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팡 노사가 물류센터 폭염 대책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사진은 권영국 쿠팡노동자대책위 변호사(가운데 오른쪽)와 류호정 정의당 의원(오른쪽)이 23일 쿠팡 동탄물류센터 앞에서 에어컨 배송 관련 도보행진 행사에 참가한 모습. <공공운수노조> |
[비즈니스포스트] 쿠팡 노사가 물류센터의 폭염 대책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송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쿠팡 노조)는 습하고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물류센터에 냉방시설을 설치하지 않는 회사의 태도를 ‘비인간적’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쿠팡은 노동자 편의를 위해 이미 여러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상 더 내놓을 카드가 없다는 뜻이다.
25일 쿠팡 노사의 입장을 종합하면 쿠팡은 노동자들이 무더위에도 편안하게 일할 수 있도록 물류센터의 특성을 감안한 편의를 최대한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노조는 회사의 조치가 현저하게 미흡하다고 보고 있다.
쿠팡 노조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사측은 층마다 에어컨이 빵빵한 휴게실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지만 모든 노동자가 쉴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공간이 아닌 일부의 이야기일 뿐이다”며 “회사는 대형 천장 실링팬과 에어 서큘레이터 수천 대를 설치했다고 주장하지만 아직까지 실링팬과 서큘레이터의 수혜를 받고 있는 노동자는 없다”고 주장했다.
쿠팡이 노동자를 위해 설치했다고 하는 여러 장치들이 실제 물류센터의 무더운 노동환경을 개선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회사가 노동자를 위해 조치했다는 주장들을 놓고 ‘노동자 기만’이라고까지 비판한다.
쿠팡은 20일 뉴스룸을 통해 카드뉴스를 내보내며 “층마다 에어컨이 설치된 휴게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대형 천장형 실링팬, 에어 서큘레이터 등 물류센터별 맞춤형 냉방장치 수천 대가 가동되고 있지만 노조는 냉방장치가 없다고 허위 주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쿠팡은 직접 촬영했다는 사진 수십 장을 올리며 에어컨과 대형선풍기, 실링팬, 서큘레이터 등의 모습을 공개하면서 “한 장에 다 담을 수도 없는 동탄물류센터의 냉방장치”라는 설명을 달기도 했다.
쿠팡의 물류센터 내부에 에어컨을 설치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쿠팡 노사의 시각이 180도 다르다는 점이 문제의 본질이다.
쿠팡의 설명을 들어보면 거대한 물류창고의 특성상 5톤 배송 트럭들이 수시로 드나들 수밖에 없어 물류센터의 문을 상시 개방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물류센터 내부에 에어컨을 설치한다고 하더라도 냉방 효과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쿠팡측의 설명이다. 외부에 개방된 주유소와 같은 공간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덧붙였다.
대형 실링팬과 에어 서큘레이터 등을 제공하는 이유도 이런 한계를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노동자들에게 생수와 아이스크림을 수시로 제공하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말했다.
하지만 쿠팡 노조의 생각은 다르다.
공기순환을 돕는 여러 장치를 놓는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차가운 바람이 돌지 않는 환경에서는 회사의 조치가 근본적인 폭염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회사가 에어컨을 설치해주지 않겠다고 하는 바람에 노동자들의 사비로 에어컨을 구입해서 설치하겠다고 하는 것을 강제로 막는 회사의 행보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쿠팡이 비용절감을 위해 노동자의 의견을 애써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노조는 이와 관련해 최근 트위터 계정을 통해 “노조가 쿠팡 물류센터의 폭염 실태를 알리고 대책을 촉구하는 행진을 시작하자 쿠팡은 노조가 거짓말을 한다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한 번이라도 쿠팡 물류센터에서 노동을 해보셨던 분이라면 노조와 쿠팡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실 것이다”고 회사의 태도를 적극 비판하기도 했다.
쿠팡 노사가 물류센터의 폭염 대책을 놓고 평행선을 달린지 벌써 1달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둘의 시각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더욱 문제다.
