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 TSMC와 미국 마이크론이 잇따라 반도체 투자 축소 계획을 내놓았다. 마이크론 반도체 생산공장.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마이크론과 대만 TSMC 등 반도체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반도체 업황 침체에 대응해 하반기 시설 투자 계획을 축소하며 새로운 대응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파운드리 및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투자 축소에 가세하며 반도체 업황 악화 기간을 단축하는 데 적극적으로 동참할 공산이 크다.
15일 TSMC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 따르면 2분기 시설 투자에 들인 비용은 73억4천만 달러(약 9조6700억 원)으로 직전 분기보다 약 22% 감소했다.
TSMC가 올해 최대 44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예고한 데 비춰보면 상반기 집행된 투자 금액은 38% 수준에 그친다.
이날 콘퍼런스콜에서 TSMC는 연간 투자 목표치를 낮추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연간 투자 비용이 400억 달러를 달성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TSMC의 투자 축소 발표는 최근 회계연도 3분기 콘퍼런스콜을 개최한 마이크론이 메모리반도체 생산라인 구축을 보수적으로 진행하겠다는 내용을 공지한 뒤 이어졌다.
마이크론은 올해 하반기까지 반도체 수요 감소세가 업계 전반에 확산되면서 재고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을 보수적 투자 계획에 배경으로 제시했다.
반도체사업에서 수익성을 유지하려면 일단 생산을 줄여 고객사들의 반도체 재고량을 줄이는 일이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론 역시 앞으로 10년 동안 연평균 20조 원에 육박하는 투자를 예고했는데 반도체 업황 악화 전망에 적극적으로 새로운 대응 전략을 찾고 있다.
TSMC와 마이크론 등 이미 콘퍼런스콜을 개최한 글로벌 반도체기업들의 하반기 투자 기조 변화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재현될 것이라는 전망이 고개를 든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사업 규모에 차이가 있지만 모두 파운드리 및 메모리반도체를 영위하고 있어 반도체업황 악화에 TSMC 및 마이크론과 비슷한 영향을 받는다.
해외 주요 반도체 경쟁사들이 하반기 업황에 부정적 전망을 내놓고 투자 축소로 타격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는 한국 반도체기업들에도 마찬가지로 효율적 전략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 역시 하반기부터 파운드리 고객사 물량 수주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고 메모리반도체 재고도 이미 충분히 쌓여있기 때문에 생산을 축소할 이유가 충분하다.
SK하이닉스는 시장 점유율이 비교적 낮아 업황 변화에 더 민감한 영향을 받는 만큼 삼성전자보다 더 적극적으로 시설 투자를 줄여 수익성 방어에 집중할 공산이 크다.
블룸버그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하반기뿐 아니라 내년 시설 투자 규모도 기존보다 약 25% 축소한 16조 원 규모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로 반도체업황 부진도 오래 지속될 것으로 예상해 적극적으로 투자 축소에 나서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주요 반도체기업들이 투자 계획을 잇따라 줄이는 것은 반도체 수요 둔화를 예상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의 공급 조절은 가격 반등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아직 시설 투자 계획과 관련해 확정된 내용은 없다고 전했다.
반도체기업들이 일제히 투자 축소에 들어가 공급량을 조절한다면 반도체 고객사들의 재고가 빠르게 소진돼 업황 악화 기간을 단축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른 시일에 진행되는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을 통해 반도체 시설 투자비용 감축 계획을 공식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반도체기업들이 일제히 시설 투자를 줄이는 시기는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업계 전반의 투자 위축이 이뤄질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반도체 업황이 불안할 때 수익성 악화를 감수하고 공격적으로 시설 투자를 확대하는 기업은 시장 점유율을 단기간에 높여 중장기적으로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반도체기업들도 점유율 하락을 우려해 투자 축소 계획을 철회하고 물량 경쟁에 가담한다면 반도체 업황 악화가 더욱 심각해지는 ‘치킨게임’ 국면에 들어설 가능성도 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