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현대백화점 사옥에서 권태진 현대백화점 디지털사업본부장(오른쪽)과 홍상혁 블루베리NFT 대표이사(왼쪽)이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
[비즈니스포스트] 대체불가토큰(NFT)은 기업들에게 핫한 아이템입니다. 최근에는 NFT 관련 사업에 진출한다는 기업들의 보도자료가 쏟아집니다.
9일에는 현대백화점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현대백화점이 블루베리NFT라는 회사와 ‘디지털 콘텐츠 협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내용은 평이했습니다. 현대백화점은 고객들이 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NFT 기반의 디지털 서비스를 개발하고 블루베리NFT는 전문 블록체인 기술과 콘텐츠 관련 사업을 현대백화점에 우선 제공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블루베리NFT가 어떤 회사라는 설명이 빠져있었습니다. 독자들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어 블루베리NFT라는 회사를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죠.
사실 블루베리NFT를 검색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최근 많이 생기고 있는 NFT 관련 스타트업 가운데 하나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블루베리NFT의 전신은 1973년 설립된 서흥산업입니다. 라텍스고무제품 생산과 판매를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죠.
여기까지 말씀드리면 어떤 회사인지 전혀 감이 안 잡히실 겁니다. 하지만 2000년 바꾼 회사 이름을 보면 '아하!'라는 감탄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바로 ‘유니더스’입니다.
유니더스는 남성용 콘돔으로 유명합니다. 대표 제품으로는 ‘롱러브’가 있죠. 이밖에 무꼭지 콘돔, 극초박형 콘돔 등 여러 브랜드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2016년에는 연예인 신동엽씨를 모델로 세워 홍보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유니더스는 국내 콘돔시장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사업보고서를 보면 점유율 40%를 보이지만 한창때는 65% 이상이었다고도 합니다. 창립 이후 50년 가까이 콘돔에 매진했던 회사다보니 이런 지표는 자연스럽게 따라온 것으로 여겨집니다.
애초 유니더스라는 회사 이름이 ‘당신은 우리가 필요하다(You Need Us)’의 줄임말이라고 합니다.
2010년에 보도된 한 기사를 찾아보면 유니더스가 당시 한 해 생산하는 콘돔만 11억 개로 길이를 합하면 지구 네 바퀴를 돌 수 있는 규모였습니다.
여기까지 보시면 ‘아~ 블루베리NFT가 원래 콘돔회사였구나?’라고 하실 겁니다. 그런데 이후 의문도 따라붙습니다. 왜 콘돔회사가 갑자기 NFT를 하겠다고 나선 것일까요?
▲ 신동엽씨가 광고 모델로 발탁된 유니더스 콘돔 제품. |
사정은 좀 복잡합니다. 콘돔회사가 NFT사업에 손을 뻗친 배경을 이해하려면 2017년 이후의 유니더스 역사를 살펴봐야 합니다.
유니더스는 애초 김덕성 회장이 세운 회사입니다. 하지만 2015년 말 김 회장이 별세하면서 아들 김성훈 대표가 회사를 물려받았죠.
하지만 정작 김성훈 대표는 회사 경영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유니더스를 잘 아는 한 관계자는 “김 대표는 애초 회사를 물려받으려는 의사가 강하지 않았던 사람이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지분을 상속받긴 했지만 회사 경영에는 좀처럼 의욕을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회사 경영에 의욕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막대한 상속세까지 부과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자 김 대표는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 대표가 당시 내야해야 했던 상속세는 최소 50억 원 이상으로 파악됩니다.
김 대표는 세무서에 상속세를 장기간에 나눠 내는 연부연납을 신청하기도 했지만 결국 2017년 12월에 ‘바이오제네틱스투자조합’이라는 회사에 자신의 지분을 모두 매각합니다.
여기서부터 유니더스의 무쌍한 변화가 시작됩니다.
바이오제네틱스투자조합은 유니더스를 인수하자마자 곧바로 회사 이름을 ‘바이오제네틱스’로 바꾸고 정관을 변경하며 바이오사업 진출을 선언합니다.