노조는 6월23일부터 물류센터의 폭염 대책에 항의하며 본사 점거 농성을 벌였다. 하지만 쿠팡은 이와 관련해 노조에 별다른 제시안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물류센터의 에어컨 설치 여부를 놓고 양측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대치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쿠팡은 그동안 비즈니스를 확장하면서 미국 온라인 유통기업 아마존의 성장 전략을 그대로 벤치마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런 점에서 쿠팡이 물류센터 폭염 대책을 놓고도 아마존의 모습을 답습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아마존은 ‘이틀 배송’을 앞세워 미국 곳곳에 거대한 물류센터를 짓고 24시간 돌리는 방식으로 사업을 확대해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물류센터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데는 소홀한 모습을 보여 비판도 받았다.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일한 한 노동자는 미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어 페트병에 소변을 봤다”고 주장하며 노동자가 정상적으로 일하기 힘든 노동환경이라는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 ‘에어컨 없는 쿠팡에 에어컨 로켓배송 도보행진 함께 걷기’ 행사에 나온 플랜카드 일부. <공공운수노조> |
물류센터의 폭염 문제도 그렇다.
미국의 대형 커뮤니티인 레딧에 올라온 글들을 살펴보면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일했다고 주장하는 누리꾼들은 “여름 내내 화씨 90도(섭씨 32.2도) 이상이었으며 창고 안은 화씨 100도(섭씨 37.8도)를 넘기도 했다”며 “더위에 직원들이 기절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한 누리꾼은 “노동자들에게 지옥보다 더 뜨거운 조건에서 일하도록 강요하한다는 사실을 보도한 언론 때문에 모든 아마존 창고는 이론적으로 화씨 95도(섭씨 35도) 이하로 유지된다”며 “하지만 그것은 창고에 입고된 물건에만 적용되며 많은 경우에는 화씨 120도(섭씨 48.9도) 이상으로 기온이 오르기도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의 주장도 이들의 주장과 결이 다르지 않다.
쿠팡이 노동자들을 위해 물류센터에 여러 조치를 취하고는 있지만 노동자들이 몸소 느끼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의당은 쿠팡 물류센터의 폭염 대책 논란을 놓고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20~23일 노조가 진행한 ‘에어컨 없는 쿠팡에 에어컨 로켓배송 도보행진 함께 걷기’ 행사에 참여한 뒤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기온 35도, 습도 50%의 사우나에서 일하는 시민에게 선풍기와 얼음물은 대책이 될 수 없다”며 “노동자들은 사우나에서 버틸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사우나 아닌 곳에서 일하게 해달라는 것이다”라고 적었다.
이어 쿠팡의 노동자들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나흘 간 행진은 물류센터의 일보다 덜 힘들다”는 답변을 받았다는 일화도 전했다.
류 의원은 “사업주에게 폭염과 한파, 미세먼지 등 기상 여건의 위험으로부터 산재 예방을 위한 안전조치를 의무화하는 ‘노동안전보건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기상청은 25일 장마가 끝나고 이르면 이틀 후부터 전국적으로 폭염이 시작된다고 예보했다.
쿠팡 노사가 빠른 시일에 합의점을 찾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이유지만 노사의 갈등은 쉽게 봉합될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
쿠팡물류센터지회는 25일 저녁 6시 쿠팡 본사 앞에서 농성장 강제 철거에 항의하는 긴급집회를 열기로 했다. 노조가 쿠팡 본사 로비에 설치한 농성장을 쿠팡이 강제로 철거한 데 따른 항의 성격의 집회다.
이를 놓고도 노사의 주장은 정반대로 갈린다.
노조는 “수용할 수 없는 제시안에 분명한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쿠팡은 말도 안 되는 합의안에 답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농성장을 철거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쿠팡은 “회사는 노조와 교섭 재개 노력을 병행하였고 그 결과 노조는 24일 낮 12시를 기해 농성을 해제하고 8월4일 단체교섭을 재개해 단체협약을 포함한 현안이슈를 놓고 교섭하기로 회사와 합의하고 합의문 서명을 앞두고 있었다”며 “하지만 노조가 23일 동탄물류센터 집회 직후 합의 사항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오히려 외부 인원을 추가 대동하여 야간에 잠실 건물 무단침입을 시도하는 등 불법 점거 상황을 더 강화 및 확대하고자 하였다”며 농성장 철거 책임이 노조에 있다고 주장했다.
쿠팡의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소비자 목소리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적지 않은 편이다.
한 누리꾼은 “쿠팡 유료멤버십 로켓와우 결제를 유지했던 것은 그 돈으로 시스템을 정비하고 노동자 처우 개선을 하리라 믿어서라고 쿠팡 고객의 소리함에 글을 썼더니 (쿠팡에서) 전화가 와 꼭 전달드리겠다 하는데 목소리가 떨리셨다”는 글도 남겼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