '신사업 발굴'로 최우선 과제의 축을 옮긴 느낌이다. 안세진 대표이사 사장(사진)이 그의 주특기인 '신사업 발굴'을 살려 호텔롯데의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할지 주목된다. |
[비즈니스포스트] 안세진 대표이사 사장에게 호텔롯데 상장은 최우선 과제가 아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최근 “상황을 좀 더 지켜보자”고 말한 만큼 당장 상장에 목멜 이유가 없다.
안 사장은 이런 흐름 속에서 본인의 주특기인 신사업 발굴 역량을 살려 호텔롯데의 기업가치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22일 호텔롯데의 움직임을 보면 회사의 오랜 과제로 꼽혀온 기업공개보다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데 힘을 쏟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우선 호텔롯데가 현실적으로 기업공개를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호텔롯데는 올해 상반기에 호텔사업부와 면세사업부에서 영업손실로 각각 585억 원, 892억 원을 봤다.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호텔사업부는 적자를 지속했고 면세사업부는 적자로 돌아섰다.
호텔롯데의 4개 사업부 가운데 호텔사업부와 면세사업부는 전체 매출의 95%가량을 담당하고 있다. 사실상 호텔롯데가 이 두 사업부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두 사업부의 적자는 호텔롯데에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호텔롯데가 흑자를 내도 기업공개가 쉽지 않은 마당에 적자 상태로 상장을 강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로 여겨진다.
신동빈 회장도 호텔롯데 상장에 조급해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인 바 있다.
그는 최근 베트남 출장에서 한 매체의 기자와 만나 호텔롯데 상장을 묻는 질문에 “요즘 여러 가지 문제도 있기 때문에 상장은 좀 기다려보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여러 가지 문제가 무엇인지는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호텔롯데 주요 사업부의 가치 하락, 얼어붙은 기업공개 시장 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됐다.
이런 상황에서 호텔롯데가 21일 스타트업 투자에 나선 것을 놓고 당분간 신사업 발굴에 힘을 쏟겠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의견이 많다.
호텔롯데는 21일 미디어커머스를 전문으로 하는 스타트업 블랭크코퍼레이션에 네이버크림과 함께 200억 원을 출자했다. 8월 초 이사회에서 지분 매입을 결정한 뒤 1달여 만에 본계약까지 마무리한 것이다.
호텔롯데는 그동안 롯데그룹의 여러 계열사들이 함께 조성한 펀드에 자금을 대는 정도로 스타트업 투자에 나섰을 뿐 직접 움직이는 경우는 드물었다.
면세점사업부가 주도해 2021년 11월 스위스 면세기업 듀프리의 지분 2.55%를 1319억 원에 취득한 것이 그나마 미래 투자에 나선 굵직한 사례였을 정도다.
호텔롯데가 블랭크코퍼레이션에 정확히 얼마를 투자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보통주 4만1336주(지분 18%)를 사들였다는 사실까지만 확인된다.
블랭크코퍼레이션이 호텔롯데와 결이 직접적으로 닿아 있는 회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번 투자는 주목을 받고 있다.
블랭크코퍼레이션은 디지털 기반의 글로벌 브랜드 운영과 지식재산(IP) 사업을 전개하는 회사다. 제품 후기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고 이를 클릭하는 사람을 자체 홈페이지로 연결해 상품을 파는 사업을 주력으로 한다. ‘퓨어썸샤워기’ ‘마약베개’ ‘악어발팩’ 등이 블랭크코퍼레이션의 대표 상품으로 유명하다.
호텔롯데의 주력 사업들과 큰 연관성이 없는 스타트업에 투자를 단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호텔롯데가 새 성장동력 발굴을 본격화한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호텔롯데 관계자는 “호텔과 면세점사업만에 한정된 사업구조로 갈 수는 없지 않겠느냐”며 “신사업 발굴에 주력하고 있는 움직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호텔롯데의 총사령관이 신사업 전문가로 꼽히는 안세진 사장이라는 점에서 업계에서는 앞으로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안 사장은 지난해 11월 말 실시된 롯데그룹 정기 임원인사에서 호텔롯데 창사 이래 최초의 외부 출신 수장으로 선임됐다. 안 사장이 신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여러 대기업에서 역량을 인정받아왔다는 점에서 호텔롯데의 새 먹거리를 준비하는 차원의 인사로 풀이됐다.
그는 컨설팅기업 모니터그룹과 A.T.커니에서 컨설팅담당을 하다가 2005년 LG그룹으로 옮기면서 신사업 전문가로서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LG전자 임원으로 기업 대 기업(B2B) 사업 기획을 주도한 바 있으며 LG화학에서는 전략기획과 기업혁신, 신규사업 육성 담당 임원으로 일했다. LG상사에서도 신규사업 인큐베이션을 담당했다.
경영개선 및 턴어라운드, 기업전략, 신규사업 육성 및 기업 인수합병 분야에 전문성을 인정받아 2012년 기업경영 자문사인 알릭스파트너스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2015년에는 LS그룹에 영입돼 사업전략부문장과 LS산전 전략혁신본부장, 전략기획본부장 등을 맡았다. LS그룹이 2015년 선제적 구조조정을 실시하며 대성전기공업을 매각한 것은 안 사장의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안 사장은 2018년 외식 프랜차이즈 놀부의 수장에 올라 사업구조 혁신과 경영효율화 작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안 사장은 쉽게 결단을 내리지 않는 매우 신중한 성격으로 알려졌는데 그가 호텔롯데의 대표에 오른지 약 10개월 만에 첫 번째 투자에 나선 만큼 앞으로 새 성장동력 발굴에 더욱 속도를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호텔과 면세점사업이 안정화하기까지 신사업에 주력해 호텔롯데의 성장 잠재력을 만들어내고 이후 주력 사업의 가치를 인정받아 호텔롯데의 상장에 도전하는 로드맵이 향후 호텔롯데의 주력 전략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호텔롯데는 이미 보유하고 있던 자산과 계열사 지분 매각 등을 통해 신사업 투자를 위한 현금을 많이 쌓아뒀다.
호텔롯데가 2022년 2분기 말 별도기준으로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7213억 원이다. 2021년 말보다 2400억 원 가까이 늘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