유니더스 시절만 해도 정관에 명시된 사업목적은 ‘라텍스 고무제품 생산 및 판매업’ ‘수출입업 및 동 대행업’ 등 6가지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바이오제네틱스로 회사 이름을 바꾸면서 ‘의약품관련 연구 및 개발업’ ‘항체신약개발’ ‘단백질칩개발’ ‘생명과학 분석업무’ ‘바이오에너지’ ‘유전자 정보 데이터 베이스 구축’ 등 30가지가 넘는 사업목적이 정관에 추가됐습니다.
바이오제네틱스투자조합은 2018년 4월 바이오제네틱스 산하에 항암 후보물질과 희귀질환 치료제 연구를 사업목적으로 하는 바이오케스트라는 회사를 설립하며 바이오사업을 본격적으로 확대합니다.
2019년 5월에는 경남제약도 인수합니다. 경남제약은 국내 최초의 ‘물 없이 먹는 가루 비타민’으로 유명한 ‘레모나’를 만든 회사로 유명합니다.
바이오제네틱스는 2020년 1월 막 주목받기 시작하던 대체육 시장을 놓고 ‘육즙성분 추출법’과 관련한 특허 출원을 완료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습니다.
유니더스의 변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바이오제네틱스투자조합은 2020년 3월 바이오제네틱스의 회사 이름을 다시 ‘경남바이오파마’로 바꿉니다. 당시 회사는 “기업 이미지 제고와 사업다각화를 위한 상호변경이다”고 설명했습니다.
경남바이오파마는 코로나19 사태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심각해지자 비말차단용마스크 생산설비를 갖추고 마스크사업도 벌인 것으로 확인됩니다.
하지만 1년 만에 상황은 또 바뀝니다.
경남바이오파마는 2021년 3월 말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다시 한 번 회사 이름을 변경합니다. 여기서 바뀐 상호가 바로 맨 처음에 언급한 ‘블루베리NFT’입니다.
블루베리NFT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회사는 애초 콘돔과 라텍스장갑 등을 주력으로 하고 여기에 마스크와 경남제약 사업 등이 따라붙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성장하기 힘들다고 보고 당시 ‘핫한 아이템’으로 떠오르던 NFT사업에 진출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외부 조언과 자문을 받아 NFT를 새 성장동력으로 점찍었습니다. 회사 이름을 바꾼 이유는 그 의지가 강하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블루베리NFT는 2021년 4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한국프로야구은퇴선수협회와 NFT 발행과 관련한 선수들의 퍼블리시티권(사람이 자신의 성명이나 초상 등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통제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 계약을 체결하며 NFT사업을 본격화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이후에 한국프로축구연맹, 한국프로농구연맹, 한국배구연맹과도 연달아 퍼블리시티권을 계약했습니다.
NFT가 예술품이나 유명 선수들의 초상권을 가지고 만드는 디지털 자산을 사업의 본질로 하는 만큼 관련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 발 빠르게 나선 것이죠.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콘돔회사가 바이오로 그리고 NFT로 주력사업의 방향을 확 트는 것은 분명 이례적 일입니다. 바이오사업에 진출하며 경남제약을 인수한 것은 그래도 진정성을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콘돔, 바이오와 결이 완전히 다른 NFT사업으로 손을 뻗은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에 걸맞은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홍상혁 블루베리NFT 대표(왼쪽)와 양의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 <블루베리NFT> |
올해 1분기 말 기준으로 블루베리NFT의 임직원 수는 85명입니다. 관리직 29명, 생산직 56명 등으로 돼 있습니다.
블루베리NFT 관계자 설명에 따르면 이 직원들 가운데 10%가량만이 NFT사업과 관련있다고 합니다. NFT를 하는 자회사 블루베리메타 등에도 엔지니어들이 있다고 설명하지만 이들을 모두 합쳐도 NFT 관련 인력은 10~20명가량으로 파악됩니다.
실제로 NFT에 필수적인 블록체인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도 확인되지 않습니다.
