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군사적 긴장이 기후변화 대응에도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증가하는 군사 활동은 그 자체로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데다 제대로 된 대응책 마련도 쉽지 않다. 사진은 4일 중국의 군용 헬기와 함선이 대만과 인접한 중국 푸젠성 핑탄섬 상공을 지나는 모습.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세계 각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지구적 차원의 연대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여기에 각국의 군사활동 증대는 그 자체로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데다 군사행동의 특성상 제대로 된 대응책 마련도 쉽지 않다.
중국 정부는 8일(현지시각)에도 애초 중단될 것으로 예상됐던 대만 인근 합동실탄훈련을 이어갔다고 중국 관영 중앙통신 등이 이날 보도했다. 중국군의 합동실탄훈련은 당초 7일 낮 12시까지 진행될 예정이었다.
중국 정부가 이처럼 대만 인근에서 벌이는 군사훈련을 이어나가자 미국 역시 오는 10월에 인도와 중국이 분쟁을 벌이고 있는 국경지대에서 인도와 연합훈련을 벌이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악화일로를 치달으면서 기후변화 대응 노력은 후순위로 밀려났다.
중국 정부는 지난 5일 미국과 온실가스 감축 문제를 비롯한 8개 분야에서 미국과 대화를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중국과 미국은 각각 온실가스 배출량 1, 2위 국가다.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는 6일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중국 정부의 움직임을 놓고 “기후 협력은 양국이 처한 문제와 따로 떼어 놓고 지속돼야 한다”며 “중국의 기후협력 중단은 세계, 특히 개발도상국을 벌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주도하던 서유럽 쪽도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서유럽은 러시아와 벌어진 갈등에 따른 에너지 위기로 석탄화력발전소 재가동을 검토하는 등 일시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의 감축 속도를 늦추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세계 각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면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에 균열이 생기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군사적 긴장이 단지 온실가스 배출의 감축 속도를 늦추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함 및 탱크 운용, 미사일 발사 등 각국의 군사 활동이 늘어날수록 그에 따른 온실가스 직접 배출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보안이 요구되는 군사활동의 특성상 구체적 군사활동 내용, 운용하는 장비 현황 및 각 장비의 온실가스 배출량 등이 정확히 공개되지 않는다. 관련 통계 작성은 물론 정확한 추정도 쉽지 않다.
2015년 파리기후협정에서도 각 협약 당사국은 군사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보고할 의무가 없다고 결론을 냈다.
하지만 군사활동이 대규모 화석연료 소모에 의존하고 있는 데다 연비가 낮고 전반적으로 중량이 큰 군사장비의 특성을 고려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막대할 것이라는 데 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요컨대 군사 활동이야말로 세계 각국이 합의 하에 숨기는 온실가스의 배출구인 셈이다.
미국 브라운대의 ‘전쟁비용 프로젝트’ 연구팀의 보고서를 보면 통상적으로 연비는 자동차가 30mpg(miles per gallon, 1갤런의 연료로 주행할 수 있는 마일 수)이다. 하지만 전투용 지프차는 6mpg, F-35 전투기는 0.6mpg, B-2 전략폭격기는 0.3mpg 등에 불과하다.
게다가 군사 작전 수행에 따른 장거리 이동까지 고려하면 군사 장비가 사용하는 연료의 양은 엄청난 규모로 커진다. 미국의 전투폭격기인 B-52가 1시간 사용하는 연료의 양은 평균적으로 한 대의 자동차가 7년 동안 사용하는 연료량에 맞먹는 것으로 추산됐다.
영국 기후학자인 스튜어트 파킨슨 박사는 2020년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세계적 군사 활동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체 배출량의 5~6% 수준으로 추정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민간 산업분야의 온실가스 배출 비중은 항공 1.9%, 해운 1.7%, 철도 0.4% 등에 불과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타이완 인근에서 벌어진 중국의 군사 활동, 미국의 대응 군사활동 등 최근 국제정세를 고려하면 2022년 들어 군사활동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 비중은 빠르게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군사 활동으로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데는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환경운동단체인 녹색연합은 지난 4일 2021년 국방부의 연구용역 결과를 인용해 한국의 군사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이 2020년 기준으로 388만 탄소환산톤(tCO2eq, 다양한 온실가스를 온난화 효과를 고려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환산한 수치)이라고 밝혔다.
같은 해 전국 783개 공공기관이 배출한 370만 탄소환산톤에 견줘 군사부문 한 곳에서 배출한 온실가스가 더 많다는 결과다.
황인철 녹색연합 기후에너지 팀장은 이런 수치를 두고 “이마저도 정확한 통계수치는 아니다”라며 “한국의 세계 국방비 비중 등을 고려하면 실제 온실가스 배출량은 밝혀진 수치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