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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리포트 4월] 반도체 인수합병, 발빠른 SK일까 자금력 삼성일까

박창욱 기자 cup@businesspost.co.kr 2022-04-05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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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한국은 반도체 강국인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메모리 시장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이런 질문이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의 비중은 20%대에 그친다. 비메모리, 즉 기억이 아니라 정보처리를 담당하는 시스템반도체의 비중이 70%를 넘는다. 
 
[데스크리포트 4월] 반도체 인수합병, 발빠른 SK일까 자금력 삼성일까
박정호 SK스퀘어 대표이사 부회장 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

시스템반도체 시장 규모가 메모리보다 3배가량 크다는 얘기다. 하지만 시스템반도체에서 한국의 비중은 미미한 수준에 머문다.

세계 10대 시스템반도체 설계기업(팹리스) 가운데 한국기업의 이름은 하나도 없다. 최상위권은 대부분 미국기업이다.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분야에서 TSMC를 비롯한 대만기업이 시장점유율의 3분의2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그나마 10%대 후반의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학교 공부만 해도 한 과목 잘해선 수재 소리를 못 듣는다. 고루 잘 해야 한다. 글로벌 반도체산업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고민이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메모리와 비교해 수요가 다양하면서도 성장성이 높은 시스템반도체를 키우고 싶어 한다. 

특히 시스템반도체는 장치산업인 메모리와 달리 설계 역량이 핵심인 기술집약 산업이다. 이미 시스템반도체사업을 하는 삼성전자에 이어 SK하이닉스가 최근 반도체 설계업체 ARM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다.

◆ SK하이닉스의 ARM 인수 추진 핵심은 '컨소시엄 구성'

박정호 SK스퀘어 대표이사 부회장 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은 최근 두 회사의 주주총회를 통해 ARM 인수합병을 위한 컨소시엄 구성을 논의하고 있다고 공식화했다.

박 부회장의 발언에서는 '인수합병'이 아니라 '컨소시엄'에 좀 더 방점이 찍혀있다. 정확히 말하면 인수하는 데 드는 돈이 아니라 인수 방식이 더 큰 중요할 수 있다는 얘기다.

ARM은 모바일 프로세서(AP)를 개발하는 업체다. 기본 설계기반을 제공하고 로열티로 수익을 거두는 영국의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이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의 AP가 ARM 설계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애플의 AP A15바이오닉도 ARM의 구조방식(아키텍처)을 기반으로 재설계한 제품이다. 

퀄컴, 대만 미디어텍 등도 ARM 설계 기반을 쓴다. 시스템반도체 설계에서 ARM은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가진 기업이다.

ARM 대주주인 일본 소프트뱅크는 미국 반도체기업 엔비디아에 400억 달러(약 47조 원)를 받고 ARM을 매각하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주요 국가 경쟁당국이 독점금지규제를 앞세워 인수를 승인하지 않았다. 각국 정부가 반도체산업의 전략적 중요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SK그룹은 지주사 SK를 중심으로 동원할 수 있는 유동자산이 5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된다. 배터리, 수소 등 투자할 곳이 많다고 해도 금융기법을 동원하면 ARM을 홀로 못 사들일 것도 없다. SK그룹은 인수합병을 통해 성장한 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메모리 세계 2위, 반도체 매출 세계 3위 SK하이닉스가 단독으로 ARM을 사들인다면 독점금지규제에 휘말릴 공산이 크다. 이에 외신에선 SK하이닉스가 인텔과 손잡고 ARM 인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SK그룹은 외부 업체를 컨소시엄에 끌어들이기 전에 이미 분산된 반도체 사업구조를 갖고 있다. 

ICT 중간지주사인 SK스퀘어는 반도체 기술기업과 관련한 인수합병을,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생산을 담당한다. SK텔레콤은 인공지능반도체를 중심으로 반도체 설계분야를 키워가고 있다.

ARM 인수를 공식화한 박정호 부회장은 SK스퀘어와 SK하이닉스 대표이사를 모두 맡고 있고 SK텔레콤에서도 역시 부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투자전문 지주사인 SK스퀘어를 제외하면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에는 모두 본업 경영을 맡은 각자대표이사가 있다. 

반도체 관련 사업이 주요 계열사에 분산돼 있으면서도 박 부회장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뜻을 받아 그룹 외형을 키우기 위한 인수합병에 빠르게 집중할 수 있는 경영 구조를 가진 셈이다.

SK그룹이 삼성그룹보다 가진 돈은 작지만 시스템반도체 분야 인수합병에서 발빠른 움직임을 보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분할 필요성 커져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와 달리 종합반도체 회사다. 메모리뿐 아니라 파운드리와 반도체 설계를 모두 한 회사에서 담당한다. 

메모리 의존도가 높은 SK하이닉스와 비교해 사업포트폴리오가 잘 짜여져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각 분야별로 집중해서 키우기 힘들다는 단점도 함께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세계시장 절반 이상을 차지한 TSMC와 비교하면 역사가 절반가량에 불과하다. 메모리와 달리 후발주자의 한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며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10% 후반대에 머문다. 

더구나 최근엔 수율(전체 생산량에서 양품 비율)이 부진해 주요 고객사를 TSMC에 뺏기고 있다는 외신 보도도 나온다.

시스템반도체 설계에서도 모바일칩(AP)의 발열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지지부진한 상황에 놓여 있다. 또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함께 하기 때문에 반도체 팹리스들이 기밀 유출을 우려해 삼성전자에 파운드리를 맡기기 부담스러워 한다는 우려를 늘 받았다.

삼성전자는 지금껏 시스템반도체를 분리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세계 주요국 정부들이 반도체산업의 독점규제에 신경쓰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만큼 회사분할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는 시선이 많다. 

삼성전자로서는 세계1위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 분야를 분리한다면 독점규제에서 한발 비켜나기가 좀 더 수월해질 수 있다.

더구나 올해부터 경계현 대표이사 사장을 중심으로 반도체사업 경영진 세대교체가 이뤄진 만큼 사업구조 변화를 모색할 공산도 크다.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에서 SK하이닉스와 달리 이미 파운드리에선 일정 부분 입지를 확보해뒀다. 동원할 수 있는 돈은 100조 원이 넘는다. 2030년 시스템반도체에서 세계 1등을 하겠다는 목표도 세워뒀다.

삼성전자도 SK그룹처럼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인수합병을 추진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차량용 시스템반도체 분야를 고를 가능성이 더 커보인다.

차량용 반도체기업은 반도체 부족현상으로 인해 반도체 설계기업보다 인수합병에 돈이 더 많이 들지만 독점시비에 놓일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다양한 차량용 반도체 종류 만큼이나 메모리 분야나 파운드리처럼 압도적 점유율을 가진 업체는 없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모두 메모리는 이제 '어느 정도 깔고 가는' 분야로 볼 수 있다. 두 회사 모두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ARM 같은 글로벌 기술기업 인수합병에 성공하느냐가 앞으로 성장을 좌우할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연한 SK일까, 자금력의 삼성일까. 둘 중 어느 회사가 시스템반도체 인수합병에서 먼저 치고 나갈 지 주목된다. 박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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