블루베리NFT 사업보고서를 뒤져보면 NFT사업을 맡는 종속회사 블루베리메타는 그동안 확보한 지식재산(IP)을 활용해 NFT플랫폼 서비스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만 나옵니다.
블루베리NFT가 확보한 퍼블리시티권을 언제 어떻게 활용할지도 불분명한 상황으로 여겨집니다.
블루베리NFT는 여러 차례 보도자료를 통해 프로야구 아바타 캐릭터나 선수들을 활용한 NFT를 출시하겠다고 알렸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결과물은 없습니다.
회사 관계자는 “NFT사업을 검토하던 중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어 출시가 늦어지고 있다”며 “하반기에는 그동안 확보한 퍼블리시티권과 지식재산을 기반으로 NFT 관련 플랫폼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습니다.
블루베리NFT의 행보가 '수상한' 이유는 현재 이 회사의 최대주주인 플레이크 때문입니다.
블루베리NFT는 바이오제네틱스투자조합에 인수된 뒤 최대주주가 2020년에 라이브파이낸셜로, 2021년에는 장산으로 바뀌었습니다. 장산이 회사이름을 바꾼 곳이 현재 블루베리NFT의 최대주주인 플레이크입니다.
이 회사들은 모두 김병진 회장이라는 인물이 이끌고 있습니다. 사실상 블루베리NFT의 변화무쌍한 행보의 중심에 김 회장이 있다는 뜻이죠.
김 회장은 1977년생으로 인수합병업계에서 꽤 유명한 인물입니다.
불과 스무살이던 1997년 IT엔터테인먼트업체를 창립하면서 벤처업계에 발을 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창업 초기부터 다른 기업을 사들이고 매각한 뒤 차익을 남겨 다시 다른 기업을 사고파는 식으로 사업을 벌였습니다.
계열사들이 많아지면 계열사들의 돈을 다른 기업 인수에 쓰고 다시 차익을 남겨 매각하는 방식을 수십 차례나 진행했습니다. 2008년에는 게입기업 웹젠을 적대적 인수합병하려다가 실패한 사례도 있습니다.
김 회장이 2010년대 이후에 진행한 인수합병만 해도 10건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집니다.
▲ 경남제약 노동조합이 2021년 4월13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집회를 갖고 있다. <금속노조충남지부> |
김 회장의 행보를 보면 사실 인수한 회사의 본업 경쟁력을 강화하기보다는 회사의 기업가치를 올려 매각하는 데만 집중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좋게 말하면 ‘M&A 전문가’, 나쁘게 말하면 ‘상장사 쇼핑’을 한다는 것이 인수합병업계에서 나오는 평가 가운데 하나입니다.
실제로 경남제약 노동조합은 이러한 김 회장의 행보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경남제약 노조는 2021년 4월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 앞에서 집회를 열고 “경남제약의 최대주주로 실질적 경영권을 쥔 장산, 블루베리NFT 등이 사업에는 관심이 없고 회사를 매각해 돈을 벌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회장도 업계의 비판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과거 경남제약 인수 당시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러한 ‘기업 사냥꾼’이라는 이미지를 놓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상장폐지나 법적인 문제를 겪은 적이 없다”며 “법적으로 회계적으로 문제되는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인수했던 기업들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들인 노력이 커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블루베리NFT가 이름을 바꾸기 전 경남바이오파마, 바이오제네틱스 등으로 존재하던 때 맺은 의약품 라이선스 계약과 관련해서는 현재까지도 별다른 진전사항이 없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블루베리NFT가 퍼블리시티권 ‘독점 계약’을 맺었다고 했던 프로스포츠연맹들과도 연락해보니 계약을 맺은 사실은 있지만 ‘독점’이라고 볼 수 없다는 답변을 얻었습니다.
실제로 블루베리NFT가 2021년 NFT사업으로 번 돈은 4500만 원입니다. 전체 매출의 0.17%에 불과합니다. 올해 1분기에는 NFT로 벌어들인 수입이 아예 없습니다.
김 회장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콘돔회사에서 NFT사업으로 변신한 블루베리NFT의 진정성이 증명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