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쏘카 상장을 앞두고 박재욱 대표의 선택에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2022년 8월3일 박 대표가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쏘카의 기업공개 관련 기자간담회를 진행하는 모습.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박재욱 쏘카 대표이사는 해마다 오답노트를 쓴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올해 1월11일 본인의 영어이름 ‘제이크(Jake)’를 딴 개인 블로그에 ‘2021년을 보내며 정리한 10가지 배움’이라는 제목으로 오답노트를 적었다.
그가 적은 오답노트를 보면 스타트업의 대표로서 어떤 현실을 겪었고 어떻게 대처했는지, 이런 과정에서 어떤 고민들이 나왔고 어떻게 해결했는지,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 그리고 배울 점이 무엇인지 등이 차분하게 적혀 있다.
“기업은 실수를 하고 잘못을 저지르지만 그에 맞는 빠른 해결책 제시가 더욱 중요하다” “규모가 커진 사업의 성장은 리더의 집중도로부터 나온다” “경영자의 판단은 감성보다는 이성으로, 개인보다는 조직을 위해 진행해야 한다” 등.
박 대표는 구체적 사례를 함께 적음으로써 본인이 왜 이런 점들을 ‘오답노트’에 옮기게 됐는지를 설명한다.
‘리더의 집중도’에서 그는 “돌아보니 제가 벌려둔 일은 많고 제 신경과 집중이 분산되어 있다 보니 가장 큰 비즈니스 영역을 충분히 깊게 들여다보지 못한 채 의사결정을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며 “스스로가 깊이 있게 사업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보니 충분히 날카로운 의사결정을 하지 못했고 CEO 아젠다로 풀어야 할 여러 이니셔티브들에 충분한 제안을 하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이어 “제가 더 집중력을 가지며 업무를 보기 시작하자 그동안 가볍게 넘어갈 수 있었던 부분도 다시 돌아보게 되고 이를 통해 회사가 가진 여러 문제점들을 보다 직접적으로 깨닫고 해결할 수 있었다”며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니 각 팀에서 공유하는 내용이 옳은지 그른지에 더 빠르게 파악하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돌아봤다.
스타트업 대표로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복기하며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결연한 다짐들이 느껴진다.
그의 오답노트는 단순히 스타트업 대표의 관점에서만 쓰여진 것이 아니다. 자신의 성장에도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했다.
‘올바른 피드백이 사람을 성장시킨다’에서 “사람은 기본적으로 방어 기제를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고 누군가 나를 공격한다는 느낌이 들면 그 방어 기제가 작동하게 된다”며 “처음에 적나라한 피드백을 들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방어 기제가 작동했지만 냉정히 자신을 돌아보니 제가 발전해야 될 부분이었고 힘들더라도 고쳐나가야 하는 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씩 고쳐나가는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계속 상기하며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지만 이 계기를 통해 저를 더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한 단계 발전시키게 된 것은 분명하다”고 회상했다.
박 대표가 오답노트를 쓰기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다.
커플용 메신저앱 비트윈을 운영하는 VCNC의 대표로서 ‘비트윈의 2012년을 보내며 정리한 10가지 배움’을 블로그에 올린 것이 시초다.
당시 그는 “침대에서 몇 번을 꼼지락거리다가 일어나 올 한 해를 다시 돌아보며 어떤 것들을 배웠고 어떤 것들을 내년에 더 잘 해야될지 고민해봤다”며 “머리 속에 지나가는 수많은 생각들을 하나씩 말로 풀어 쓰다보니 이 생각들을 블로그에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적기 시작한 오답노트가 벌써 10년째다.
그는 해마다 ‘OOOO년을 보내며 정리한 10가지 배움’이라며 오답노트를 정리했다. 여태껏 축적한 배움만 100가지라는 뜻이다.
물론 ‘리더가 성장해야 조직이 성장한다(2021년)’ ‘CEO가 성장을 하지 못하면 회사의 성장은 당연히 정체된다(2014년)’와 같은 비슷한 사례들도 많지만 대체로 해마다 다르게 느낀점을 적기 위해 노력했다.
▲ 쏘카 상장을 앞두고 외부 투자자들의 시선은 냉랭한 편이다. 사진은 2022년 8월3일 박 대표가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쏘카의 기업공개 관련 기자간담회를 진행하는 모습. <연합뉴스> |
하지만 이런 박 대표 앞에 놓인 ‘쏘카 상장’이라는 과제는 여태껏 적어온 오답노트로는 해결하기 힘든 새 도전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박 대표는 그동안 스타트업을 경영하면서 외부 투자자들의 자금을 유치하긴 했지만 자본시장에 공개적으로 손을 벌린 적은 없기 때문이다.
박 대표의 쏘카 상장 의지는 강한 편이다. 최근 기업공개 시장의 한파에도 불구하고 최근 기자간담회까지 열어 “공모를 철회하는 일은 없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쏘카의 기업공개를 통해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으로 판단했다는 의미다.
박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제 때 기업공개를 해 조달한 자금을 바탕으로 인수합병이나 신사업, 기술투자 등을 통해 한 단계 더 진화하면서 멀리 갈 기회를 만드는 것이 기다리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쏘카의 상장을 둘러싼 외부 시각은 냉랭하다.
최근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쏘카가 제시한 공모가 범위의 최하단보다 더 낮은 금액에 기관투자자들의 수요가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쏘카의 상장을 강행하고 싶다면 애초 기대했던 공모가를 더 낮춰야만 하는 상황에 몰린 셈이다.
실제로 쏘카는 현재 한국거래소에 제출했던 가격보다 더 낮은 금액에 공모가를 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표가 최종적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는 미지수다.
박 대표의 말대로 현재 사정이 나쁘다 할지라도 자금 조달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면 상장을 강행할 수 있다. 반면 예상보다 낮게 평가받은 쏘카의 기업가치 탓에 자금 조달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판단하면 시기를 좀 더 미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대표는 과거 외부 환경 변화로 쏘카에서 힘든 의사결정을 했을 때의 경험을 오답노트를 통해 밝힌 바 있다.
그는 2020년 이른바 ‘타다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강한 외부 충격이 왔을 때 생존을 위해 아픈 의사결정을 해야할 때가 있다”며 “너무나 큰 미련이 남았지만 미래가 없고 리스크만 높은 사업을 떠안고 있을 수 없었다”고 적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